새샘(淸泉)
서울을 보여주는 시대별 유적 본문
그동안 서울 지역에서 이루어진 유적 발굴 내용을 발굴 시기별로 정리해서 살펴보자.
서울의 유적 발굴을 10년 간격으로 시대별로 특징 짓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는 '순수 발굴의 시대', 1970년대는 '도시화의 시작과 함께', 1980년대는 '복원을 위한 발굴시대', 1990년대는 '구제발굴의 전성시대', 그리고 2000년 이후는 '발굴을 위한 발굴'이었다.
이런 시대별 발굴 특징은 서울의 도시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기별 도시 특성과 일맥상통한다.
이와 관련하여 각 시기를 대표하는 발굴 유적을 선정하여 그 특성과 성격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1960년대의 대표 유적은 선사시대 유적들을 꼽을 수 있다.
이 시대는 본격적인 도시화 이전으로 고고학자들이 주로 발굴을 실시했다.
'순수 발굴의 시대'로 규정한 것은 아직 서울 지역에는 국립박물관 등 국가기관에 의한 발굴이 아닌 대학 박물관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 집터인 암사동 유적, 청동기시대 집터인 명일동 주거지와 가락동 주거지, 역삼동 주거지, 그리고 구석기시대 유적인 면목동 유적이 그것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 시기는 주로 선사시대 유적들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어 발굴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발굴한 유적들은 아쉽게도 암사동 유적을 제외하고는 남아있는 유적이 없다.
특히 상대적으로 서울 지역은 암사동 유적 외에 선사시대 유적의 발굴 성과가 거의 없고, 복원이나 보존되어 있는 유적이 없어 이 시기 발굴 유적의 부재는 더욱더 아쉬움이 많다.
그럼에도 이 시기 선사시대 유적의 확인은 서울 지역이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좋은 주거지로서의 역사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1970년대의 대표 유적은 잠실지구 유적들과 암사동 유적이다.
이 시기 잠실지역 개발사업을 위한 발굴은 서울의 발굴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즉 1963년 서울 영역의 확장 후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이른바 '강남개발'인 대규모의 지역 개발을 수도이자 대도시 서울에서만 가능한 국가정책 사업이었다.
도시화의 시작과 함께 도시화를 위한 발굴도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 발굴을 통해 한성백제 등 서울 고대사에 대한 많은 정보와 자료들을 얻었고, 당시 참여한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석촌동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이 대규모 아파트 숲속에서 그나마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실지구 이전 지금의 강남구와 서초구에 해당하는 영동지구 개발 과정에서는 전혀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서울 지역 발굴 역사에서 매우 아쉬운 점이다.
암사동 유적은 이미 1960년대부터 발굴이 시작되었지만 1970년대 실시된 암사동 유적 발굴은 서울 지역에서 국가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처음으로 실시된 발굴이라는 점, 이때의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지금의 암사동 유적이 복원되어 그럴듯한 야외유적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1970년대 또하나의 상징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암사동 유적은 지금도 오래된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1980년대 대표 유적은 창경궁 등 조선 궁궐과 몽촌토성이다.
1980년대 서울의 가장 큰 행사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였다.
올림픽 준비를 위한 도시로서 서울의 변화상은 상당하였다.
국제도시로서 서울의 출발점은 올림픽 개최였던 것이다.
이런 서울의 변화상을 반영한 발굴이 조선 궁궐과 몽촌토성에 대한 발굴이다.
경희궁과 창경궁 등 조선왕조의 궁궐은 일제강점기에 많이 훼손 또는 파괴되었고, 이의 복원을 위한 발굴이 1980년대에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복원 시기를 고려한다면 이런 목적 외에 한편으론 올림픽 개최 때 대외적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지역적으로는 이전까지 한강 이남 지역에 대한 발굴이 주로 이루진데 반해, 궁궐 발굴을 통해 강북으로 발굴 지역의 확대라는 면에서 의미 있는 발굴이라 할 수 있다.
몽촌토성은 올림픽 개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유적이다.
몽촌토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백제와 관련된 유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전까지 어떠한 발굴조사도 없었으니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이 지역에 올림픽 체육시설이 들어서면서 몽촌토성의 보존이 결정되었고, 이에 발굴도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발굴 결과로 몽촌토성은 한성백제의 도성으로 급부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대표 유적은 풍납토성과 아차산 일대 보루들이다.
이미 1964년에 간략히 발굴이 이루어졌지만 이후 관심에서 멀어진 풍납토성은 1997년 풍납동 지역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백제 토기가 노출되면서 구제발굴이 시작되었고, 점차 그 유적의 역사적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풍납토성은 이후 순수 학술발굴로 전환되어 지속적으로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풍납토성의 발굴 성과는 서울 지역 한성백제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사의 출발점을 재정립할 수 있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고려하여 앞으로도 장기 계획을 가지고 발굴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차산 일대 보루들은 이전까지 백제나 신라의 유적으로 추정하다가 1997년 아차산 제4보루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고구려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사실 고구려 관련 유적의 발굴은 이미 1977년 화양지구 발굴조사 때 있었다.
당시 백제 고분으로 이해한 구의동 유적은 20년이 지난 1997년 종합발굴보고서에서 고구려 군사 관련 유적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얘기하면 아차산 제4보루 발굴은 서울 지역에서 고구려 유적에 대한 두 번째 발굴이자, 처음으로 고구려 유적으로 이해하고서 실시된 발굴조사였다.
고구려 유적인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백제에 집중되어 있는 서울 고대 역사의 범주를 확대하고 삼국의 공존이라는 서울 고대사의 지역적 특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였다.
2000년대 이후는 발굴 건수의 증가로 다양한 지역들에서 많은 유적들을 발굴하여 대표 유적을 정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한양도성과 종로구·중구 지역의 도심 지역 유적들을 2000년대 이후 대표 유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에 많이 파괴되고 훼손되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에도 특별한 발굴조사나 보존계획 없이 일부 구간에 대한 복원공사 등이 이루어졌다.
2000년 이후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2010년 이후부터이다.
이는 한양도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이 있다.
꾸준히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고, 복원도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지금 한양도성은 많은 시민들이 찾는 대표적인 서울의 문화유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꾸준한 발굴과 조사를 통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목적이 아닌 전근대 도성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서울의 상징 건축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서울의 4대문 안 문화유적 보존방안 지침으로 종로구와 중구를 중심으로 하는 도심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엄격해지고 이에 따라 발굴건수도 많아졌다.
이 사실은 서울시의 정책에 따른 현상의 변화이자 2010년 이후 나타난 시기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도심지역에서 대부분 조선시대 유적이 확인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청계천, 육의전 터, 서울시청 자리의 군기시 터 등은 도심 유적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유적들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의 도심지역은 궁궐로 대표되는 왕실 유적이 중심이지만, 최근 발굴된 유적들은 다리, 시장 건물, 관청 건물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유적이다.
이는 도심 유적 발굴을 통해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 유적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 분야가 왕실 유적에서 생활유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3. 4. 14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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