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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와 체온계의 발명 이야기 - 갈릴레이, 산토리오, 파렌하이트, 셀시우스, 분더리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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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와 체온계의 발명 이야기 - 갈릴레이, 산토리오, 파렌하이트, 셀시우스, 분더리히

새샘 2024. 6. 6. 14:52

질병에 걸린 사람의 체온이 일정 기준 이상으로 높아지는 것을 '열熱 fever' 또는 '발열發熱 pyrexia'이라고 하는데,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열은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객관적인 평가 수단이 없어 의사들은 환자의 안색이나 피부를 만져봄으로써 체온을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체온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려는 노력은 17세기에 시작되었는데, 바로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1564~1642)가 최초의 온도계溫度計 thermometer를 만든 것이다.

 

 

갈릴레이가 부력을 이용해 발명한 온도계의 원리(사진 출처-출처자료1)

 

갈릴레이는 부력浮力 buoyancy을 이용한 온도계를 만들었다.

물체가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인 부력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은 물체와 액체 사이의 밀도 차이다.

위 그림처럼 두 그릇에 담긴 액체 속에 넣는 물체의 무게는 모두 1 kg으로 같고, 두 그릇에 담긴 액체의 온도차에 따른 밀도만 다른 경우를 생각해 보자.

왼쪽과 오른쪽 액체의 밀도는 불과 0.002kg/L밖에 차이가 안 난다.

하지만 작은 밀도 차이에 의해 물체가 뜨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한다.

이 같은 원리를 이용하면 추의 움직임으로 온도를 측정할 수 있다.

 

 

갈릴레이 온도계(사진 출처-출처자료1)

 

갈릴레이는 위 그림처럼 긴 유리병에 액체를 넣고 작은 추가 달린 유리구슬을 여러 개 집어넣었다.

온도에 따라 유리병 안 액체의 부피 변화가 생기면 액체의 밀도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유리구슬이 위아래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온도가 올라가 액체 밀도가 낮아지면 밀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유리구슬이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이는 밀도와 부피는 서로 반비례하므로(밀도=질량/부피), 온도가 오를수록 액체의 부피가 커져서 액체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위 그림의 왼쪽 유리병 온도계는 몇 도인지 알아보자.

맨 위와 아래쪽에 치우쳐 있는 구슬들을 제외하면 가운데 떠 있는 초록색 76도가 남는다.

유리구슬과 액체 밀도가 균형을 이루면서 가운데 멈춘 유리구슬이 바로 지금의 온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온도는 화씨 76도이다.

 

이번에는 위 그림의 오른쪽 온도계를 살펴보자.

위쪽과 아래쪽에 치우쳐 있는 구슬들을 빼면 중간에는 구슬이 없다.

이럴 땐 구슬들이 위아래로 벌어져 있는 중간 어딘가가 온도가 된다.

72도와 68도 사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온도는 대략 화씨 70도라고 읽으면 된다.

 

 

산토리오가 온도에 따른 기체 팽창을 (사진 출처-출처자료1)

 

부력을 이용하는 아이디어가 매우 좋았던 갈릴레이의 온도계지만 일상적인 온도 변화에는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아 실생활에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최초의 과학적인 온도계라는 의미만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체온계體溫計 (body) thermometer는 누가 가장 먼저 만들었을까?

체온계를 처음 만든 사람은 갈릴레이의 친구이자 의사인 이탈리아의 산토리오 산토리오 Santorio Santorio(1561~1636)이다.

갈릴레이가 온도 변화에 따라 액체의 부피가 변하는 것을 이용했다면, 산토리오는 온도가 변할 때 기체의 부피가 변하는 것을 이용했다.

일반적으로 온도가 오르면 기체 부피는 팽창한다(샤를의 법칙 Charles's law).

이 법칙을 이용해 체온계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위 그림은 눈금이 새겨진 구불구불한 유리관 끝이 그릇에 든 물속에 잠겨 있는 산토리오 체온계.

이렇게 만든 체온계 반대쪽 끝부분을 환자가 입에 물고 있으면 입김에서 나오는 온도(체온)의 영향으로 유리관 안의 공기가 따뜻해지고, 샤를의 법칙에 따라 부피가 팽창해 물을 아래로 밀어내게 된다.

일정 시간이 지난 뒤 환자가 물고 있는 쪽 유리관 안의 물의 눈금을 읽어 체온을 측정했다.

그런데 체온을 한번 측정하려면 환자가 유리관을 30분 이상 입에 물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실용성은 좋지 않았다.

 

독일 과학자 다니엘 파렌하이트 Daniel Gabriel Fahrenheit(1686~1736)는 1714년 수은을 이용한 온도계를 처음 발명했다.

수은은 물보다 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부피가 변화하기 때문에 온도 측정이 매우 정확해졌다.

파렌하이트의 이름이 중국에 '화륜해특華倫海特'으로 전해지면서 그의 온도계는 '화씨華氏의 온도계'로 불렸다.

파렌하이트는 온도가 음수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를 찾고 그것을 0도로 삼으려 했다.

그래서 얼음물에 염화암모늄을 섞어 온도를 최대한 낮춘 다음 그 온도를 측정해 화씨 0도로 정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섭씨온도로 변환하면 영하(-) 17.8도다.

그리고 자신의 체온을 온도계로 측정하여 화씨 100도로 정했다.

화씨 100도는 섭씨로 변화하면 37.8도가 된다.

아마도 체온을 측정할 때 파렌하이트는 미열이 있었던 것 같다.

열이 있을 때는 쉬는게 좋다.

하여간 파렌하이트는 화씨 0도와 100도를 기준으로 다른 온도들도 측정했는데 물의 끓는점은 화씨 212도가 되었다.

단위가 도(각도 degree)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 화씨온도계는 360도 시계 모양이었다.

 

화씨온도계가 만들어진 후 약 30년이 지난 1742년 스웨덴 과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 Anders Celsius(1701~1744)는 임상에서 좀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물의 어는점이 0도, 끓는점이 100도인 온도 측정 체계를 고안했다.

어떤 과학자가 만든 0도, 80도 온도계를 계량한 것이었다.

셀시우스의 이름 역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섭이수사攝爾修思'가 되었고, 그의 온도 시스템은 '섭씨氏의 온도계'가 되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섭씨온도를 사용하고 있지만 미국만은 아직도 화씨온도계를 고집하고 있어서 미국에서 출판한 일부 교과서나 과학 서적을 보려면 화씨를 섭씨로 바꾸는 수고가 필요하다.

 

독일 의사 카를 분더리히 Karl Wunderlich(1815~1877)는 당시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발전하고 있었던 열 관련 연구 성과들을 의학 분야에 적용했다.

그는 다양한 질병을 가진 수많은 환자들의 체온을 일일이 기록하는 '체온표'를 처음으로 만들어 체온과 질병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덕분에 열이 나는 것이 하나의 질병이 아니라 질병 때문에 발생하는 선천면역반응 innate immune response(몸에 침입한 병원체 증식 온도보다 체온을 높게 끌어올림으로써 병원체 증식이 억제되는 동시에 체내효소 활성을 촉진시켜 면역반응이 빠르게 일어나도록 유도)임이 밝혀졌다.

섭씨 37도를 평균 건강 체온으로 정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분더리히에 의해 오늘날 의사들은 모든 환자들의 체온을 측정해 의무기록 맨 앞 장에 기록하게 되었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4. 6. 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