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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단원 김홍도와 표암 강세황 "송하맹호도"

새샘 2024. 6. 29. 16:34

<스승은 소나무를, 제자는 호랑이를 그렸다네>

 

김홍도·강세황, 송하맹호도, 18세기 후반, 비단에 담채, 90.4x43.8cm, 삼성미술관 리움(사진 출처-출처자료1)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은 시서화 모두에 뛰어난 정조 시대 문신이다.

자신을 포함하여 3대가 연속해서 기로소耆老所(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조선 시대의 기구)에 들어간 명문 출신이다.

하지만 형 강세윤이 귀양살이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에 응시할 생각을 버리고 재야에서 시서화에 전념하며 안산의 처갓집에서 근 30년을 지냈다.

 

그러다 1773년(영조 49) 영조의 배려로 61세의 나이에 처음 벼슬길에 올랐고 1778년(정조 2) 문신정시文臣庭試(임금의 특명으로 당상관 이하 문신에게 임시로 보이던 조선 시대의 과거)에 수석 합격하여 1783년 한성부漢城府 판윤判尹(오늘날의 서울특별시장 겸 수도방위사령관 겸 서울고등법원장 겸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에 해당)에 이르렀다.

1784년 건륭제乾隆帝(중국 청나라의 제6대 황제로서 재위 기간은 1711~1799년) 70세 축하연에 가는 천추사千秋使(중국 황제·황후·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보내던 조선 시대의 사신)의 부사로 북경에 다녀오기도 했으며, 노년까지 많은 작품을 남기고 79세에 세상을 떠났다.

 

표암은 뛰어난 문인화가로 남종화를 완벽하게 소화하여 '표암풍豹菴風'의 정형 산수화를 제시하였고, 서양화법의 도입을 솔선한 선구자였다는 점에서 회화사상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표암이 조선시대 회화사에 끼친 더 큰 공로는 왕성한 비평 활동에 있었다.

많은 작품에 화평을 남기는 왕성한 평론 활동으로 당대 '예원藝苑의 총수總帥'(예술계의 총지휘관)라는 평을 받았다.

 

표암의 비평 활동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하나는 앞 시기인 영조 시대의 관아제 조영석,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능호관 이인상 등 문인화가에 의해 전개된 새로운 화풍을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 등 정조 시대 화원들에게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한 점이다.

개척은 지식인(문인화가)이 하고 발전은 전문가(화원)가 담당하는 새로운 문화 창조의 튼실한 길을 연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단원 김홍도라는 불세출의 화가를 키워 화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끝까지 후원해준 공이다.

 

1781년 표함 69세, 단원 37세 때의 얘기다.

김홍도는 자신의 호를 단원檀園이라 짓고는 스승에게 현판을 하나 써주십사 부탁했다.

이에 표암은 기꺼이 제자의 청을 들어주려 했으나 정작 김홍도가 사는 집은 허름하여 현판을 써주어도 그것을 달 '원園'이 없었다.

이에 단원이라는 현판 대신 <단원기檀園記>라는 장문의 기문記文(기록한 문서)을 써주었다.

그리고 훗날 이를 보완하여 한 번 더 쓰고는 <단원기 우일본又一本>이라 하였다.

이 두 편의 기문이 단원의 일생을 증언하는 가장 정확하고 정보가 가장 많은 글로 남을 줄은 표암도 단원도 몰랐을 것이다.

 

표암은 <단원기>에서 "단원은 젖니를 갈 때(나이 7, 8세)부터 나의 집에 드나들었다"고 했다.

이때부터 단원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를 성심으로 가르친 것이다.

표함은 단원을 지칭하여 '무소불능의 신필神筆', 조선 400년 역사상 '파천황破天荒적 솜씨'(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해낸 솜씨)라고 극찬하였다.

 

호랑이는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듯 꼬리를 바짝 추켜올리고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데 등을 한껏 굽어 올리고 앞발에 힘을 모으로 있어 금방이라도 이쪽을 향해 치달릴 것만 같다.

특히 놀라운 것은 호랑이 몸에 있는 털의 표현이다,

얼핏 보기에 호랑이 몸의 줄무늬를 검정색과 갈색으로 번갈아 칠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터럭 하나하나를 일일이 헤아리듯 그렸다.

이런 치밀한 때문에 호랑이는 더욱 사실감과 생동감을 얻게 된 것이다.

 

 

송하맹호도 '표암화송' 낙관과 '사능' 낙관(사진 출처-출처자료2)

 

표암과 단원의 아름다운 사제 관계는 스승과 제자가 합작한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또는 <송호도松虎圖 >)에 잘 나타나 있다.

소나무 아래로 돌아 나오는 한 마리 호랑이를 그린 그림에서 소나무는 표암이, 호랑이는 단원이 그렸다.

이것은 그림의 오른쪽 위에 적힌 낙관에 '표암화송豹菴畵松' 즉 '표암이 소나무를 그렸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표암이 그린 소나무는 노송의 줄기와 여린 잔가지가 문인화풍으로 운치있게 표현되었다.

60대 노필의 선비화가다운 품격이 살아 있다.

이에 반해 30대 패기 있는 화원 단원의 호랑이 그림은 사실감이 충만하고 필치가 세밀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이 노년과 장년의 차이다.

 

하지만 표암과 단원의 합작이라는 <송하맹호도>에 대해 단원 그림에 대해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로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화 해설가이자 비평가인 고 오주석은 유홍준의 두 사람의 합작품이란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낙관 '표암화송豹菴畵松'의 네 글자 중 위 두 글자 '豹菴'과 아래 두 글자 '畵松'이 서로 다른 글씨체이다.

뿐만 아니라 '畵松' 는 그림의 왼쪽 낙관인 '士能'이란 글자와 먹색이며 필치까지도 똑 같은데 비해 위 두 글자 '豹菴'은 글씨가 흐릿할 뿐만 아니라 애초 잘못 쓴 엉터리 글씨라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탕 비단도 좀 긁힌 흔적이 보인다.

아마 원래 쓰여져 있던 글씨를 지우고 새 글씨를 쓰려고 무리하게 바탕을 긁어낸 흔적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이 그림값을 높히기 위하여 단원과 표암의 합작품으로 만들려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그럼 누가 이런 조작을 했을까?

오주석은 '송하맹호도'를 표구한 사람이 조작한 것이라 단언한다.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송하맹호도>는 아래 사진처럼 표구되어 있다.

 

송하맹호도 표구(사진 출처-출처자료2)

 

 

<송하맹호도>를 언제 그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1782년 단원 38세, 표암 70세 때 호랑이 그림을 합작했다는 기록이 있어 대략 그 무렵으로 추정된다.

표암의 처남인 류경종柳慶鍾은 꼭 이 그림인지는 모르겠으나 <호랑이 그림을 읊다(영화호詠畵虎)>라는 시를 한 수 남겼다.

 

"두 사람이 한 호랑이를 그리는데, 너무나 비슷하여 실물과 똑같네.········

표암과 단원일세. ········ 또 누가 있어 이 두사람을 계승하겠나.

낙락장송 소나무 아래로는 오뉴월 마파람이 일어날 듯하고 ········

채색이 살아나니 더욱 그럴 듯해지네."

 

단원과 표암의 관계는 표암이 세상을 떠나는 1791년, 단원 나이 47세까지 계속되었다.

단원이 20대의 젊은 나이에 도화서 화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표암의 추천 덕분으로 보인다.

훗날 단원이 어진 제작 후 관직을 얻어 사포서司圃署(궁중의 채소와 밭을 관리하는 조선 시대의 관아)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는 마침 표암이 그곳의 별제別提(조선 시대 각 관아에 속한 정육품·종육품 벼슬)로 제수되어 직장의 상하 관계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때도 표암은 단원과의 나이를 반으로 꺾는 '절년이하지折年易下之'하면서 나이를 잊고 지내는 '망년지우忘年之友'로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단원의 이름이 높아져 사람들이 단원의 그림을 받아와서 표암에게 글을 써달라고 하니 감회가 깊었다고 한다.

표암과 단원과의 이런 만남을 <단원기>에서 다음과 같이 감격적으로 말하였다.

 

"내가 단원과 사귄 것은 전후하여 모두 세 번 변하였다. 처음에는 단원이 어려서 내 문하에 다닐 때 그의 재능을 칭찬하기도 했고 그림 그리는 법(화결畵訣)을 가르치기도 했다. 중간에는 관청에 같이 있으면서 아침저녁으로 함께 거처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예술계에 있으면서 지기知己(자기 속마음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다운 느낌을 가졌다."

 

요약해서 말하면, 처음에는 사제 관계로 만났고, 중간에는 직장의 상하 관계를 만났으며, 나중에는 예술로서 만났다는 것이다.

단원에게는 그런 스승이 있었고, 표암에게는 그런 제자가 있었다.

 

※출처

1. 유홍준 지음, '명작 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주)눌와, 2013
2. 오주석,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03, 솔출판사)

3. 새샘 블로그 2008. 8. 19. 단원 김홍도 "송하맹호도"(https://micropsjj.tistory.com/16902120)

4. 구글 관련 자료

 

2024. 6. 2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