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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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라는 다리

새샘 2024. 6. 23. 12:32

<출처 서적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들>

사진 출처-출처자료1

 

"시간 여행은 너무나 위험해. 차라리 여자처럼 다른 우주의 신비를 연구하는 게 나을지도."

-영화 <백 투 더 퓨처2>에서 에머트 브라운 박사가 한 말-

 

 

언제부턴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간 여행을 하는 상황히 흔해졌다.

다른 시간대로 빨려 들어간다는 설정은 어쩌면 21세기에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보다도 더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간 여행이라는 테마에 쉽게 몰입한다.

그만큼 우리는 미래로의 또는 과거로의 여행을 바라기 때문인 것이다.

 

고고학자는 시간 여행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유적지 같은 곳에서 흙을 보물 다루듯 소중하게 긁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십중팔구 고고학자다.

고고학자는 바로 그 한 겹씩 벗겨내는 흙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한다.

 

 

22만 년의 세월이 쌓인 데니소바 동굴 지층(사진 출처-출처자료1)

 

최근 인류의 기원과 관련된 기사 가운데 네안데르탈인 Neanderthals과 같은 시기에 생존해 있던 것으로 알려진, 알타이 Altai 지역에서 발견된 '데니소바인 Denisovans'에 대한 것이 많다.

데니소바 동굴 Denisova Cave은 강인욱이 유학했던 시베리아 고고민족한연구소에서 지난 40여 년 동안 조사하고 있는 유적이다.

'데니소바'는 '데니스 Denis'라는 이름의 성직자가 이 동굴에서 은둔하며 살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동굴에서는 최근까지는 물론이고 1500년 전의 돌궐 시대와 2500년 전 스키타이 Scythia 시대의 사람들도 살았다.

이들은 빙하기가 끝난 이후에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지층에 그 흔적이 잘 남아 있다.

 

하지만 데니소바 동굴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빙하기 시대인 소위 '홍적세洪積世 Pleistocene'(노아 Noah 의 홍수洪水가 있었던 시기라는 뜻)라 불리는 시기의 지층에서 발견된 유물 덕분이다.

데니소바 동굴에는 약 6미터 두께의 흙이 쌓여 있고, 그것은 모든 22개의 지층으로 나뉜다.

지층의 가장 밑바닥은 약 30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데니소바인의 화석은 바닥에서 약 4미터 위인 11층에서 발견되었다.

데니소바인은 약 5만 년 전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다시 말해, 한 삽 정도의 차이를 두고 몇 만 년의 세월을 건너뛰는 셈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데니소바인의 뼈는 사실 콩알만 한 크기의 새끼 손가락뼈에 불과했다.

그 뼈를 분석하는 놀라운 기술만큼 중요한 건 그것이 발견된 지점이다.

고고학자가 혹시라도 그 위치를 잘못 기록했다면 그 연대는 몇 만 년씩 바뀌었을 것이다.

 

데니소바 동굴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땅 속의 흙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마치 케이크처럼 쌓여 있다.

한 층 한 층은 몇백 년 또는 몇천 년의 시간을 두고 쌓인 것이다.

발굴장에서 고고학자들이 솔이나 꽃삽으로 조심스럽게 작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순간의 부주의한 발굴로 지나치는 층위는 두고두고 고고학자의 실수로 남게 된다.

그러니 현장에서는 낭만보다 긴장이 넘쳐날 수밖에.

 

고고학은 쉽게 설명하면, 유물을 연구해서 과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지식, 문화 등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은 왜 그렇게 과거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많았을까?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건 바로 과거를 생각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인류의 진화하는 숙명에 기인한다.

 

유인원이 인류로 발달한 대표적인 진화의 선택으로 '직립보행直立步行(서서 걷기)'을 꼽는다.

그런데 이 직립보행은 사실 목숨을 건 진화였다.

발달된 두뇌와 지혜를 얻는 대신에 너무나 많은 동물적인 장점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약 30여 종의 인류가 있었다.

하지만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 슬기사람)만을 제외하고 모두 멸종했다.

 

나무 위에서 주로 활동했던 유인원이 초원으로 내려오면서 손은 자유롭게 쓰게 되었지만, 두 발로만 걷게 되면서 그 보행속도는 현격하게 느려졌다.'

때문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Australopithecus 같은 초기 호미니드 hominid(사람과科 동물로서 흔히 '유인원類人猿'으로 번역)들은 하이에나 hyena나 표범과 같은 육식동물의 단골 사냥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직립보행을 하면서 피가 하체로 쏠리고 허리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진 탓에 허리 디스크, 치질, 탈장과 같은 사족보행동물에게는 없는 병들이 생겨났다.

게다가 두뇌가 커지는 바람에 인간에게 출산은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되었다.

인간의 두뇌가 커지는 속도만큼 여성의 골반과 산도産道(출산길)는 넓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생인류의 조상들은 무리를 지어 살면서 자신들의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생존해왔다.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시기에는 이미 언어가 발달하여 상당히 구체적인 지식을 전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앞선 세대의 경험을 습득하는 것이 생존을 결정하는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과거 조상들의 지혜는 현재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조상들의 경험은 언어를 통해 신화와 전설로 이어졌다.

과거의 사람들을 기념하는 행위는 4만 년 전에 발달한 동굴벽화와 같은 예술품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장식과 예술에는 사물을 모방하여 학습을 하는 습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이들의 소꿉놀이, 코미디의 패러디 또는 성대묘사 같은 것들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습성에서 기인한다.

 

 

복잡한 지층이 쌓여서 이루어진 튀르키예의 차탈 후유크 유적(사진 출처-출처자료1)

 

과거의 유물을 찾고 연구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보물찾기가 아니라 바로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최초로 과거의 유물을 인식하는 고고학적인 활동을 한 때는 언제였을까.

현재 알려진 가장 구체적인 증거는 튀르키예에 위치한, 8000년 전의 것으로 알려진 차탈 후유크 Çatalhöyük(또는 차탈 회위크/차탈 회익)(영어 Chatalhoyuk)유적이다.

 

차탈 후유크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인 회화, 천장을 통한 출입 흔적, 집 안에 두는 무덤, 벽화, 화덕 등이 발되었다.

이들은 근동 지역의 '테페 Tepe'라는 곳에서 특이한 마을을 이루는 형태로 발견되었다.

건조한 사막 지역에서 진흙 벽돌로 집을 지어서 살다가 집을 증개축하게 되면 그 벽을 허물어서 평평하게 하게 다시 그 위에 진흙 집을 짓는데,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몇십 미터 높이의 인공적인 언덕이 생긴다.

몇천 년을 두고 한 지역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면 당연히 이전에 살던 사람의 흔적이 발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탈 후유크의 사람들은 가족 구성원이 죽으면 시신을 집의 바닥에 묻었다.

아마 먼저 죽은 사람들이 자신들과 함께 있다고 하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차탈 후유크의 마을 주민들은 집을 개축하는 과정에서 전에 살던 사람들이 만든 무덤의 흔적을 발견하면 일단 공사를 중단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과거의 유물과 유골에 대한 경외와 공포심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이후에 공사를 재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과거의 무덤과 유물이 단순히 지나간 시대의 물건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과거의 지식 또는 종교적인 영향을 주는 물건이었다는 걸 인식했다는 것이다.

 

물론 차탈 후유크 주민들의 행동을 정식 발굴로 볼 수는 없겠지만, 과거의 유물을 발굴하고 그 유물에 의미를 부여한 데에는 고고학적 사고관이 적용된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시간 여행을 꿈꾸는 인간의 판타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고고학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꿈꾸던 찬란한 과거 같은 건 없다고 밝혀진다 해도 또는 인류가 바라마지않는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시간 여행을 꿈꿀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이라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과 색다른 시공간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호기심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로 실제로 인간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고학은 이러한 평범하지만 불변의 진실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강인욱의 노트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과거의 사람들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느낀 희로애락의 감정을 마찬가지로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강인욱의 비밀노트에는 일반적인 보물찾기 이야기에는 없는 과거 사람들의 감성과 느낌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흐름출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4. 6. 1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