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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 북반구를 따라 이어지는 '푸드 로드'

새샘 2024. 9. 3. 11:30

최근 김치의 원조 국가가 어디인지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사실 김치처럼 채소를 발효시킨 음식은 수천 년 전부터 유라시아 Eurasia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기원을 추적하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 Europe과 시베리아 Siberia 등지에서도 김치와 비슷한 음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세계에 각인된 이유는 지난 몇천 년 동안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김치 문화를 발달시켜왔기 때문이다.

 

 

○3,500년 전 빗살무늬토기로 만든 김장독

 

러시아 연해주의 레티호프카 유적(사진 출처-출처자료1)

 

러시아 연해주의 레티호프카 유적에서 발견된 저장 토기들(사진 출처-출처자료1)


러시아 Russia 연해주沿海州(프리모리예 Primorye 지방)는 근대 이후 고려인들이 살기 이전부터 한반도 동북한 지역과 동일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곳
이다.

 

2004년, 연해주의 '레티호프카 Retihovka'라는 지역에서 3,500년 전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마을이 발굴되었다.

그중 한 집을 골라 발굴해보니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사람이 살 만한 자리는 거의 없었고 거대한 항아리들만 잔뜩 묻혀 있었던 것이다.

당시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 영남대학교 김재윤 교수는 이 유적이 사람이 거주하던 집이 아니라 저장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항아리 안에는 무엇을 저장했을까?

그곳에서 발견된 토기 중 사람이 두 팔로 안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토기 하나에는 곡물과 바가지가 들어 있었다.

반면, 그 주변에 다른 토기들에는 곡물이 담겼던 흔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 토기들에는 겨울을 나기 위한 곡물 외에 다양한 염장 채소와 고기가 담겨 있었을 것다.

 

연해주와 함경도 일대에서는 약 5,000년 전부터 빗살무늬토기를 빚었던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하지만 이 지역은 점차 기후가 추워지면서 위기를 맞는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은 추운 기후가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이 무렵 연해주와 동북한 지역의 집터에서는 거대한 항아리들이 다수 발견되었지만, 발굴되는 곡물은 적었다.

이 시기를 살던 사람들은 추워진 기후에 따라 농사 대신 사냥을 해야 했고, 기나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커다란 항아리에 많은 음식을 보존해야 했을 것이다.

 

 

러시아 크라스키노 발해 유적에서 발견된 저장 채소를 담았던 항아리(사진 출처-출처자료1)

 

월동 음식으로 풍부한 비타민을 함유한 김치 같은 발효 채소가 빠질 수 없다.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레티호프카의 저장 구덩이는 마을의 김장독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닐까?

이후에도 옥저에서 발해로 이어지던 시대의 마을로 추정되는 이 지역 집터에서는 빠짐없이 거대한 항아리가 집 근처에 묻힌 채로 발굴되었다.

필자가 크라스키노 Kraskino 발해 성터 발굴에 참여했을 때도 집 근처에서는 늘 거대한 항아리들이 발견되었다.

함께 발굴 작업을 하던 러시아 학자들도 입을 모아서 그 항아리들이 '고려인들의 김장독'과 똑같다며 신기해했다.

겨울이 매섭고 긴 지역에서 마을을 이루며 농사를 지었던 우리 민족에게 이런 저장 토기는 필수품이었을 것이다.

 

 

○절임 배추, 유라시아인을 살리다

 

앞서도 말했지만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동서양 곳곳에서는 김치와 매우 유사한, 배추를 발효시킨 음식들이 널리 유행한다.

가령, 독일 Germany의 사우어크라루트 Sauerkraut, 프랑스 France 알자스 Alsace 지역의 슈쿠르트 Choucroute, 러시아의 절임 양배추(카푸스타 Kapusta)와 그것을 넣어 끓인 수프 soup(시 sch)가 그것들이다.

이 '시'라는 수프는 고춧가루를 조금만 더 넣으면 김치찌개와 흡사한 맛이 난다.

 

값도 싸고 양도 푸짐한 배추를 절여서 만든 음식은 러시아인들에게 단순한 요리가 아니었다.

고기를 쉽게 먹기 어려웠던 가난한 러시아 농민들의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영혼의 수프였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한국과 김치로 원조 논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러시아인들은 오히려 고려인들의 김치라고 할 수 있는 한국식 당근 샐러드 carrot salad를 무척 좋아한다.

이들은 한국 음식 하면 한국식 당근 샐러드를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다.

이 한국식 당근 샐러드는 19세기 말 러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만들어 먹은 음식이다.

당시 극동과 사할린 Sakhalin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은 김치 대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채소를 절여서 먹었다.

 

이들은 이후 스탈린 Stalin 집권 시절 카자흐스탄 Kazakhstan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자 황무지에서 구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채소로 김장을 하곤 했다.

이런 고려인들의 전통은 유라시아 일대에서 기나긴 겨우내(겨울 내내) 채소를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널리 사랑받으며 구소련 일대에 널리 퍼졌다.

우크라이나 Ukraine에서 타지키스탄 Tajikistan과 흑해 연안 그리고 북극해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서까지 고려인들이 유행시킨 이 특유의 채소 절임 샐러드를 만날 수 있다.

 

한국식 당근 샐러드이든 러시아의 '시'이든 모두 유라시아 대륙의 사나운 겨울을 견디기 위한 민중들의 음식이었다.

이름은 달라도 유라시아 각지의 김치와 비슷한 절임 채소 요리에는 민초들의 억척스러운 생활력이 숨어 있다.

 

 

○과연 중국에서 김치가 기원했을까?

 

절임 배추 요리는 러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 대륙 외의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서도 김치와 비슷한 음식을 매우 이른 시기에 만들어 먹었던 기록이 있다.

약 2,250년 전에 쓰인 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책에 따르면 3,000년 전 주나라 문왕이 절임 채소(저菹)를 먹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로부터 600년 뒤의 인물인 공자가 주나라 문왕을 따라 하기 위해서 이 절임 채소를 먹었지만 억지로 3년을 먹은 뒤에야 비로소 즐기기 되었다는 기록이다.

공자가 예를 다하기 위해 억지로 3년이나 먹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맛에 적응했다는 말은 절임 채소 음식이 중국인들의 기호와는 다소 맞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나라는 원래 중국 서북방 초원에서 살던 사람들이 점차 중원으로 밀려와서 정권을 잡고 세운 국가다.

반면, 공자는 산둥반도 사람이다.

초원과 맞닿은 북방 지역의 사람들이 오랜 겨울을 나기 위해서 야채를 절여 먹었다는 것은 곧 절임 채소 요리가 중원의 전통이 아님을 반증한다.

사실 배추를 비롯해 야채를 절여 먹는 전통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신석기시대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 India, 스위스 Switzerland에서도 배춧과 식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야채를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은 햇볕에 바싹 말리거나 절여서 발효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절임 채소 요리 가운데서도 배추를 절여 먹는 음식으로는 김치만큼 유명한 것이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동아시아에 배추가 유입된 시기는 상당히 늦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배추는 고려나 조선시대가 되어서야 한반도에 전해진 것으로 본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오늘날 가장 많이 먹는, 고추를 넣은 매운 김치의 역사는 400년, 통배추를 버무린 김장의 역사는 150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김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잡았다.

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것은 특별한 레시피 recipe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김치라는 음식 안에 한반도의 지리적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삶을 이어나간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김치에만 들어가는 젓갈은 그 지혜의 정수다.

 

젓갈은 한국 김치만의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내는 일등 공신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서는 생선 발효 문화가 발달했다.

한반도의 서남해안은 말할 것도 없고 고려인들의 음식 문화에서도 가자미식해食醢(식해는 생선에 약간의 소금과 밥을 섞어 숙성시킨 식품을 가리킨다)가 발달했다.

중국 기록에도 한 무제가 동이족의 땅에서 젓갈류의 맛에 반해 '축이逐夷(오랑캐를 몰아냄)'라고 이름을 붙일 정도였다고 한다.

'오랑캐를 몰아낸다'라는 말의 뜻은 '오랑캐의 맛을 따라간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돼지 한 마리 잡으러 갈까?"라는 말이 "돼지고기 먹으러 갑시다"라는 말로도 통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셈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채소 절임 요리 가운데서도 한국의 김치만큼 다양한 젓갈류로 그 풍미를 끌어올린 것은 거의 없다.

 

 

○원조 논란보다 중요한 것

 

이처럼 사람들은 약 1만 년 전부터 자신이 사는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맞춰 저마다 독특한 발효 음식을 발명하고 보급해왔다.

인류가 발효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증거는 고고학의 발달로 전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고고학 연구 자료가 쌓이면 쌓일수록 김치 같은 발효 음식과 그것의 역사는 더 오래된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음식 문화를 설명할 때 중요한 것은 기원이 아니라 그 음식이 변화하는 환경에 어떤 식으로 적응하며 만들어져왔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치 같은 발효 음식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은 의미 없는 논쟁이다.

오늘날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햄버거 hamburger가 독일의 함부르크 Hamburg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여담일 뿐 햄버거의 본질을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것처럼.

 

음식에 민족적 자부심을 얹는 것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음식은 영향력이 강력한 문화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음식을 가장 먼저 만들어 먹었다고 해서 세계가 그 음식을 해당 국가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와인 wine의 역사를 예로 살펴보자.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와인을 처음 만들어 마신 지역은 조지아 Georgia를 중심으로 하는 서아시아로 추정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와인의 나라 하면 프랑스나 칠레 Chile를 꼽는다.

역설적으로 전통 음식의 세계화를 지향한다면 원래의 조리법과 맛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중국 음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유는 전 세계에 널리 퍼진 화교들을 통해 그와 같은 로컬화 localization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한국 김치는 2013년과 2015년 각각 남한과 북한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선정 심사를 위해 유네스코 UNESCO에 제출한 보고서는 김치라는 무형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살려서 만들어졌다고 평가받는다.

이 보고서에는 김치의 역사가 1,000년 정도라고 적혀 있었지만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원조 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문화의 현대적 의미와 보편적 가치다.

이는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하며 붙인 타이틀, '김장: 김치를 만들고 서로 나누기'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선정위원회 측은 김치의 원조元祖를 따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류가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지혜롭게 저장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었던 지혜를 김치에서 발견하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승자는 불분명한 원조를 큰 소리로 주장하는 자가 아니었다.

세계 사람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가치를 재발견해낸 자가 승자였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세상 모든 것의 기원, 흐름출판, 2023.

2. 구글 관련 자료

 

2024. 9. 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