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콜레라와 존 스노 본문
콜레라 cholera는 콜레라균 Vibrio cholerae(비브리오 콜레라)에 오염된 대변이나 구토물, 오염된 손으로 조리한 음식 등을 통해 전염되는 질환이다.
감염되고 며칠 동안의 잠복기를 지나 엄청난 양의 설사가 말 그대로 죽을 만큼 쏟아져 결국 탈수로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다.
원래 인도 갠지스강 Ganges River에서 국소적으로 생기는 풍토병이었으나 근대 이후 전 세계적인 교류가 늘면서 콜레라도 전 세계로 퍼졌다.
콜레라란 말은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 Galenos의 4체액의 하나인 '노란 담즙 chole-'과 '흐른다 -rein'는 뜻의 두 라틴어가 합쳐져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노란색의 설사를 보고 황담즙이 배출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콜레라가 일본에 퍼지면서 비슷한 발음인 '호열랄虎列剌'이라 불렸는데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어그러질 랄剌'이 비슷한 글자인 '찌를 자刺'로 변해 '호열자虎列刺'가 되었다.
'호랑이 발톱에 장이 찔린 것 같은 통증'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이었다.
콜레라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이탈리아 의사 필리포 파치니 Filippo Pacini였다.
파치니는 1854년 콜레라로 사망한 환자의 장 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다 쉼표(',' 콤마 comma)처럼 생긴 미생물을 발견했다.
그는 쉴 새 없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미생물을 보고 '진동하다 vibrate'란 뜻의 '비브리오 Vibrio'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비브리오 콜레라 Vibrio cholerae'가 되었다.
영국의 존 스노 John Snow(1813~1858)는 마취 전문 의사였다.
산모들이 출산할 때 마취제를 사용하는 문제로 종교계와 의학계 사이에 갈등이 있었을 때 영국 여왕을 클로로포름 chloroform으로 마취해 출산을 도움으로써 논란이 일단락되도록 하는데 기여했던 바로 그 의사였다.
당시 의학자들은 콜레라가 나쁜 공기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스노는 그런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나쁜 공기 때문에 콜레라가 발생한다면 폐로 흡수되는 나쁜 공기가 어떻게 호흡기 증상은 전혀 없고 심한 설사만 유발하는 걸까?"
마취의사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인도에서 시작된 콜레라가 영국에 처음 유행한 것은 1832년이었다.
1차 대유행이라고 명명된 이 기간 동안 6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1848년 영국의 두 번째 콜레라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당시 콜레라의 원인을 연구하던 스노에게 아주 특이한 사례가 발견되었다.
존 반스 John Barnes라는 한 노동자의 콜레라였다.
반스는 콜레라가 유행하지 않은 지역에 살았는데 유행 지역에 살던 여동생이 콜레라로 사망하고 나서 유품이 그에게 배달된 뒤 악몽이 시작되었다.
세탁하지 않은 여동생의 옷을 만지고 나서 하루 만에 반스는 콜레라에 걸렸다.
반스가 쓰러지자 이웃들이 며칠간 그를 간병했는데 그중 13명이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다.
나쁜 공기가 유품 상자에 담겨 콜레라를 전염시켰다고 볼 수는 없었다.
스노는 콜레라의 원인이 나쁜 공기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여동생의 옷에 묻은 콜레라의 원인 물질이 반스의 손을 통해 입으로 전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콜레라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심한 설사를 설명할 수 있었다.
또한 스노는 환자가 발생한 집들의 위치를 보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큰길을 마주한 집들 가운데 한쪽 방향에서만 콜레라 환자가 발생한 것이다.
양쪽 집들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사용하는 우물이 달랐고, 콜레라 환자들이 사용했던 우물은 최근에 하수구 물이 넘쳐 오염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스노는 무언가로 오염된 식수가 콜레라의 원인임을 깨달았다.
지역 조사를 더 보강한 스노는 1849년 <콜레라의 전파 방식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자신의 생각을 발표했다.
1853년 콜레라가 다시 대유행하자 스노는 자신의 주장을 실험하기 위해 생업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런 학문적인 열정이 정말 존경스럽다.
당시 런던 London에는 여러 수도 회사들이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
일부 지역은 두 개의 수도 회사가 서로 경쟁해 이웃한 집이 서로 다른 회사에서 물을 공급받는 경우도 있었다.
스노는 바로 그런 지역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거대한 실험실이 되리라 생각했고, 곧바로 그 지역의 집들을 일일이 방문해 어느 수도 회사의 물을 사용했는지 조사했다.
결과는 불을 보듯 명확했다.
가구당 환자 발생률이 한 수도 회사가 다른 회사들보다 무려 14배나 높았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는 사람들이었기에 때문에 식수 문제임이 너무도 명확했다.
이때 스노는 자신을 아주 유명하게 만든 조사를 시작했다.
영국 런던의 브로드 가 Broad Street에서 500명이 단 열흘 만에 콜레라로 집단 사망했다.
스노는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기 위해 브로드 가를 방문해 슬픔에 잠긴 환자 가족들을 면담했다.
그리고 콜레라 사망자가 나온 집들을 지도에 꼼꼼히 표시했다.
그러나 나서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브로드 가의 한 식수 펌프와 가까운 곳에 살았던 것이다.
더욱 특별한 사실은 브로드 가의 구빈원과 양조장에서는 환자가 아무도 발생하지 않았는데 이 두지역은 식수 펌프를 이용하지 않고 자체 우물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콜레라와 오염된 물, 식수 펌프의 관계가 확실해졌다.
스노는 공무원들을 설득해 브로드 가 식수 펌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손잡이를 제거해버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콜레아의 발생이 멈춘 것이다.
이 사건은 오늘날 존 스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당시에는 이렇다 할 반향이 없었다.
전문가들이 브로드 가 폄프의 식수를 정밀히 검사했지만 오염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시 나쁜 공기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다고 여겼고, 식수 펌프 손잡이 제거와 콜레라 발생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영국 도시 하수위원회가 장기간의 조사 끝에 내린 최종 결론 역시 콜레라는 공기에 의한 전염이었다.
스노는 몇 해 뒤 45세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해 브로드 가 식수 폄프에 대한 미스터리는 영영 땅에 묻힐 것만 같았다.
그런데 콜레라로 인한 사람들의 죽음을 가까이서 무력하게 지켜보던 신부가 있었다.
헨리 화이트헤드 Henry Whitehead(1825~1896)라는 그 신부는 스스로 브로드 가 콜레라의 비밀을 파헤쳐보기로 했다.
화이트헤드는 콜레라 사망자를 자세히 분석한 끝에 최초 사망자를 알아냈다.
5개월 된 여자아이로, 그 아이가 콜레라 증상을 보인 날짜와 3차 콜레라 대유행이 시작된 날짜와 같았다.
화이트헤드는 그 아이의 집을 찾아갔다.
문제가 된 펌프의 바로 앞집이었다.
그는 아이 엄마에게 질문했다.
"혹시 설사했던 아이가 사용한 기저귀를 빨고서 물을 어디에 버렸나요?"
엄마가 대답했다.
"집 앞 웅덩이에 버렸어요."
화이트헤드는 그녀가 물을 버렸다는 웅덩이를 찾았다.
브로드 가 식수 펌프와 불과 60센티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거기서 웅덩이에 고인 물이 미세한 균열을 타고 식수 펌프의 우물로 스며드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화이트헤드는 3차 콜레라 대유행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다.
1853년 8월 31일 브로드 가의 어린아이가 콜레라에 걸렸다.
아이는 9월 2일 사망했다.
아이 엄마는 8월 31일부터 9월 2일 사이에 아이가 사용했던 기저귀를 빨고 나서 그 물을 집 앞 웅덩이에 버렸다.
웅덩이의 오염된 물이 60센티미터 떨어진 브로드 가 펌프 벽의 미세한 균열을 통해 펌프 안으로 침투했고, 그 펌프의 물을 사용한 브로드 가의 500명이 콜레라로 사망했다.
콜레라로 인한 참상이 벌어지던 그때 최초 원인이었던 웅덩이의 물은 말라 흔적이 사라져버렸고 더 이상 펌프 안으로 오염물질이 침투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존 스노가 혼자 힘으로 모든 상황을 추리해 급수 펌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뒤 전문가들을 불러 정밀검사를 했을 때는 급수 펌프에 오염원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원인물질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브로드 가 식수 펌프 사건의 전말이었다.
환자 발생 분포와 지역 특성을 분석해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려 했던 존 스노는 재평가를 받았다.
그는 혼자 힘으로 콜레라의 원인에 대한 미스터리를 거의 해결한 의학계의 셜록 홈즈 Sherlock Holmes이자 근대 역학의 아버지였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질병을 유발하는 환경을 연구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것은 미생물 연구와 항생제 개발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다.
항생제는 한 명의 환자를 호전시키지만, 환경이 개선되면 수만 명의 환자가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개인의 힘으로 불가능하며 공공기관이 나서서 건강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채드윅 Chadwick이 만들어갔던 공중보건이었다.
채드윅과 스노라는 두 학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감염병을 치료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공중보건 얘기를 먼저 꺼냈다.
이제부터 의학자와 미생물의 본격적인 얘기를 차근차근 하려 한다.
인류를 괴롭혀온 수많은 미생물을 찾고 극복하는 본격적인 의학의 역사를 짚어보면서 백신과 항생제를 얻기 위한 과학자와 의학자들의 헌신과 노력을 마주할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다음 이야기의 첫 번째 주인공은 당연히 인류 최초의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질병인 천연두가 그 이야기의 첫 단어가 돼야 할 것이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4. 12. 2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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