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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 꽁꽁 감춰진 얼굴 뒤에 숨은 세계사

새샘 2025. 5. 5. 23:52

코로나 팬데믹 coronavirus pandemic(COVID-19 pandemci) 시기를 거치는 동안 마스크 mask는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하지만 원래 마스크는 의료용이 아니라 신을 상징하는 도구였다.

마스크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대개 얼굴을 가려주는 복면이나 다른 모습이 그려진 가면을 가리킨다.

배트맨 Batman이나 쾌걸 조로 Zorro가 쓰고 다니는 가면도 마스크이고, 우리나라의 각시탈이나 하회탈 같은 전통 탈도 마스크에 해당한다.

가면을 쓰는 순간 우리는 다른 자아를 연기하게 된다.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마스크를 쓰는 순간, 다른 사람의 삶에 올라타는 '탑승권'을 끊은 셈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마스크를 만들어 썼을까?

또 어떤 이유에서 마스크가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샤먼의 필수품이자 죽은 이를 추모하던 도구

 

(위)프랑스 레 트루아 프레르 동굴벽화에 그려진 사슴탈을 쓴 샤먼(또는 마법사), (아래)티베트의 고대 문명 국가인 상웅국의 샤먼 무덤에서 발굴된 황금 마스크. 머리 부분에 우리게에 익숙한 사슴 장식이 보인다.(출처-출처자료1)

 

고대에 마스크는 샤먼의 전유물이었다.

샤먼은 하늘의 뜻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대리인이었다.

이들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벗어나 신과 맞닿는 의식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활용했다.

가면을 착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가령, 구석기시대 샤먼은 동물의 모습을 한 가면을 쓰고 의식을 치렀던 것으로 짐작된다.

프랑스 레 트루아 프레르 동굴 Cave of the Trois-Frères in France에서는 1만 5,000여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사슴탈을 쓴 샤먼(또는 마법사)이 그려져 있었다.

 

 

'잉판의 미남'이라 불렸던 2,000년 전 실크로드의 미라와 마스크(출처-출처자료1)

 

유물 발굴 작업을 하다 보면 마스크가 꽤 많이 발견된다.

많은 나라에서 죽은 이를 매장할 때 그냥 묻지 않고 얼굴을 복면 같은 것으로 감싸는 장례 풍습을 갖고 있다.

복면 겉에는세상을 떠난 사람의 살아생전 건강했던 모습을 그려 넣는다.

이는 그가 저승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행위일 것이다.

하지만 별도의 방부 처리를 하지 않은 이상, 면포 같은 직물은 썩어 없어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물론, 예외적인 사례도 있다.

실크로드 지역처럼 건조한 사막지대가 대표적이다.

 

실크로드(비단길) Silk road 타클라마칸 사막 Taklamakan Desert 남부 잉판(영반營盤) 지역에 있는 약 2,000년 전의 무덤에서 미라 한 구가 발견되었다.

이 미라는 화려한 비단옷과 황금 장식을 두르고 있었으며, 얼굴은 마스크로 감싸여 있었다.

고고학자들이 판정한 결과, 이 미라의 주인공은 귀족 신분으로 스물다섯 살 정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미라를 비롯해 유물 사진이 공개되자 중국 네티즌 netizen들은 이 미라에 환호했다.

마스크의 표정이 굉장히 따뜻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중국 신장성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 마스크(출처-출처자료1)

 

실크로드에서는 황금 마스크가 제법 많이 발굴된다.

1997년에는 약 1,500년 전 훈족 Huns(서쪽으로 이동한 흉노 일파를 가리키는 이름)이 남긴 황금 마스크가 중국 신장(신강新疆)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목구비 주위를 보석으로 둘러서 치장하고 눈에는 석류석石榴石(규산염 광물로서 고운 것은 보석으로 이용)을 화려하게 박아 넣은 것이 인상적인 황금 마스크다.

 

장례식장에 놓이는 영정 사진은 보통 살아생전 고인의 모습 가운데서 단정하거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선택되어 놓인다.

마스크는 오늘날 영정 사진의 역할을 했다.

옛사람들은 죽은 이에게 마스크를 씌워주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을 시절을 떠올리며 추모했을 것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황금 마스크

 

1986년 중국 쓰촨성(사천성四川省) 광한시广汉/廣漢에서는 세계 고고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유물들이 발견된다.

바로 다량의 청동 인물상이 출토된 것이다.

쓰촨성은 우리가 흔히 '사천四川'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험난한 분지 지형으로 인해 중원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었던 곳이다.

특히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발굴 조사가 시작된 싼싱두이(삼성퇴三星堆) 유적은 청동기시대 주요 문화권으로 이곳에서는 약 3,500년 전부터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 흔적이 발견되었다.

현재 싼싱두이 유적은 중국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지에만 부여되는 '국가사적지'로 등록되었고, 유네스크가 선정하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정식 목록이 되기 전, 후보에 해당하는 자격)에도 포함되었다.

 

사실 싼싱두이 유적은 1930년대에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미국 목사 데이비드 그레이엄 David C. Graham에 의해 가장 먼저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 유적이 고고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장소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싼싱두이 유적의 진면목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1986년이 되어서야 밝혀졌다.

싼싱두이 유적은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제사에 썼던 여러 용품과 제물을 한데 모아서 버린 구덩이인데, 이곳에서 실제 사람 크기의 거대한 인물상을 비롯해 다양한 모습의 청동 인물상이 출토된 것이다.

이 청동 인물상들은 마치 영화 <아바타 Avatar>에 나오는 나비족 같은 모습이었다.

 

 

싼싱두이 유적에서 멀지 않은 청두에서 발굴된 황금 마스크. 동아시아에서 그 연대가 가장 이르다.(출처-출처자료1)

 

이후 싼싱두이 유적에서 멀지 않은 청두(성도成都)에 위치한 진샤(금사金沙) 유적에서 3,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 마스크가 발견된다.

이 황금 마스크는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황금 마스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커다란 눈매와 뾰족한 코, 두꺼운 눈썹, 각진 얼굴 등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볼 때 이 황금 마스크는 싼싱두이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 인물상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청두에서 발견된 황금 마스크의 겉모습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크게 치켜뜬 눈이다.

이는 지혜의 상징인 '천리안千里眼 all seeing eye'을 뜻한다.

아마도 이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이 천리안을 가졌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주에서 기원한 방역 마스크

 

주술적 의미가 컸던 마스크는 129여 년 전부터 인간을 살리는 의료용 도구로 용도가 바뀌었다.

근대의 세균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도 인류는 다른 사람의 침이나 공기 중 호흡을 통해 병이 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세균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므로 '나쁜 기운' 또는 '악마의 숨결'과 접촉하게 되어 악마의 기운이 몸으로 들어온다고 믿었다.

 

오늘날과 같은 의료용 마스크 형태를 지닌 마스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7세기 유럽에서 페스트 pest(흑사병)가 한창일 때였다.

당시 프랑스 의사가 펭귄처럼 생긴 마스크를 개발했다.

이 마스크에는 마늘과 새 부리를 달았는데, 모두 악령을 퇴치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주술적인 의미가 깃든 마스크였지만 결과적으로 이 마스크가 페스트를 물리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본격적으로 방역용 마스크가 도입된 것은 20세기 초 만주에서다

1910년 무렵, 만주에서는 페스트가 널리 유행했다.

만주 일대에서 설치류를 사냥해 모피를 벗기던 사람들 사이에서 페스트가 번지기 시작했는데, 당시 러시아 Russia가 만주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철도를 건설했고 철도 동선을 따라 하얼빈(합이빈哈爾濱)으로까지 페스트가 퍼진다.

당시 추산으로 약 10만여 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페스트의 전파를 막는 것은 화교 출신 의사 우렌더(오련덕伍连德)였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꼭 쓸 것을 종용했다.

이후 마스크의 효능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 유행 때도 증명되었다.

 

이제 죽은 사람을 위로하는 마스크 대신에 산 사람을 살리는 '마스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마스크는 그 형태가 단순한 것 같지만 몇백만, 몇천만 명의 희생으로 검증된 의료 도구다.

아마 몇천 년 뒤의 고고학자들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시작된 인류의 발명품 목록에 의료용 마스크도 함께 올릴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유행병 또는 범유행병)에서 엔데믹 endemic(풍토병)으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다.

2022년 6월 한 기업에서 설문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실외 마스크 의무가 해제되었어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겠다고 답한 사람들이 약 72퍼센트나 되었다.

추가 감염 우려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3년여 동안 민낯을 가리고 다니던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SNS에 올리는 사진들이 또 다른 형태의 마스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본인의 진짜 모습은 가리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준다는 뜻에서 그렇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마스크의 형태와 그 의미는 차츰 변화해왔다.

하지만 진짜 모습을 가린다는 본질적인 의미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인류는 또 어떠한 마스크를 쓰게 될까?

 

※출처

1. 강인욱 지음, 세상 모든 것의 기원, 흐름출판, 2023.

2. 구글 관련 자료

 

2025. 5. 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