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메신저 -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본문
'카톡! 카톡!'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메신저(쪽지창) messenger 알림이 때론 귀찮지만, 이제 우리는 이런 쪽지창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인터넷(누리망) internet과 통신수단이 발달하면서 그에 맞춰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메신저도 여러 차례 변화를 거듭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정 사기업에서 제공하는 메신저 서비스 service가 정부의 중요한 소식을 전하는 망으로 사용될 정도로 그 지배력이 대단하다.
나라마다 선호하는 메신저 서비스가 조금씩 다른데, 그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과 사람을 실시간으로 연결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사물과 데이터(자료) data가 모두 연결되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지구촌은 연결사회를 넘어 초연결사회가 되었다.
연결은 곧 소통을 뜻한다.
한편, 인류 역사를 굽어보면 연결의 역사는 곧 정복의 역사이기도 했다.
2,300여 년 전 중국의 북방과 몽골 일대를 호령하던 유목 민족의 제국 흉노는 메신저만으로 거대한 제국을 일궈냈다.
메신저를 통해 거대한 제국을 일사불란하게 다스렸던 이들의 모습에 오늘날 스마트 smart(정보화 첨단) 사회에 적응 중인 우리를 비춰보는 것은 어떨까?
○흉노, 메신저로 이어진 거대한 제국
흉노에 적대적이었던 중국은 그들의 야만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들은 글자가 없고 나무에 새겨서 표시를 하거나 끈을 꼬아서 뜻을 전한다."
이 기록처럼 흉노는 민족 고유의 문자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간결한 방식의 메시지(쪽지) message로 제국을 통치했다.
즉, 국가 조직을 최대한 단순화해서 조직을 정비했다.
법률 역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화했다.
흉노의 정부 조직은 가운데에 왕을 두고 그 왼쪽과 오른쪽에 측근을 배치하는 식이었다.
마치 사람에게 두 팔이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또한, 하부 조직은 마치 십진법에 근거하여 5명 내지 10명 단위로 구성했다.
이런 조직 구조는 인간의 신체적인 특징(열 손가락)과도 잘 부합하여 특별한 교육 과정 없이 구성원들이 사회 체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만일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다시 그 밑에 하부 조직을 만드는 식으로 확장해나갔기 때문에 아무리 세력이 커진다고 해도 해당 조직의 리더(지도자) leader가 직접적으로 이끄는 사람들은 10명 내외였다.
이처럼 간결하고 엄정한 조직 구성의 원칙은 흉노가 순식간에 북방 초원 지역, 나아가서 세계를 정복하는 기반이 되었다.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동력에 간결한 정보력까지 갖춘 흉노는 이후 수립된 수많은 유목국가들의 롤모델(본보기상) roll model이 되었다.
흉노 이래로 북방 초원 지대에서는 늘 새로운 국가들이 발흥하며 끊임없이 역사를 바꾸는 주체로 활동했다.
중앙아시아를 평정하는 한편, 서양 정벌로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 칸(성길사한成吉思汗) Genghis Khan의 몽골제국도 본질적으로는 흉노와 비슷한 형태의 조직이었다.
이들은 빠르게 정보를 옮기고 전하는 역참驛站(과거 마구간과 여관을 제공하고 지방의 공적 업무를 대행하던 곳)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이는 제국의 성공 비결 중 하나였다.
그런데 훗날 고고학자들의 발굴 및 조사에 따르면 흉노가 글자를 몰랐다는 중국의 기록은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다.
실제로 흉노는 한자를 알고 있었고, 이를 제국의 통치에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2020년 몽골의 울란바토르대학교 University of Ulaanbaatar in Mongolia 발굴팀은 2,200여 년 전 흉노의 성터를 발굴했다.
여기에서 '하늘의 아들인 선우單于(흉노의 왕), 영원히 복을 받으라"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왓장(막새기와)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담벼락이나 처마 끝을 둥글게 장식하는 막새기와는 본래 중국인들의 전통이다.
흉노인들이 만든 막새기와에 새겨진 글자는 모두 11자이며, 중국의 막새기와에도 여러 글자를 넣은 풍습이 널리 유행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11자를 넣은 것은 없다.
막새기와에는 '선우單于'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을 통해 짐작할 때 이 막새기와는 흉노인들의 것임이 확실했다.
'하늘의 아들인 선우'라는 구절은 흉노인들이 자신들의 왕인 선우를 부를 때 외치는 '텡그리 후 샤뉘'를 한자로 번역한 표현이다.
흉노인들은 여기에 중국인들로부터 빌려온 길상어吉相語(축복의 말)를 적절히 조합해서 기개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사실 대개의 흉노인들은 한자를 널리 쓰지 않았다.
게다가 유목 생활을 하면서 사방을 떠돌아 다니던 흉노인들은 성을 축조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막새기와가 발견된 성터는 흉노인들이 중국을 비롯해 다른 외국에서 온 사신들을 맞이하는 용도로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외교사절단이 흉노의 영토에 들어올 때 보란듯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글자를 막새기와에 새겨 넣어 만든 것이다.
○흉노의 왕, 메신저를 통해 연애편지를 전하다
이처럼 흉노는 외교 전술에 문자를 적절히 사용했다.
흉노는 한나라와 외교를 할 때 죽간竹簡(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 글자를 기록하던 대나무 조각)에 글자를 적어 뜻을 주고받았다.
이와 관련해 다소 스캔들 scandal(추문, 뒷소문)처럼도 읽힐 수 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 풀어본다.
살아생전 흉노와 대적하고 대패했던 한고조 유방 劉邦(재위: 서기전 202~서기전 195)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부인이었던 여후呂后(재위: 서기전 195~서기전 188)가 정권을 잡는다.
수많은 부인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 끝에 얻은 자리였기에 그는 동양의 '블러디 메리(피로 물든 메리 여왕) Bloody Mary'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기세가 등등했다.
흉노가 제2대 선우였던 묵특冒頓('목돌' 또는 '모둔'이라고도 불린다)(재위: 서기전 209~서기전 174)은 한나라의 새로운 권력자 여후를 도발하기 위해 죽간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쪽지)를 적어 보낸다.
'듣자 하니 그대는 과부라고 하고 나도 홀몸이라 재미없고 우울하니 우리 만나서 외로움을 달랩시다.'
좋게 말하면 러브 레터(연애편지) love letter이지만, 부정적으로 본다면 매우 저열해 보이는 외교적 도발이었다.
여후 입장에서는 이 죽간을 들고 온 사신의 목을 치고 전쟁을 벌이고 싶었겠지만, 당시 한나라 군대는 흉노를 당해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여후는 분통을 억누르고 '내가 나이가 많아서 연애는 어렵고, 대신 마차와 말을 보내니 즐겁게 노십시오'라며 묵특을 달래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흉노의 계책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묵특 다음으로 흉노의 선우 자리에 오른 노상老上(재위: 서기전 174~서기전 161)은 한나라에 그 길이가 1척 2촌(약 27센티미터)에 달하는 죽간을 보낸다.
당시 중국에서 황제의 메시지를 담은 죽간의 길이는 1척 1촌(약 23.7센티미터)이었다.
흉노는 얄밉게도 중국 황제가 쓰는 것보다 약 3.3센티미터가 긴 1척 2촌의 죽간에 메시지를 써서 보낸 것이다.
이는 흉노가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의미를 우회적으로 전한 것이었다.
이처럼 흉노인들은 중국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글자를 몰라서 안 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효율적인 국가 통치를 위해서 쓰지 않았을 뿐, 필요한 때에는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다.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능력
종이 매체의 힘이 점차 사라지고 대부분의 소통이 온라인 메신저 on-line messenger로 이루어지는 요즘, 소통의 방식으로만 본다면 전령傳令을 통해 구두로 명령을 전했던 유목 민족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공유되는 정보의 양으로 본다면 그때와 지금은 천양지차다.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그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헤엄치는 중이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오늘날 일반인이 하루에 소비하는 정보는 자그마치 34기가바이트 Gigabyte(GB)에 달한다고 한다.
한 사람이 하루에 소비하는 콘텐츠(내용물) contents의 양이 신문 174부 분량에 해당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능력은 많은 양의 정보를 입수하는 능력보다 그 안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찾아낼 줄 아는 문해력文解力(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디지털(전자) digital 정보의 핵심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맥락과 상황을 이해해서 나에게 유효한 정보를 찾아 연결하는 읽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필자는 이러한 지혜를 북방 초원을 호령했던 흉노인에게서 발견한다.
단순히 글자를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적재적소에 메시지를 활용할 줄 알았던 이들의 지혜가 곧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정보 활용력이 아닐까?
※출처
1. 강인욱 지음, 세상 모든 것의 기원, 흐름출판, 2023.
2. 구글 관련 자료
2025. 5. 28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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