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아프리카, 중동 국경이 자로 잰 듯한 이유 본문

허준: 영국 UK의 제44·46·49대 총리인 솔즈베리 후작 Marquess of Salisbury 로버트 개스코인세실 Robert Arthur Talbot Gascoyne-Cecil(1830~1903)이 이런 말을 했다죠. "우리는 백인이 한 번도 발을 디뎌본 적 없는 지역의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산, 강, 호수들을 정확히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는 어려움 속에서도 가까스로 배분했다"라고 말입니다.
중동中東 Middle East 지역의 지도를 들여다보면 국경선들이 마치 자를 대고 그은 듯 직선인 곳이 꽤 많은데요. 어떠한 연유로 그처럼 인위적인 국경선이 형성된 걸까요?
박현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그처럼 자를 대고 그은 듯 직선인 국경선은 모두 서구 열강이 한 것입니다. 보통의 국경선은 직선이 아니고 이른바 삐뚤삐뚤하죠. 일반적으로 국경의 기준이 산, 강, 바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에요. 이를 두고 '자연환경적 국경 physiographic board demacation'이라고 합니다. 반면 중동 국가들의 경우 상당수가 직선으로 된 국경선이죠. 이를 두고 '기하학적 국경 geometric board demacation'이라고 합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구 열강은 값싼 원료 공급지와 판매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죠. 그들 시야에 중동 지역이 들어왔고요. 하여 중동 지역, 특히 아프리카 Africa를 두고 전투적으로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서구 열강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1884년 11월 15일, 당시 독일제국 German Empire의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 Otto von Bismarck의 주도 아래 베를린 Berlin에서 회담이 열려요. 이듬해 2월 26일까지 열린 '베를린 회담 Berlin Conference'을 통해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쟁탈전 이해 당사자들 열네 개국이 모여 아프리카 식민지를 분할하고자 하죠. 그 결과 상당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선이 일직선에 가까운 기괴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겁니다. 이를 두고 '아프리카 분할 Scramble for Africa'이라고 합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국경선은 다양한 분쟁을 유발했습니다. 중동 지역의 경우 다양한 부족들이 오랫동안 고유의 문화를 공유해 왔는데 서로 무차별적으로 섞여버리고 만 겁니다.
즉 서구 열강이 근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민족 nation'이라는 개념을 가져와 중동 지역에 국민국가國民國家 nation state들을 양산한 것이죠.
예를 들면 요르단 Jordan의 정식 국명은 '요르단 하심 왕국 Hashemite Kongdom of Jordan'인데요. 1921년 영국이 만든 '트란스요르단 아미르국 Emirate of Transjordan'이란 이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지지부진했던 오스만 제국 Ottoman Empire과의 싸움에 돌파구를 열고자 후세인 빈 알리 Hussein bin Ali에게 접근해 반란을 일으키게 하죠. 아랍 국가 Arab country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으로요. 하지만 후세인이 반란에 성공하고 전쟁도 끝났지만 영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후세인의 차남을 트란스요르단의 국왕 자리에 앉혀요.
이후 1946년 트란스요르단은 영국에서 독립해 현재의 요르단으로 거듭납니다. 문제는 요르단을 이루는 국민이 한 민족이었냐 하면, 70퍼센트에 이르는 사람이 팔레스타인인 Palestinians이었다는 거죠. 임의대로 부족을 뒤섞어버리고 나 몰라라 했던 겁니다.
중동에는 이런 문제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요. 그래서 민족은 있는데 국가가 없는 이들이 산재해 있죠. 대표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1천여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발로치족 Baloch, 전 세계적으로 4천여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족 Kurd이 있고요. 그런가 하면 같은 민족인데 다른 국가로 나뉜 경우로 아제르바이잔 Azerbaijan과 이란령 아제르바이잔 Iranian Azerbaijan을 들 수 있겠습니다.

강인욱: 제가 생각하기에 지구상 모든 국경선은 산, 강, 바다로 이뤄진 '자연환경적 국경'이 아닌 인위적으로 그린 '기하학적 국경', 즉 '정치의 선'이라고 봅니다. 박현도 교수님께서 '민족'이라는 개념과 함께 '국민국가'를 말씀하셨는데, 사실 그전까진 몇십 개의 부족으로 있다가 20세기에 들어 민족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미 정치가 개입된 거라고 봐요.
이를테면 1920년대 초 러시아 Russia 내전에서 승리하며 소련蘇聯(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USSR)의 정권을 잡았던 볼셰비키 Bolsheviks(레닌이 이끄는 급진적 좌익 계파로서 '다수파'를 뜻함)는 고도의 계산으로 구성국構性國 constituent state을 만들었습니다. 로마제국 Roman Empire 때부터 있었던 '분할통치 divide and rule' 개념을 철저하게 시행한 것이죠. 이른바 '소련의 국내 영토 분할' 정책이라고 해요.
그중 카자흐 Kazakh가 러시아 다음으로 넓었어요. 그런데 러시아 진출 이전에 중앙아시아 Central Asia에서 가장 영토가 넓고 강했던 사람들은 우즈베크 Uzbek였죠,
즉 러시아가 우즈베크를 견제하고자 전략적으로 카자흐의 영토를 늘렸고, 그 계획의 일부로 시베리아 Siberia 땅을 떼어주는 형식이었던 겁니다. 현재 지도를 보면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Uzbekistan 그리고 여러 나라 사이에 거대한 카자흐스탄 Kazakhstan이 완충 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 형국이죠.
그런가 하면 키르기스스탄 Kyrgyzstan처럼 새롭게 독립하는 경우도 있어요. 문제는 키르기스인 Kyrgyz이 쓰는 말이 카자흐인과 거의 똑같다는 겁니다. 사실 같은 사람들이 지역만 달리해 살았던 겁니다. 그런데 굳이 산속에 사는 카자흐인에 '시베리아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해 나라를 만들어버린 거죠.
그런 와중 키르기스스탄 안에 우즈베크인이 많은 도시를 포함시키고 우즈베키스탄에는 키르기스인이 많은 도시를 포함시키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안디잔 Andijon이라는 도시와 키르기스스탄의 오시 Osh라는 도시인데요, 그곳에서 폭동 사태가 자주 일어나요, 당연하게도. 그런가하면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 Buxoro는 타지크인 Tajiks의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문제는 타지크어 Tajik와 우즈베크어 Uzbek가 서로 완전히 다른 어족이라는 점이에요.
비슷한 점을 찾을려야 찾아볼 수 없죠.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Joseph Stalin(1878~1953)은 소련의 국내 영토 분할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다분히 전략적으로 '너희끼리 서로 싸워 망해라'라는 계산이 깔려 있던 겁니다.
'별생각 없이' '깊은 고민 없이' 국경선을 그어버렸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고도의 계산을 갖고 국경선을 그었던 거죠. 오히려 그래서 자를 대고 그린 듯 반듯한 모양새인 겁니다.
※출처
1. 박현도, 곽민수, 강인욱, 정요근, 허준 지음, 역사를 보다 2(믹스커피, 2025)
2. 구글 관련 자료
2026. 6. 3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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