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식물은 환경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 본문
'움직이지 못하는 생물체인 식물은 환경에 어떻게 반응할까?'
문득 이런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환경에 대한 반응'은 생명체를 정의하는 다섯 가지 기본 특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생물학 교과서를 펼쳐 보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공통적으로 다섯 가지 특성을 지닌다고 설명되어 있지요.
물질대사 metabolism, 자극에 대한 반응 response to stimuli, 환경 적응 environmental adaptation, 생식 reproduction, 진화 evolution, 이 다섯 가지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자극에 대한 반응'은 생명체의 가장 본질적인 반사 신호이죠.
동물은 환경의 변화를 감각기관으로 느끼고, 근육의 운동으로 즉각 반응합니다.
그렇다면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식물의 '동작'은 생장이다
식물은 동물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신 생장生長 growth을 통해 환경에 반응합니다.
즉, 식물의 생장은 동물의 운동에 해당하는 행위인 셈이지요.
요즘은 유튜브 You Tube에서 식물의 생장 과정을 저속촬영(타입랩스 timelapse)으로 촬영한 영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한 장면에서는 덩굴식물이 바위를 향해 자라다가, 그 위를 천천히 타고 넘습니다.
그 느린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깨닫게 됩니다.
"아, 식물도 움직이는구나!"
다만, 그 움직임이 우리의 시간 감각보다 훨씬 느릴 뿐입니다.
동물의 시점에서 보면 식물은 가만히 서 있는 존재처럼 보이겠지만, 식물의 시점에서 보면 동물은 오히려 부산하게 이러저리 뛰어다니는 존재일지도 모르죠.
결국 식물은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생명체인 것입니다.
○느린 시간 속의 반응
천천히 흐르는 시간대를 살아가는 식물이 주변 환경에 적절히 반응하기 위해서는 생장해야 합니다.
식물은 생장을 통해 주변 환경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창가에 나팔꽃 한 송이를 갖다 놓으면 나팔꽃 줄기는 창 쪽으로 자람으로써 빛굽힘성(굴광성屈光性 phototropism: 빛의 방향으로 식물이 자라는 생리 반응)을 나타냅니다.
덩굴식물이 바위를 타고 넘는 것도, 생장을 통해 장애물이라는 환경 자극에 반응한 결과입니다.
말하자면 동물은 동작을 통해 즉각적으로 환경 반응을 하지만 식물은 생장을 통해 주변 환경에 천천히 반응하는 것입니다.
동물의 행동에 해당하는 것이 식물의 생장인 셈입니다.
따라서 식물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곧 끊임없는 생장을 뜻하는 생명체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5백 년 넘게 살아온 고목이 자라고, 그 고목들이 해마다 봄이면 어김없이 새순을 틔우고 무성한 꽃을 피웁니다.
○생장을 가능하게 하는 '정단분열조직'

그렇다면 식물은 어떻게 평생 자랄 수 있을까요?
비밀은 식물의 끝부분 정단분열조직頂端分裂組織 apical meristem에 있습니다.
이 조직은 줄기의 가장 윗 부분과 뿌리의 맨 아래에 자리합니다
반구형半球形(돔 dome) 모양의 이 작은 조직에서는 세포분열이 쉼 없이 일어나며, 새로운 줄기, 잎, 꽃 같은 기관을 만들어냅니다.
이 정단조직은 동물의 배아줄기세포 embryonic stem cell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거의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의 보고'이지요.
집에서 콩나물을 길러 본 적이 있다면 한 번 떠올려 보세요.
그 안에서 잎이나 꽃을 본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건 콩나물이 아직 '배 발생'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식물은 동물처럼 태어날 때 모든 기관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한 평생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 가는 존재, 즉 '영원히 배아胚芽 embryo 상태로 살아가는 생명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원히 살아가는 생명체

이 영속적 '배 발생' 덕분에 식물은 이론상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체입니다.
물론 외부의 병, 건조, 인간의 개입 따위로 죽을 수는 있지만, 자연 상태라면 정단분열조직의 활동이 멈추지 않는 한 생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뉴턴의 사과나무 Newton's Apple Tree입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리게 한 사과나무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 과학 일화逸話(에피소드 episode)입니다.
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뚝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뉴턴은 '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지구가 사과를 당기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다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치게 된 유레카 Eureka(나는 찾았다)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사과나무는 1846년 강력한 폭풍으로 뿌리째 뽑혀 쓰러졌지요.
죽은 줄 알았던 사과나무 그루터기에서 4년 뒤 새싹이 돋았습니다.
그 새싹이 자라 지금도 영국 울스소프 Woolsthorpe, Uk의 뉴턴 생가 마당에 서 있습니다.
얼마나 대견하고 대단한 일이에요!
영국 과일·채소 연구소 Fruit and Vegetable Preservation Research Station(FVPRS), UK는 뉴턴을 기리기 위해 그 사과나무의 가지를 잘라 건강한 대목에 접목한 모나무(묘목)를 길렀습니다.
그 모나무들이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지요.
영국 과일·채소 연구소에서 미국 펜실베이나아대학교 수목원 및 정원 the Morris Arboretum & Gardens of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USA으로, 펜실베이니아 수목원 및 정원에서 한국의 표준과학연구소로, 이어 표준과학연구소에서 서울대학교 수목원으로 분양을 해줘 현재 뉴턴의 사과나무가 세계 곳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 사과나무들은 사실상 뉴턴의 머리에 떨어뜨려 영감을 갖게 했던 바로 그 사과나무입니다.
이를 현대적 용어로 '클론(한무리) clone'이라고 하지요.
신체 일부를 잘라서 완전한 개체를 만들어 낸 유전학적으로 동일한 한무리입니다.
아마 이 사과나무는 그 과학적 중요성 때문에 우리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우리 곁에서 자라고 있을 겁니다.
세계 곳곳의 과학박물관 또는 과학연구소의 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말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나무

비슷한 얘기가 불교에도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약 2천5백 년 전, 인도 비하르주 부다가야 Boda Gaya, Bihar, India의 보리수 Ficus religiosa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뒤 서기전 3세기, 아소카왕 King Ashoka의 딸이자 비구니였던 상가밋따 Saṅghamittā가 이 보리수의 남쪽 가지를 잘라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의 자야 스리 마하 보디 Jayasri Mahabodhi of Anuradhapura, Sri Lanka에 심었지요.
한편 부다가야의 원 보리수는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훼손과 고사를 겪었고, 특히 1876년 폭풍으로 크게 손상된 뒤 영국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햄 Alexander Cunningham이 새로운 묘목을 그 자리에 심었습니다(바로 위 그림).
이렇게 계승된 보리수는 스리랑카와 인도를 거쳐 전 세계로 분식分植(나눠심기)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2015년 스리랑카 대통령이 방한하여 조계사에 자국 국보로 관리되던 '자야 스리 마하 보디'의 모나무를 공식 기증하였습니다.
이후 국내 여러 사찰과 기관에 이 보리수가 분식 또는 이식移植(옮겨심기)되어, 오늘날 우리나라 곳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내에 자라고 있는 보리수들은 모두 조계사 앞에서 자라고 있는 보리수나무의 한무리(클론)들이며,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바로 그 보리수의 한무리들입니다.
이 역시 불교라는 종교가 우리 인류사에서 소멸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살게 되는 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식물이 지닌 '영속성永續性 permanence'(영원히 계속되는 성질이나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식물의 정단부에 존재하는 정단분열조직과 그 안의 줄기세포 덕분에 영생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정리하면,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 대신 생장을 통해 세상에 반응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새로 빚어내며, 그 생명력으로 시간을 건너 존재를 이어가는 생명체입니다.
동물은 죽음의 종착점을 향해 살아가지만, 식물은 '죽음을 넘어 생명을 이어가는 방법을 스스로 발명한 생명체'인지도 모릅니다.
※출처
1. 이일하 저, 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초봄책방, 2026).
2. 구글 관련 자료
2026. 8. 5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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