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07. 4/7 430차 경주 남산 산행기 본문

산행트레킹기

2007. 4/7 430차 경주 남산 산행기

새샘 2007. 4. 10. 19:49

(산행로) 불상답사: 삼릉→금오산(경주남산 금오봉)(471)→삼화령→용장골 (불상답사: 6km, 5시간)

                                                                                                           ↑

              등산: 용장골→애기공룡→고위산(금오산)(494)→칠불암→                   (등산: 8km, 5시간)

 

(산케들) 모두 42명

-등산 및 불상답사 27명

서울: 慧雲김일상과 청보화김정순 부부, 현동우와 주선영 부부, 道然배기호와 물푸레강민숙 부부,  

        長山손욱호와 이영애 부부, 최영수와 현경복 부부, 이유상과 양춘자 부부, 조해금과 김경영 부부,

        야자박사구영호와 윤미경 부부, 새샘박성주와 이귀분 부부, 포드장만옥, 智山방효근,

        鏡巖이병호, 元亨김우성, 포회장이주형, 정재영(24명)

대구: 양준영과 권미경 부부(2명)

부산: 박권병(1명)

-저녁합류 15명

서울 박봉희(1명)

부산 김정곤 부산동기회장, 이정일 부산동기회총무, 이규생과 김정희 부부, 박권병부인, 하원규 부부,

       신현성 부부, 이종배 부부(11명)

대전 장원표 부부(2명)

대구 김흥식(1명)

 

(7:20)맑고 화창한 토요일 아침 21명의 산케와 부인들이 1박2일의 경주 남산과 토함산 산행을 위하여 압구정동을 출발하였다.

하루먼저 출발한 최영수, 이유상, 조해금을 합하면 24명에 달하는 대규모 산행이다.

 

(10:40)팔공산IC에서 대구의 양준영과 부인이 합류하여 버스탑승인원이 23명이 되었다.

 

(11:40)드디어 목적지인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다.

 

(12:00)불상답사를 위한 산케들의 출발지인 삼릉 도착.

10분의 모든 여학생과 답사길의 안내와 안전보호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3명의 산케들이-야자박사, 포회장, 현전임회장- 하차하여 답사준비를 서두른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영애(장산) 김경영(조총장) 윤미경(야자박사) 현경복(최전임) 청보화(혜운) 이귀분(새샘) 물푸레(도연) 권미경(양사장) 양총무(이상) 야자박사 현전임 주선영(현전임) 포회장]

 

(12:10)등산 출발지인 용장골에 10분만에 도착.

용장계곡 입구에서 오늘 10명의 산케가 정복할 봉우리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용장계곡을 따라 길가는 하얀 벚꽃과 백매 그리고 조팝나무, 분홍매, 붉은 홍매화, 보라색 자목련, 노란 개나리꽃이 줄줄이 피어 오색의 꽃향기를 내뿜어 우리 일행의 맘을 흥겹게 해 주었다.

 

산길로 접어드니 똑 같이 샛노란 키작은 양지꽃과 키큰 솜방망이가 근처에 같이 피어 있으니 눈에 확 들어 온다.

(양지꽃)

 

(솜방망이)

 

(12:20)우리가 접어드는 고위산 등산길과 불상답사조가 거 쳐올 금오산 등산길의 갈림길에는 경주 남산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여기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을 잠깐 인용해 본다.

南山은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 남쪽에 솟아 있는 金鰲山(471)과 高位山(494)의 두 봉우리를 비롯하여 도당산, 양산 등의 봉우리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동서길이는 약 4km, 남북거리는 약 8km로 40여 계곡과 전설과 설화와 깃들언 수많은 불교유적(절터, 불상 등)이 산재되어 있다.

신라건국 전설의 나정, 신라왕실 애환이 서린 포석정터, 김시습이 거처하면서 금오신화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용장사터가 그것이다.

특히 불교가 국교인 신라는 이 남산을 부처가 머무르는 영산으로 신성시하여 특히 많은 사찰과 탑이 건립되고 불상이 조성되었다.

현재 조사된 바로는 122개소의 절터, 58개소의 석불, 64기의 석탑이 산재하는 야외박물관이며,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2:50)고위산 등산길은 다른 어떤 산보다도 소나무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것도 변형종이 아닌 정품 소나무로 말이다.

그리고 조릿대가 아닌 대나무가 많은 것도 특기할만하다.

대나무 밑에는 분홍의 진달래가 피어 있고.

 

제법 그럴듯하게 보이는 바위 위에서 찰칵.

 

(1:5)제법 가파른 이무기능선의 암벽을 타고서 고위산이 바라다보이는 봉우리인 이무기바위(?)에 올랐다.

도연은 이 능선을 애기공룡이라 불렀다.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고위산.

 

(1:35)이무기바위에서 30분만에 남산의 최고봉인 고위산(일명 수리산) 정상(494m)에 오르니 ‘국립공원 경주남산 고위산’을 알려주는 비석만 서 있다.

정상은 평탄하였고 사방의 경관은 보이지 않아 정상에 올랐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26산케의 경주남산 정복을 알리는 현수막과 더불어 10명 모두 기념촬영.

 

(2:00)고위봉능선길은 비교적 평탄하였다.

칠불암으로 가는 길은 붉은 빛 수피를 빛내고 있는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소나무 밑에는 아담한 진달래꽃이 피어 있었다.

 

(2:30)고위봉능선길을 벗어나 동쪽으로 약 400지점에 불상군이 있는 칠불암이다.

다소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니 대나무숲으로 이어지는 길에 아담한 칠불암불상군이 나타났다.

정식 명칭은 ‘경주남산 칠불암 마애석불’이다.

뒤의 큰 돌에는 마애삼존불, 앞의 작은 돌에는 사방불이 각각 새겨져 있다.

 

마애석불 곁에는 보기가 쉽지 않은 수려한 흰꽃이 피는 애기동백이다(조금 시들긴 했지만...).

고위산 정상에서도 작은 동백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그것도 역시 애기동백!

 

(3:30)삼화령까지의 능선길은 너무나 평탄하다.

길가의 노란제비꽃만이 눈길을 끌 뿐이었다.

 

三花嶺은 ‘삼화수리’라고도 부르며 남산의 높은 봉우리 세 곳 가운데 하나다(두 곳은 금오산과 고위산).

삼화령에는 불상답사조가 먼저 도착하여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내려왔던 최전임, 이부회장, 조총장과 부산의 박권병 변호사도 불상답사조와 함께 구경을 마치고 그곳에 있었다.

우리 산행조는 미리 펼쳐놓은 막걸리 한잔과 수육 몇점으로 간단히 요기한 후 자리를 일어섰다.

불상답사조와 산행조가 전부 모이니 27명의 대부대다.

모든 산케들이 26산케 현수막과 함께 경주 남산 산행의 흔적을 남겼다.

사진은 박권병 변호사가 찍었는데 박변이 찍을 때 자기가 ‘며르치’ 하면 ‘대가리’라고 말하라고 해서 모두들 ‘대가리’하면서 파안대소하는 모습이 보기좋다(박변 고맙소 잘 찍어줘서).

 

(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 양사장 혜운 지산 정법무 이영애 윤미경 물푸레 양총무 현경복 원형 청보화 이귀분 김경영 주선영 도연 장산 최전임 포회장 조총장 구박사 현전임 이부회장 권미경 새샘 장포드 경암)

 

(4:00)용장사지 조금 못미쳐 사진찍기 좋은 넓직한 돌판이 있어 우락부락한 산케들만의 사진을 예쁜 여학생이 찍어준다고 해서 다들 모였다.

 

용장사터에는 암벽에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고 그 앞에는 석불좌상이 놓여 있었는데 석불은 목이 달아나 버리고 몸체만 휑하니 연화대 위에 앉아 있었다.

용장사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金時習이 은거하며 금오신화를 집필했다는 절.

 

(4:30)용장계곡을 따라 김시습의 법호인 雪岑을 딴 설잠교를 건너니 계곡에는 조그만 돌탑들이 무수히 쌓여 있고 계곡에는 분꽃나무가 하얗게, 씀바귀는 노랗게 꽃을 제각기 멋을 피우고 있었다.

 

(5:00)정확히 예정시간에 모두들 무사히 용장골에 도착.

버스로 숙소인 불국사 앞 토비스콘도로 향했다.

 

(7:30)샤워와 간단한 휴식을 마치고 주린 배를 채우려고 대나무판에 구워먹는 삼겹살 집에 도착.

처음 먹어 본 대나무판 삼겹살이 모두들 맛있었다고 열심히들 먹는다.

고깃집이 꽉 찬걸 보니 유명한 집인 모양이다.

조금 있으니 도연이 한 친구를 소개하겠단다.

대구에서 클리닉을 하고 있는 김흥식 신경과원장. 고등학교때 응원단장을 한 전력때문인지 모두들 알아보고 반갑게들 인사한다.

그때보다 볼에 살은 많이 붙었지만 말과 행동은 고등학교때와 다름없는 것 같다.

(혜운과 김원장)

 

그리고 얼마후 부산동기회에서 김정곤 회장과 이정일 총무, 이규생과 부인 모두 4명의 친구들이 부산에서 여기까지 와서 우리 산케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금일봉까지 주면서 말이다. 칭구들아 정말 고맙데이.

(이규생과 부인)

 

(이정일 경암 도연)

 

(10:00)9시에 저녁을 마친 우리 일행은 다시 콘도로 돌아와 노래방에 모였다.

여기서 서울서 혼자서 버스타고 온 박봉희, 부산에서 온 박권병 부부, 하원규 부부, 신현성 부부, 이종배 부부와 대전에서 온 장원표 부부가 합류하여 제각각 비장의 무기를 뽐내면서 만남을 즐거워하고 지나는 하루를 아쉬워했다.

특히 한분도 빠짐없이 장기자랑을 열심히 해준 부산과 대구의 여학생들 덕분에 분위기는 최고조에 도달하면서 오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갔다.

 

2007년 4월10일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