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단원 김홍도 "해탐노화도" 본문

글과 그림

단원 김홍도 "해탐노화도"

새샘 2009. 1. 21. 19:18

"권력 앞에서도 제 모습 생긴 대로, 나는야 옆으로 걷는다"

 

우리 옛그림 가운데는 해학성諧謔性이 뛰어난 그림이 많다. 여기 소개하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10?)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는 그 해학성에 있어 타의 주종을 불허한다.

 

게 두 마리가 갈대 꽃송이를 꼭 끌어 안고 있다. 그것도 윗 놈은 흰 배를 훌쩍 드러낸 채 뒤로 자빠졌다. 이 그림에 숨어 있는 우의寓意를 한번 살펴보자.

 

갈대 로蘆의 옛 중국 발음은 나귀 려驢와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나귀 려는 원래 임금이 과거급제자에게 나누어주는 고기 음식을 뜻하는 것이란다. 그 뜻이 발전되어 전려傳驢 또는 여전驢傳이라고 하면 궁중에서 과거급제자를 호명해서 들어오게 하는 일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물은 것은 소과小科와 대과大科에 모두 합격하라는 뜻이요 꼭 붙들고 있는 것은 붙어도 확실하게 붙으라는 의미다.

그뿐이랴? 게는 등에 딱딱한 껍질을 이고 사는 갑각류이니 그 딱지는 한자로 갑甲이 된다. 즉 게의 껍질인 갑은 천간千干인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의 첫 번째이니 바로 장원급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듣기만해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상서로운 상징의 '게가 갈대꽃을 탐하는 그림 즉 해탐노화도'는 과거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그려주는 그림이다.

 

그림에 담긴 뜻이 이러하니 그림솜씨畵法 또한 시원할 수 밖에 없다. 단원은 모든 필획을 단 한번에 죽 그어댔다. 게나 갈대 그림에는 윤곽선이 전혀 없다. 윤곽선이 없는 이런 화법을 몰골법沒骨法이라 부른다. 게란 동물에도 갈대란 식물에도 뼈가 없으므로 몰골법에 어울리는 소재가 된다.

 

이번에는 그림에 있는 화제畵題를 한번 살펴보자. 정말 후련하게 느껴지는 행서 필체다.

"해룡왕처야횡행海龍王處也橫行"이라고 썼다. 이 뜻을 풀이해보면 "바다 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나는야 옆으로 걷는다!" 과거에 붙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오히려 붙은 다음부터 시작인 것이다. "왕 앞에서 쭈뼛거리지 말고, 천성을 어그러뜨리지 말고, 되지 않게 앞뒤로 버정거리며 이상하게 걸을 것이 아니라, 제 모습 생긴 대로 옆으로 모름지기 옆으로 삐딱하게 걸을 것이다"라는 의미다.

이것이야 말로 정문일침頂門一針 즉 참으로 뼈가 선 한마디! 기겁을 할 해학성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정부관료들에게도 이 말을 꼭 새겨두라고 말하고 싶다. "해룡왕처야횡행海龍王處也橫行"

 

이 글은 고 오주석 선생의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솔, 2003)에 수록된 글을 나름대로 발췌한 것이다.

 

2009. 1. 2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