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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에 담긴 음양오행

새샘 2009. 2. 11. 17:30

조선 후기 진경眞景산수화를 확립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걸작인 국보 217호 <금강전도金剛全圖>(1734, 종이에 수묵담채, 130.7×94.1㎝, 호암미술관 소장)에 담긴 역학易學 즉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의미를 한번 살펴보자.

 

진경眞景이란 마음에서 느낀 그대로를 그린 진짜 경치란 의미다.

장엄한 금강산의 전경을 그린 이 작품은 그 자체로서 우리 국토를 상징한다.

그것은 우리 겨레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금강산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우리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로서 <그리운 금강산>을 자주 부르곤 한다.

 

 

 

겸재 정선은  보기 드물게 사대부출신 도화서 화원이다.

현동자 안견,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 등의 걸출한 조선 화가들이 중인 아니면 평민 출신이었던 반면 겸재는 선비출신 화원이다.

그래서인지 겸재는 당시 사대부 가운데서도 뛰어난 주역의 대가였다고 하며, 실제 그의 그림 속에 음양오행을 비롯한 역학사상이 곳곳에 스며 있다.

 

금강전도에 숨어 있는 음양오을 한번 찾아 보자.

 

 

 

그림에서 보듯이 겸재는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를 하나로 뭉뚱거려서 하나의 둥근 원으로 단순화시켜 버렸다.

이걸 보고 오주석선생은 <위대한 단순함>이라고 일갈하였다.

한가운데 있는 것이 만폭동 너럭바위①이다.

그 중심에서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봉우리를 연결하면 S자로 휘어진 선 바로 태극太極이 그려진다.

맨 아래에 있는 다리는 장안사 장안교③다.

태극은 장안교 오른쪽에 짙은 선으로 그려진 봉우리인 장경봉에서 처음 크게 휘어져서 한가운데 만폭동을 거치면서 다시 반대로 휘었다가 정상인 비로봉②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로 우리 겨레의 상징인 태극기 그것도 좌우 즉 음양陰陽으로 나뉜 태극의 형상(좌左는 낮은 흙산으로 음陰이고, 우右는 뾰족하게 솟은 돌산으로 양陽이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태극기는 상하로 나뉜 태극을 그리고 있지만 우리의 옛 태극기는 좌우로 나뉜 태극의 형상이었다.

이는 구한말 초대 미국전권공사였던 박정양이 휴대했던 태극기(1884, 아래사진)를 보면 알 수 있다.

 

 

 

태극이란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뜻하며, 동시에 혼돈에서 질서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한다.

음양 자체는 원래 상반된 것이지만 태극으로 맞물리면 서로가 서로를 낳고 의지하며 조화를 이루게 된다.

겸재는 여기에 더하여 맨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비로봉②과 맨 아래 구멍이 뻥 뚫린 무지개 다리 장안교③로 음양을 거듭 강조하였다.

 

그럼 오행五行을 상징하는 것이 어디에 있을까?

오행 즉 수화목금토는 시공의 개념으로 나타낼 수 있다(이 블로그 글과 그림의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스며 있는 음양오행" 참조).

<금강전도>의 한가운데 만폭동에선 든든한 너럭바위①[土]를 강조하고, 아래 계곡③에는 넘쳐나는 물[水]을 그렸다.

오른편 한가운데 있는 봉우리④는 촛불[火]인양 휘어졌고, 위쪽 비로봉 아래 가로로 늘어서 있는 꼭대기들은 창검[金]을 꽂은 듯 삼하다.

그리고 쪽 흙산⑥들은 검푸른 숲[木]으로 덮여 있다.

이런 오행의 배열은 역학에서 말하는 선천先天이 아닌 후천後天의 형상이라고 한다.

즉 정선은 민족의 영산 금강산을 소재로 해서 온 겨레의 행복한 미래, 평화로운 이상향의 꿈을 기린 것이다.

 

정선은 새해를 앞두고 이 <금강전도>를 완성했다.

이것은 오른쪽 위에 적힌 제시題詩에 그렇게 써 놓았다.

 

제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만 이천 봉 개골산(겨울 금강산)의 드러난 뼈를

 뉘라서 뜻을 써서 그 참 모습 그려내리

 뭇 향기는 동해 끝의 해 솟는 나무까지 떠 날리고

 쌓인 기운 웅혼하게 온 누리에 서렸구나

 암봉은 몇 송이 연꽃인 양 흰빛을 드날리고

 반쪽 숲엔 소나무 잣나무가 현묘한 도道의문門을 가렸어라

 설령 내 발로 직접 밟아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그 어찌 베갯맡에 기대어 (내 그림을) 실컷 봄만 같으리요!"

 

제시를 쓴 방식이 절묘하다.

제시를 모두 11행으로 나누어 썼는데, 한가운데 행이 '사이 간間' 한 글다.

이것은 두 문짝 틈새로 비치는 햇빛이니까 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온다는 뜻이 된다.

좌우 2행운 두 글자씩이요 다시 바깥쪽 4행은 네 글자씩으로 점점 글자수가 늘어나고 있다.

태극의 첫걸음이 1에서 2로, 다시 4로 끝없이 펼쳐져 미래로 뻗어 나간다는 원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이다.

 

※이 글은 고 오주석 선생(1956~2005)의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03, 솔출판사)에 실려 있는 글을 발췌한 것이다.

 

2009. 2. 1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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