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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단원풍속도첩"에서 틀리게 그린 그림들

새샘 2009. 2. 3. 21:5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527호인 <단원풍속도첩>에는 단원 김홍도가 그린 25점의 풍속화가 들어 있다.

이 그림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상 외로 틀리게 그린 세부그림들이 제법 눈에 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풍속화 자체가 단원 김홍도 자신의 최고 걸작품이 아니라 당시 일반 서민들이 사서 보라고 손쉽게 아주 빨리 그려낸 값싼 그림이기 때문에 일부러 틀리게 그렸다고 평가한다.

값싼 그림이라는 근거로서 우선 바탕 종이가 고급 화선지가 아닌 일반 장지이고, 화면에 어려운 글씨 즉 한문이 한 자도 없으며, 그림 소재가 모두 일반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찾고 있다는 것 등을 들고 있다.

즉 모든 그림들이 서민들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씨름>에서 옷차림이 허술한 사람이 이기거나 <타작>에서 지주 대신 소작지를 위임받아 관리하는 마름의 모습은 망가뜨린 반면 열심히 일하는 농부는 즐겁고 신나고 건강한 선남선녀로 그렸다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단원은 언뜻 봐서는 알아차리기 어렵게끔 화폭 한가운데 슬그머니 그림을 틀리게 그려 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 단원그림책에서 틀리게 그린 부분들을 찾아보자.

위 그림 단원의 대표적인 <씨름>을 보면 오른쪽 맨 아래 앞을 보고 앉아 옆모습만 보이는 상투 튼 젊은이를 자세히 보자.

그는 뭔가에 놀라 벌리면서 몸을 뒤로 누이면서 오른손은 몸 뒤로 빼어 땅을 짚었고 왼손은 왼무릎 위에 올려져있다.

이 사람의 왼손과 오른손이 과연 제대로 그려졌는가?

모두들 이 젊은이와 같은 포즈를 취하고서 자신의 왼손과 오른손을 그림과 한번 비교해 보라.

그러면 여러분은 그림에서 왼손의 모습과 오른손이 서로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위 그림 <무동>에서 삼현육각 가운데 오른쪽 아래 뒤돌아 앉아 있는 깽깽이 즉 해금 주자의 왼손을 보면 손바닥이 아닌 손등이 보인다.

손등이 보인다면 이건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이다.

 

 

 <타작> 또는 <벼타작>이라 불리는 위 그림 가운데에는 머리 위로 볏단을 쳐들어 올린 사람을 앞모습 뒷모습으로 각각 한 명씩 그려져 있다.

그런데 뒷모습 사람의 오른손과 앞모습 사람의 왼손 모양이 똑 같다.

즉 뒷모습 사람의 오른손이 잘못 그려져 있는 것이다.

 

 

<점심> 또는 <새참>이란 제목의 아래 그림에서 왼쪽 가운데에 윗옷을 입고 밥사발을 땅에 대고 반쯤 기울여 숟가락을 입에 대고 있는 사람의 오른발을 자세히 보라.

복숭아뼈가 안쪽에 있고 발가락도 안쪽이 짧고 바깥쪽이 길게 묘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오른쪽 정강이 아래 왼발이 붙어 있는 것이다.

 

 

<잎담배썰기> 또는 <담배썰기>라는 위 그림에 오른쪽 위에 있는 사람의 발을 보자.

이 발은 분명 왼발인데 그 발가락 모습은 오른발이다.

앞 그림에서와 같이 발가락 묘사가 틀렸다.

 

 

만약 이런 세부묘사들이 일부러 틀리게 그린 것이 아니라 진짜 실수였다면!!

이런 경우 전문가들은 <단원풍속도첩>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한다.

 

첫째, 이 그림은 절대 누군가가 복사한 그림이 아니라 원본이 된다는 것이다.

남의 그림을 옮겨 그린 경우는 잘못된 것을 알면 반드시 고쳐서 그리게 되기 때문.

 

둘째, 사물의 왼쪽과 오른쪽을 바꾸는 실수를 자주 하는 화가는 좌뇌보다 우뇌가 상대적으로 더 발달된 사람이다.

좌뇌는 수학적, 논리적, 이성적 뇌고, 우뇌는 언어나 예술 등을 다루는 감성적 뇌라고 한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뇌가 특히 발달해서 저만의 특색을 드러내기 좋아하고, 정해진 틀을 잘 벗어나며, 개개인의 자부심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전통예술에 뭔가 뿔뚝거리는 듯한 힘찬 기운이 넘쳐나는 신바람을 느낄 수 있는 건 한국인의 우뇌 우세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우뇌가 우세한 사람 즉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사람들은 쉽게 흥분하며 조형적으로 전후좌우를 뒤바꾸는 실수를 많이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단원과 같이 대화가가 이런 실수를 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대개 별로 눈여겨보지 않는 뒷모습 사람의 손발 그것도 전부가 아닌 한사람에게만 이렇게 틀린 묘사가 나타나고, 모든 풍속화에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간혹 나타나며, 풍속화가 아닌 다른 그림에서는 이런 실수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여태까지 한 번도 알아채지 못한 분들!

‘메롱’하고 즐거워하는 단원의 얼굴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글은 고 오주석 선생의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솔, 2003)>과 최석조 선생의 <단원의 그림책(아트북스, 2008)>에서 발췌한 것이다.

 

2009. 2. 3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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