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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단원 김홍도 "씨름"

새샘 2010. 9. 28. 15:54

김홍도, 씨름, 보물 527호 단원풍속도첩 중에서,  종이에 수묵담채, 27.0×22.7㎝, 국립중앙박물관(출처-출처자료)

 

 

이백년 전 어느 시골장터에서 씨름판이 벌어졌다.

아마도 음력 5월5일 단오날 풍경일 것이다.

그림을 보면 구경꾼은 모두 열아홉 명이나 되는데 한복판의 두 씨름꾼에게서 적당한 간격을 두고 둥글게 빙 둘러앉았다.

오른편 위로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살펴보면 사람따라 보는 태도 또한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우선 땅에 놓인 위가 뾰족한 말뚝벙거지는 마부나 구종이 쓰는 모자다.

상투잡이 둘 가운데 한 사람이 마부였던 모양이다.

수염 난 중년사내는 좋아라 입을 헤 벌리고 앞으로 윗몸을 기울이느라 두 손을 땅에 짚었다. 막 끝나려는 씨름 판세가 반대편으로 넘어갈 듯해서다.

인물이 준순한 젊은이는 팔을 베고 아예 비스듬히 누워 부채를 무릎에 얹었다. 씨름판이 꽤 됐는지 앉아 있기에도 진력이 난 것이다.

총각머리 세 아이는 눈망울도 초롱초롱한데 큰 녀석은 제법 뽄새가 의젓하고 작은 아이는 겁이 나는 듯 어깨를 오그렸다.

 

왼편 위엔 모두 여덟 사람인데 맨 구석의 점잖은 노인은 의관을 흩뜨리지 않고 단정히 앉았으며, 그 앞의 갓쓴 젊은이는 다리가 저리는지 왼편 다리만 슬그머니 뻗었는데, 부채로 얼굴가린 양을 보면 소심한 성격인 듯하다.

그 뒤쪽 사람은 "야, 이것 봐라!" 하는 표정이 남다르며, 작은 아이는 두 다리를 털퍼덕 내별려 양손으로 제 발을 쥔 재미난 모양을 하고 있다.

아래쪽 세 사내는 모두 갓을 벗은 모습으로 장년의 두 인물은 갓을 서로 포개놓았고 새신랑 같은 젊은 쪽은 따로 두었다.

젊은이는 "어어"하고 오른손으로 허공을 젓고 있다.

그런데 수염난 두 사람은 자세도 다부지고 눈매 역시 만만치 않다.

특히 앞사람은 무릎을 당겨 깍지를 꼈는데 등줄기가 곧고 눈빛이 침착하며 발막신까지 벗어놓은 걸 보면 아마도 다음 판에 나설 씨름꾼인 성싶다.

 

왼편 아래는 네 사람을 체수가 큰 이와 퉁퉁한 이, 그리고 자그마한 사람까지 어른이 셋에 떠꺼머리총각 하나다.

그 중에 두사람은 합죽선을 부치고 있다.

원래 단오는 양력으로 유월 초여름께라, 이때는 세시풍속으로 부채를 만들어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멋삼아, 자랑삼아 너도 나도 철 이른 부채를 든 것이다. 오른쪽 아래 두 사람을 보자.

구경꾼 가운데서 가장 크고 짙게 그려진 이들은 깜짝 놀란 듯 입을 벌린 채 다시 다물지를 못한다.

머리를 뒤로 젖혔는데 상반신까지 뒤로 밀리며 한팔로 뒤땅을 짚었다.

그러니 열세인 씨름꾼이 이 사람들쪽으로 내동댕이쳐질 것이 분명하다.

이 두 사람 위에는 구경꾼이 없는 대신에 씨름꾼의 발막신과 짚신을 나란히 놓아서 다른 쪽과 절묘한 균형을 잡고 있다.

 

이제 누가 이기는지 선수들을 살펴보자.

아무래도 한눈에 뒷사람이 곧 질 듯하다.

등을 보인 사나이는 우선 두 발이 땅에 굳건한데, 저편은 한 발이 완전히 허공 중에 들리고 다른쪽 발도 벌써 반쯤은 땅에서 떨어졌다.

들배지기에 걸려 체중이 떠오르니 안 넘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눈빛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고 양미간에는 애처롭게도 깊은 주름까지 패였다.

또 마지막 희망인 오른팔조차 손을 놓쳐가니 그 손가락이 바나나처럼 쭉 늘어난 모습으로 과장되게 그려져 있다.

한편 다른편 장사는 이번엔 아주 끝을 낼 요량으로 젖먹던 힘까지 내어 마지막 용을 쓰는데 그렇지 않아도 다부지고 억센 몸에 온 가득히 힘이 들었고 아래턱까지 앙그러지게 악물었다.

시계반대방향으로 잡아채었는데 거의 다 걸린 기술이 끝에 가서 정말 애를 먹이는구나.

그러나 판은 틀림없이 났다.

다음 순간 거꾸로 홱 잡아 챌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른편 아래쪽으로 넘어갈 것을 구경꾼이 먼저 알았다.

 

그런데 씨름판을 잘 보자면 요즘 흔히들 하는 왼씨름이 아니다.

오른편 팔뚝에 삼베 샅바를 몇 번 감아 상대의 왼쪽 허벅지를 휘감아서 오른손으로 쥔 것 하며, 허리에 따로 띠를 매지 않고 상대 허리 위에 그냥 왼손을 얹은 양이 지금은 보기 힘든 소위 바씨름인 것이다.

예전에는 지방마다 씨름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서 서울 경기 일원에서만 바씨름을 했다고 하니 이곳이 어디였는지 절로 짐작이 간다.

아무튼 판이 끝난 듯해도 아직은 판막음이 난 것도 아니므로 씨름판은 흥분과 초조로 서로 뒤엇갈리며 점차 최고조를 향해 간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단 한 사람 여유만만한 이가 있다.

씨름꾼과 등을 진 채 목판을 둘러멘 떠꺼머리 엿장수가 그사람이다.

뭉툭코에 사람좋은 웃음ㅇ르 띠고 총각은 혼자 딴청을 피우고 있다.

엿판에 놓인 엽전 세 닢에 마음이 흐뭇해서일까?

 

<씨름>공책만한 작은 화첩에 스물두명이나 그려져 있고, 게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각기 다른 표정에 다른 자세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척척 그려낸 스케치 풍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화가라면 그려낼 수 없으리라고 판단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뛰어난 것은 작품 전체의 구도다.

빙 둘러 앉은 구경꾼으로 동그라미를 이루게 하고 그들의 구심적인 시선의 한복판에 씨름꾼을 놓아 그림에 강한 통일성을 주었다.

하지만 통일성만 강해도 그림이 답답해질 우려가 있으므로 오른편 가를 일부러 텅 터놓았다.

시선이 모이기만 해도 단조로우니 엿장수는 짐짓 딴 데를 본다.

한편 갓과 벙거지를 적당히 흩어놓아 화면에 리듬감이 살아 있고 부채 또한 여기저기서 똑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빼어난 구성상의 묘미는 위가 무겁고 아래가 가벼워지도록 처리한 데에 있다.

단오 씨름판에서 넘쳐나는 힘찬 에너지는 기본적으로는 맞붙어 용을 쓰는 두 씨름꾼에게서 나오는 것이지만, 위쪽에 더 많이 배치된 구경꾼들의 무게와 그들의 열띤 시선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작품 속의 구경꾼들은 자신들이 그림 밖의 감상자에 의해 관찰되고 있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기 이를데 없는 제각각의 표정을 짓고 있다.

또 자세히 살펴보면 주인공인 씨름꾼들이 앞쪽의 구경꾼들보다 약간 큼직하게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내려다보고 그린 구경꾼 모습과는 달리 씨름꾼은 앉은 자리에서 치켜다본 각도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만약 화가가 구경꾼들처럼 똑같이 내려다보고 그렸다면 씨름꾼들은 훨씬 납작하게 보였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역동적인 씨름판의 활기는 전혀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씨름꾼들은 구경꾼들이 바라본 모습 그대로인데, 그 때문에 감상자는 구경꾼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덩달아 씨름판에 끼여들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은 고 외우 오주석 선생이 지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1999, 솔출판사)에 실린 글에서 옮긴 것이다.

 

2010. 9. 2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