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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겸재 정선 "금강전도"

새샘 2013. 1. 14. 16:48

금강산의 음양오행, 지극히 굳세면서 지극히 부드러운

<겸재謙齋 정선鄭敾, 금강전도, 조선 1734년, 종이에 수묵담채, 130.7×94.1㎝, 삼성미술관 리움, 국보 제217호>

 

새해를 앞두고 정선은 <금강전도金剛全圖>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대작에 걸맞는 제시를 썼다.

"일만 이천 봉 겨울 금강산의 드러나 뼈를                        萬二千峯皆骨山

 뉘라서 뜻을 써서 그 참모습 그려 내리                           何人用意寫眞顔

 뭇 향기는 동해 끝의 해 솟는 나무까지 떠 날리고             衆香浮動扶桑外

 쌓인 기운 웅혼하게 온 누리에 서렸구나                         積氣雄蟠世界間

 암봉은 몇 송이 연꽃인양 흰빛을 드날리고                      幾朶芙蓉揚素彩

 반쪽 숲에는 소나무 잣나무가 현묘한 도의 문을 가렸어라  半林松栢隱玄關

 설령 내 발로 밟아 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從今脚踏須今遍

 그 어찌 베갯맡에 기대어 실컷 봄만 같으리오"                 爭似枕邊看不

 

제시를 보니 산 위쪽 푸르스름한 바림은 하늘빛이 아니라 명산이 뿜어내는 향기다. 그런데 자신의 그림을 가리켜 감히 금강산보다 낫다고 한 뜻이 무엇인가? 또 무슨 속 깊은 "뜻을 써서" 작품을 그렸다는 것인가? 그렇다! 과연 큰 뜻이 숨어 있다.

 

정선은 우선 주역의 대가답게 호기롭게도 금강산 뭇 봉우리를 원으로 묶어 버렸다. 그리고 반씩 쪼개어 태극을 빚어 냈다. 맨 아래 짙은 장경봉(1)에서 중앙 만폭동(2)을 지나 소향로봉(3), 대향로봉(4)을 거쳐 비로봉(5)까지 이어진 S자 곡선, 이것은 바로 태극 아닌가. 태극은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을 뜻한다. 동시에 혼돈에서 질서로 가는 첫걸음이다. 음양은 원래 상반되지만 태극으로 맞물리면 서로가 서로를 낳고 의지하며 조화를 이룬다.

 

정선은 우뚝 솟은 비로봉과 뻥 뚫린 무지개다리(6)로 거듭 음양을 강조하였다. 그 다음 이번에는 심오한 오행의 뜻을 심었으니, 만폭동에선 든든한 너럭바위를 강조하고, 아래 계곡(6)에는 넘쳐나는 물을 그렸다. 그 오른편 봉우리(7)은 촛불처럼 휘어졌고, 중향성(8) 꼭대기는 창검을 꽂은 듯 삼엄하다. 끝으로 왼편 흙산(9)에 검푸른 숲이 있다. 이러한 오행의 배열은 선천이 아닌 후천의 형상이다. 정선금강산을 소재로 겨레의 행복한 미래, 평화로운 이상향의 꿈을 기린 것이다.

 

음양에는 건순의 덕 健順之德, 수화목금토 오행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덕이 있다. 군자는 음양오행을 본받아 굳셀 때 지극히 굳세지만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부드럽다. 또 봄볕처럼 자애롭고(仁), 가을 하늘처럼 의로우며(義), 초목이 여름에 무성해도 질서가 있듯이 예를 지키고(禮), 흙에 묻혀 겨울을 나는 씨앗처럼 지혜롭다(智). 그리고 중심에 늘 변치 않는 믿음이 있다(信).

 

제시를 쓴 방식도 절묘한데, 가운데 1행이 '사이 간間'자다(10). 이것은 두 문짝 틈새로 비치는 햇빛이니, 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온다. 그 좌우 2행은 두 글자씩이요, 다시 바깥 4행은 네 글자씩이다. 태극의 첫걸음은 1→2→4로 끝없이 펼쳐져 뻗어 나간다.

 

이 글은 고故 외우畏友 오주석지은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2009, 월간미술)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정선鄭敾(1676~1759)은 영조 때의 화원으로 활약하면서 조선시대 화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자는 원백元伯, 호는 난곡蘭谷, 겸재謙齋. 우리나라 회화사에 있어 가장 큰 업적은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완성하고 성행시켰다는 것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따랐던 일군의 화가를 정선파라고 부른다.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등이 대표적인 작품.

 

2013. 1. 1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