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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영천자 신잠 "탐매도"

새샘 2013. 3. 7. 14:56

인간과 자연의 불가사의한 도道

<신잠, 탐매도, 견본담채, 43.9×210.5㎝, 국립중앙박물관>

 

<신잠, 탐매도 부분>

 

<탐매도探梅圖>는 고사高士가 눈길에 매화꽃을 찾아 나서는 정경을 그린 그림이다. 적막감이 감도는 설경을 배경으로 고사가 말을 타고 다리를 막 건너려고 할 때, 문득 뒤따르는 동자의 발걸음이 더디다고 느꼈던지 고개를 돌려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동자는 매화를 찾는 주인의 시심詩心이나 조바심 따위는 생각할 겨를 없이 그저 춥고 피곤한 느낌뿐인 것 같다.

 

화면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있는 매화나무에 핀 하얀 꽃이 그림의 주제를 분명히 해 주고 있고, 멀리 높은 계곡에 흘러내리고 있는 폭포는 두 사람이 이미 깊은 산중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런 모든 정경들이 매우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고, 세부묘사와 설채법說彩法[색을 칠하는 방법]과 담묵의 농담도 뛰어나 원숙한 경지에 이른 신잠의 필력을 알 수 있게 한다.

 

매화라는 것이 과연 어떤 존재였기에 선비들이 눈 속에서도 매화를 찾아 헤매고, 끊임없이 시로 읊조리고 또 그림으로 그렸을까? 매화에 대해 성삼문은 "나는 매화라는 것이 맑고 절조가 있어 사랑스러우며, 맑은 덕을 가지고 있어 공경할 만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그런가하면 매화는 때로 쓰라린 고난과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선각자로 상징되기도 하였고, 얼음처럼 차가운 자태와 옥처럼 깨끗한 성품을 가진 세속 밖의 가인상佳人像으로 의인화되기도 하면서 선비들 사이에서 폭넓은 애호를 받았다.

 

매화에 대한 이런 관념들은 기실 매화의 생태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매화는 추위가 덜 가신 아직 잔설이 분분한 초봄에 다른 어떤 식물보다 먼저 꽃을 피운다. 또한 매화는 흰색을 기본형으로 하면서 후각을 자극하지 않는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이런 매화의 특성이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유교적 윤리관과 자연주의 정신에 결합되면서 의인화되고 이상화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도가의 은일사상隱逸思想유가의 상고주의尙古主義 정신이 작용하고 있었다.

 

옛 선비들이 흠모하여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은일처사 가운데 송나라의 임포가 있다. 포선이나 불리기도 했던 그는 매화를 무척이나 사랑하여 벼슬을 하지 않고 자연 속에 묻혀 살다가 뒤에 서호의 고산에 집을 짓고 살아 사람들은 그를 고산처사孤山處士라고 불렀다. 고산에는 특히 매화가 많았는데 임포는 매화를 자식으로 삼고 학을 아내로 삼아 평생을 청빈하게 살았다고 한다.

 

또 당나라 때 맹호연은 은둔하여 살다가 나이 40세 때 서울 구경을 갔는데 당 현종에게 알려져 벼슬을 권유받았으나 거절하였다. 그는 산수자연을 사랑하여 주옥같은 시를 많이 남겼는데, 특히 매화를 좋아하여 초봄에 나귀를 타고 설산에 들어가 매화꽃을 찾아다니는 일화로 유명하다. 이런 행적으로 맹호연은 후대의 시인 묵객들의 존경이 대상이 되었다.

 

신잠은 기묘사화라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뜻을 펼 수 없게 되자 옛 성현들이 그랬듯이 나귀를 타고 설중매를 찾아 유유히 산속을 거닐며 세속을 멀리하고 자연에 몰입하여 인간의 본성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이 화의畵意를 일으켜 그로 하여금 <탐매도>를 그리게 했을 것이다.

 

<탐매도>는 설산에서 매화를 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그림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첫 인상은 측량할 수 없는 적막감이다. 이 적막한 분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영원성을 느끼게 해 준다. 만약 이 그림에 적막감이 없다면 화면의 두 인물은 풍속화 속의 인물처럼 속화되어 버릴 것이고, 계곡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폭포는 한낱 시원하고 보기 좋은 경치 정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탐매도>는 매화를 찾아 나섰을 때 느낀 자연에 대한 감격을 그대로 화폭에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연에 대한 감격을 다시 감정의 정지 상태로 돌린 그런 경지에서 터득한 인간과 자연의 불가사의한 도道를 표현하고 있는 그림인 것이다.

 

신잠申潛(1491~1554)은 호는 영천자靈川子, 조선 전기의 선비화가이며 신숙주의 증손자다. 문장에 능하고 서화를 잘하여 삼절三絶이라 불렸으며, 특히 묵죽과 포도 그림을 잘 그렸다 한다.

 

※이 글은 허균이 지은 '나는 오늘 옛 그림을 보았다(북폴리오, 2004)'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2013. 3. 7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