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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선동취적도" 해설

새샘 2020. 2. 25. 23:34

'흔들림 없는 주체성'

 

김홍도, 선동취적도, 비단에 담채, 130.7×57.6㎝, 국립중앙박물관(출처-출처자료)

 

김홍도가 그리면 무엇이든 조선 그림이 된다.

신선은 원래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조선 사람의 눈매와 표정을 하고 있다.

간송미술관 소장 <무이귀도도武夷歸棹圖> <오류귀장도五柳歸庄圖> 같은 고사古事 인물화 역시 주희나 도연명 등 중국인을 그린 것이지만 얼굴은 하나같이 조선 사람이다.

 

하물며 <선동취적도仙童吹笛圖>퉁소 부는 소년은 넓적한 얼굴에 시원한 이마, 총기 있어 보이는 눈매가 영락없는 조선 소년이다.

더구나 옷 주름의 출렁이는 윤곽선은 소년이 연주하는 우리 옛 가락 농현弄絃의 아름다움, 그 능청거림을 반영한 것이다.

 

첫머리의 강세는 마치 옛 음악의 합장단合長短처럼 강단이 있고, 쭉 잡아 뺀 긴 선에 이어 굵고 가늘게 너울거리는 선의 움직임이 유장한 우리 가락 그대로인 것이다.

 

중국 신선뿐만 아니라 부처나 보살을 그려도 그대로 조선 사람이 되었다.

간송미술관 소장 <남해관음도南海觀音圖>가 대표적인 예다.

관음보살은 사람 좋은 동네 아주머니 얼굴을 하고 있고, 선재동자는 그녀의 수줍은 아들처럼 보인다.

 

그러니 본래 조선 사람을 그린 작품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요즘 인물화는 한국 사람을 그렸어도 한국 사람이 아니다.

나이 어린 학창 시절부터 서구 고전조각 석고상 줄리앙 Julien이나 아그리파 Agrippa로 인체 묘사를 배운 현대 화가들은 아무리 궁리하고 애를 써도 우리 맛을 우려낼 턱이 없는 것이다.

 

하물며 정신 속속들이 서구 미학에 대한 동경으로 뼈아픈 일이다.

그러나 문화의 종속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문화는 혼魂인 까닭이다.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20. 2. 1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