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20. 5/8 강화 초지진 초지돈대 본문
인천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초지리)에 있는 초지진草芝鎭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 효종 때인 1656년에 처음 구축하였으며 숙종 때인 1679년 성을 쌓은 요새인 사적 제225호.
고종 때인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극동 함대, 5년 뒤인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무역을 강요하며 침략한 미국의 아사아 함대, 다시 4년 뒤 1875년 운요호 사건 때 침공한 일본 군함 운요호[운양雲揚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다.
그러나 당시 이들 세 나라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갖춘 데 비해 조선군은 빈약한 재래식 무기로 싸웠기에 고전을 면치 못하거나 패배했다.
초지진의 돈대墩臺[침수 방지나 군사용으로 터를 쌓아 주변보다 높고 평평하게 만든 소규모 대지] 즉 초지돈대는 안산 초지량草芝梁에 있던 수군 만호영을 현종 때인 1666년 이곳으로 옮겨 한강 하구의 강화 수로 수비 요새로서 새롭게 구축한 것이라고 한다.
허물어져 있던 돈대 터와 기초만 남아있던 성을 1973년 보수하여 돈대만 복원하고 당시 사용했던 조선 대포 1문을 전시하여 역사 교육 현장이 되었다.
초지돈대 정면 파노라마
초지돈대 정면 왼쪽의 성곽 계단과 계단 양옆에 서 있는 보호수 소나무.
이 두 그루의 소나무는 효종 때인 1656년 초지진을 처음 구축할 당시 강화유수가 심은 것으로 보이므로 나이가 400살 정도로 추정된다.
소나무 가지가 늘어지면서 삿갓 모양으로 퍼져 수형이 아름답다.
특히 세 차례에 걸친 외국 함대의 포격 때 포탄 파편이 맞았던 상처는 구멍을 메운 시멘트 자국이 되어 남아 있다.
신미양요 때 참전했던 미군 대령 윈필드 스콧 슐레이 Winfield Scott Schley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조선군은 근대 무기 한 자루 없이 노후한 전근대 무기를 가지고서 근대 화기로 무장한 미군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조선군은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용맹스럽게 싸우다 모두 전사했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그토록 강력하게 싸우다가 죽은 국민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소나무의 포탄 파편 자국
(출처-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B4%88%EC%A7%80%EC%A7%84)
옆에서 바라본 초지돈대 모습
초지돈대 앞에서 바라본 한강 하구의 강화 수로와 강화초지대교
매표소 앞에 서 있는 초지진 안내판과 신미양요 당시 사진
매표소 앞에서 바라본 초지돈대
초지돈대 뒤쪽에 있는 출입구
돈대 출입문을 통과하면서 바라본 돈대 안 모습
돈대 출입문 아래서 찍은 돈대 내부 사진.
돈대의 타원형 성벽 위에는 군데군데 깃발이 꽂혀 있고, 한가운데 누각은 조선시대 제자된 대포인 홍이포 전시관이다.
여기에 전시된 홍이포紅夷砲는 조선 영조 때 주조된 대포로서 네델란드에서 처음 만들어져 청나라를 거쳐 도입되었다.
홍이란 네델란드의 한자 이름이며, 여기서 격전을 치른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때 모두 사용되었다.
홍이포 전시 누각의 한강쪽 잔디밭에 보라꽃을 피운 타래붓꽃.
길다란 잎이 비틀렸다고 해서 타래란 이름이 붙었다.
초지돈대 앞쪽과 한강 하구쪽
성벽 뒤로 소나무 보호수 2그루가 솟아 있다.
돈대 성벽 위에 서서 본 한강 하구의 강화수로와 강화초지대교
2020. 5. 2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