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20. 5/8 인천 강화 정족산 전등사 본문
인천 강화군 정족산鼎足山 전등사傳燈寺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강화 삼랑성三郞城[일명 정족산성] 안에 있는 사찰로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 있는 정족산사고史庫의 수호 사찰이다.
정족산사고의 서적 일부는 1866년 조선 고종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게 약탈되었다.
그후 정족산사고의 서적은 모두 서울 춘추관으로 이송되어 관리되다가 지금은 서울대학교에서 보관·관리하고 있으며
지금은 정족산사고터만 남아 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81년 아도화상阿道和尙['화상'이란 수행을 많이 한 승려를 높여 이르는 말]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창건 당시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현존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사가 긴 사찰이 된다.
지금의 전등사란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고려 충렬왕 때인 1282년 왕비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시주하면서부터였다.
전등傳燈이란 말은 '불법의 등불이 전한다'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사찰이란 의미라고 한다.
현재 사찰 건물은 조선 광해군 때인 1621년 중수된 것이다.
전등사 경내 진입로 끝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풍광.
정면 불당(법당)이 종무소/적묵당에서부터 왼쪽으로 요사채, 템플스테이 사무국의 순이며, 적묵당 오른쪽으로는 자판기, 종각, 명부전, 삼성각, 약사전 순이다.
진입로 끝에서 바라본 오른쪽(북쪽) 전등사 경내.
왼쪽부터 차례로 종각, 명부전, 약사전, 향로전.
전등사 불전(불당, 법당) 마당으로 올라오면 마당 한가운데 바위 뒤에 멋들어지게 누운 소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뒤로 느티나무 보호수가 한 그루 우뚝 솟아 있다.
불전은 왼쪽부터 향로전, 보수 중인 대웅보전, 종루 순.
중앙 마당 한가운데 누운 소나무의 우아한 자태
누운 소나무를 지나 느티나무 보호수 뒤로 보이는 왼쪽부터 명부전, 약사전, 향로전, 대웅보전, 종루.
이 느티나무는 광해군 때인 1615년 소실된 전등사를 재건하면서 심은 것으로 추정되므로 전등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400살 나무다. 높이 20m에 둘레 4.6m에 달하는 거목이다.
대웅보전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와 느티나무 보호수 아래 그늘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산타와 어머니
금당 앞마당을 지나 오른쪽(동쪽)에 위치한 전등사의 중심불전 즉 금당金堂인 보물 제178호 대웅보전大雄寶殿부터 먼저 찾았다.
대웅보전 기와 개량공사중이라서 아쉽게도 외관은 볼 수가 없었다.
대웅보전 앞에 관불灌佛 의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관불이란 석가모니부처 탄생지 네팔 룸비니 Lumbini 동산을 상징하여 꽃으로 불단을 장식하여 만들어 그 한가운데 모신 아기부처 정수리에 깨끗한 물을 부어 내면에 가득한 무명無明의 때를 씻어내는 의식이다.
대웅보전 현판.
조선 광해군 때인 1621년 중건된 현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떠받치는 장식 나무쪽인 공포栱包/貢包가 기둥머리 위와 기둥 사이에 모두 있는 다포多包 양식.
인터넷에서 찾은 대웅보전 처마 밑에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출처-위키백과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468730&memberNo=2468247)
이 목각상은 모두 4개로서 대웅보전 중수를 맡은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모의 모습을 조각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재물을 잃은 목수가 주모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발가벗은 모습을 조각하여 추녀를 받치게 했다는 것으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세 곳의 처마 밑에서는 두 손으로 처마를 떠받치며 벌을 받는 모양새인데 비해 한 귀퉁이에는 한 손으로만 떠받치고 있어 우리 선조들의 재치와 익살을 느낄 수 있는 목각상이다.
반면 나부가 아닌 원숭이 목각상이란 주장도 있다.
그것은 석가모니는 전생에 원숭이 500마리를 거느린 원숭이 왕으로서 무리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자신을 희생한 일이 있어 원숭이들이 석가모니를 향한 끝없는 존경심을 표현하려고 원숭이 네 마리가 처마를 받들어 지붕을 들고 있게 배치했다는 것.
대웅보전에 모셔진 보물 제1785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은 1623년 수연守衍이 우두머리 승려 화가 즉 수화승首畵僧으로 참여하여 조성한 불상이며, 조성원문原文이 있어 정확한 조성연대가 확인된다.
삼불의 중앙은 석가모니불, 좌협시불(앞에서 보아 오른쪽)은 아미타불, 우협시불(앞에서 보아 왼쪽)은 약사불의 배치는 조선 후기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삼세불 형식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보물 제1785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출처-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22317850000#)
대웅보전 맞은편에 위치한 기도하고 법회를 여는 용도로 지은 불당 대조루對潮樓.
대조루 바깥쪽에는 '전등사傳燈寺'란 편액이 걸려 있고 누각 아래가 문 구실을 하는 전등사의 불이문不二門이다.
대웅전 바로 앞에서 대웅전보다 약간 낮게 만들어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존경하는 시선으로 올려 보게 지었다.
대조루 오른쪽 언덕 바로 아래 수령이 100년은 훨씬 넘어 보이는 키가 엄청 큰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아래에 보이는 불당은 찻집 죽림다원竹林茶院.
그리고 반대쪽인 대조루 왼쪽에 우람하게 자란 나이 280년 된 높이 18m, 둘레 5.2m의 보호수 느티나무
대웅보전 오른쪽(동쪽)의 강설당講設堂은 스님들의 공부와 승가대학 건물로 쓰였던 불당
강설당 남쪽 옆면 모습.
맨 오른쪽 법당은 선禪체험관이라고 한다.
강설당 오른쪽(남쪽) 길에서 남쪽을 바라본 풍광
강설당 오른쪽(남쪽) 길에서 대웅전 방향으로 바라본 풍광.
왼쪽은 대조루이고 오른쪽 마당의 연등 아래 관불이 있고, 개량공사중인 대웅보전은 비계 차양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연등 아래 관불 앞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전등사 풍광.
왼쪽부터 종루, 적묵당(나무 왼쪽 뒤), 느티나무, 종각(나무 오른쪽 뒤), 흰 연등 뒤는 극락암, 맨 오른쪽은 명부전
강설당에서 대웅보전 앞을 거쳐 들어왔던 길을 따라 나가면서 전등사를 구경한다.
아래 사진 오른쪽에 있는 향로전香爐殿은 대웅보전 바로 옆 법당으로서 전등사를 관리하는 처사나 보살들이 거주하던 곳.
향로전 바로 왼쪽은 명부전이고 그 왼쪽은 약사전이다.
위 사진에서 향로전 옆으로 보이는 계단을 올라 언덕길을 오르면 삼성각이 나온다.
향로전 옆 길가의 알리움 Allium 꽃과 모란 꽃, 그리고 삼성각 가는 계단 옆 노란 죽단화 꽃과 진분홍 산철쭉 꽃
계단 끝 언덕위에 있는 삼성각三聖閣에는 산신山神, 독성獨聖 나반존자, 칠성신七星神을 모셨다.
삼성각 앞길을 따라 계속 서쪽으로 가면 정족산사고지에 이른다.
이 정족산사고지에서 바로 서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정족산(222.5m)이다.
향로전과 큰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2층 종루鐘樓에는 비교적 최근에 제조된 일반 범종과 법고, 목어, 운판 등 소리를 내는 사물四物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 종루의 범종을 아침과 저녁 예불 때 두드린다고 한다.
향로전과 명부전 사이에 있는 보물 제179호 약사전藥師殿은 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신 불전이며, 중수 기록이 없어 조선 중기 건물로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지붕 처마를 떠받치는 수법이 특이하여 당시 건축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찾은 보물 179호 약사전 지붕 처마(출처-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2301790000&pageNo=1_1_1_1#)
약사전 서남쪽에 차례로 나란히 서 있는 명부전(오른쪽), 극락암(가운데 계단 위), 종각(왼쪽)
약사전 서남쪽에 세워진 명부전冥府殿은 죽은 이를 재판하는 시왕을 모신 곳이다.
전등사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시왕과 귀왕 등 모두 29존상이 모셔져 있다.
절에서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사십구재四十九齋(49재)는 바로 이곳 명부전에서 지내며, 부처님의 원력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곳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은 모두 보물 제1786호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보물 제 1786호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출처-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22317860000#)
명부전 남쪽 한단 높은 곳에 있는 극락암極樂庵은 최근에 세워진 전각으로 전등사 조실이었던 서운 큰스님과 상묵 큰스님이 열반할 때까지 머문 곳이라고 한다.
극락암 계단 아래 바로 왼쪽에 전등사 종루와 별도로 또 하나의 범종이 있는 단층 종각鐘閣이 있다.
이곳에는 전등사의 또 다른 보물 제393호 전등사 철종鐵鐘이 보관되어 있다.
종각 앞에는 고목에 턱수염을 수북히 기른 달마대사(?)를 조각한 목각이 있다.
인터넷에서 찾은 보물 제393호 전등사 철종(출처-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22303930000#)
종각 앞에 마당에서 바라본 전등사 남쪽 경내 풍광.
한가운데 느티나무 왼쪽은 무설전, 오른쪽은 종무소로 사용되는 적묵당, 그리고 느티나무 바로 뒤는 템플스테이 사무국.
무설전과 템플스테이 사무국 사이 남쪽으로 언덕 동산이 보인다.
위 사진의 왼쪽으로 난 전등사 경내 진입로 앞에서 내려다본 진입로 주변 풍광
진입로 맞은편의 적묵당寂默堂은 원래 스님들의 참선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스님 숙소와 전등사 종무소가 되었다.
적묵당에 걸린 3개의 현판
왼쪽 현판 '유천희경遊天戱浭'은 추사(완당阮堂) 김정희 글씨로서 '하늘에서 놀고 넓은 강[경수浭水는 중국 허베이성(하북河北성)에 있는 강 이름]을 희롱한다'는 뜻.
가운데 현판은 '적묵당寂默堂'
오른쪽 현판 '전등사傳燈寺'의 글씨는 서예가 해강海岡 김규진이, 그림은 화가 죽농竹儂 안순환이 그렸다.
해강과 죽농 두 사람은 조선불교 31본산 사찰 현판을 모두 만들었다고 한다.
적묵당 앞을 지나 템플스테이 사무국 뒤의 전등사 남쪽 동산으로 올라가 본다.
남쪽 동산 앞에 서 있는 왼쪽 안내판에는 전등사가 1907년 해산된 조선군인들을 모아 반일집회를 열었으며, 1908년에는 강화의병 대동창의진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승리한 곳이라는 설명이 되어 있다.
그리고 가운데 안내판은 100m 뒤로 돌아가면 수령 300년된 팥배나무가 있다고 씌어있다.
안내판 앞에서 뒤돌아본 전등사.
왼쪽이 템플스테이 사무국, 오른쪽이 무설전이다.
무설전無說殿은 내부를 현대식 공간으로 조성한 이색적 법당이자 복합 문화공간인 서운갤러리가 있다는데 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도 들러보질 못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무설전(출처-https://blog.naver.com/eusia/221364832935)
전등사 남쪽 동산 풍광
남쪽 동산에 올라 내려다본 전등사 경내.
뒷동산에는 젊은 팥배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소나무가 비스듬히 걸쳐 기대고 있는 똑 바로 선 나무가 팥배나무.
전등산 남쪽 동산 뒤에 있다는 수령 300년 팥배나무 보호수에 가보지 못한 대신 인터넷에서 찾아 아쉬움을 달랬다.
(출처-http://m.blog.daum.net/msk3031801/3008375?tp_nil_a=2)
남문 종해루에서 올라오는 길에 있는 인터넷에서 찾은 전등사 7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보호수
(출처-https://unzengan.com/1770)
삼랑성[일명 정족산성]의 주출입문인 남문 종해루宗海樓
남문 주차장 주변
정족산성 남문 종회루 가는 진입로에 남문 주차장, 남문식당 그리고 솔숲이 있다.
남문 주차장 요금소 아래 전등사로의 전등사남문교차로
2020. 6. 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