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노화의 종말 16 - 노화세포제거제 본문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 걸쳐서 우리는 노화를 그저 계절이 찾아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실제로 봄에서 여름과 가을을 거쳐서 겨울로 가는 것은 유년기에서 청년기와 중년기를 거쳐서 인생의 황금기로 접어드는 과정을 묘사하는 비유로 흔히 쓰였다.
더 최근에는 노화가 바꿀 수 없는 냉혹한 과정이긴 하지만 그 과정을 꼴사납게 만드는 질병 중 일부에 우리가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좀 더 뒤인 아주 최근에는 노화의 각 징표들을 공략할 수 있으며 일부 증상들은 한 번에 하나씩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럴 때조차 노화에 대응하는 일은 엄청나게 힘들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혀.
효모에서 선충과 생쥐를 거쳐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물에 쓰이는 노화의 보편적인 조절 인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조절 인자를 NMN(니코틴아미드 모노뉴클레오티드) 같은 분자나 몇 시간의 격렬한 운동이나 몇 끼 덜 먹는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 모든 일이 그저 단 하나의 질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노화는 놀라울 만치 대처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말이다.
암보다 쉽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나도 안다. 미친 소리 같다.
하지만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로 판명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레벤후크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생물의 존재, 수술 후 환자들이 사망하는 주된 이유가 의사들 손에 묻은 병원체 때문이며 이를 비누로서 해결한 것, 제너가 큰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질병을 일으킨다는 개념의 백신 등등...
스택 STAC(SIRT1 활성 화합물), AMPK(AMP-활성 단백질 인산화효소) 활성인자, mTOR(포유류의 TOR 즉 포유류가 가진 라파마이신의 표적) 억제인자와 같은 장수 분자들의 성공은 우리가 모든 주요 노화 관련 질병들보다 더 위쪽에 놓인 것을 연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단히 강력한 지표다.
이 분자들이 지금까지 살펴본 거의 모든 생물의 수명을 연장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고대로부터 내려온 강력한 생명 연장 프로그램을 동원하고 있다는 추가 증거가 된다.
그런데 장수 분자들이 관여한다고 믿고 있는 과정들보다 좀 더 아래쪽에, 노화의 많은 증상들보다는 좀 더 위쪽에 놓인 영역을 약물의 표적으로 삼아서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노화의 아홉 가지 핵심 징표 중 하나인 노화세포를 제거하는 것이다.
노화세포는 번식을 영구히 멈춘 세포들이다.
사람 몸에서 떼어내 배양접시에서 키우는 젊은 세포는 약 40~60번 분열하면 끝분절(텔로미어) telomere가 위태로울 만치 짧아진다.
이 현상을 해부학자인 레너드 헤이플릭 Leonard Hayflick이 발견했으며, 이 시점을 '헤이플릭 한계 Hayflick limit'라고 한다.
그 후 끝분절효소(텔로머레이즈) telomerase란 효소가 끝분절의 길이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과학자 세 사람은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하지만 끝분절효소는 줄기세포를 제외한 다른 세포들에게서는 암을 예방하기 위해 이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꺼져 있다.
그런데 1997년 배양하는 피부세포에 끝분절효소를 집어넣자 세포가 노화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왜 끝분절효소가 짧아지면 노화가 일어나는지는 거의 다 밝혀졌다.
끝부분을 감싸고 있던 애글릿 aglet[신발 끈 등의 끝을 감은 쇠붙이]이 빠져 달아난 신발 끈처럼, 아주 짧아진 끝분절은 히스톤 포장이 떨어져 나가고 염색체 끄트머리에 있는 DNA가 그대로 노출된다.
세포는 DNA 끝이 드러난 것을 알아차리는데 그 부위가 끊겼다고 판단한다.
세포는 DNA 끝을 수선하려고 시도하다가 서로 다른 염색체들의 양쪽 끝을 하나로 잇기도 한다.
그 결과 유전체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그렇게 이어진 염색체는 세포 분열 때 조각났다가 다시 융합되는 일이 되풀이될 것이며 그런 세포는 이윽고 암세포로 변질될 수 있다.
짧은 끝분절 문제를 해결할 더 안전한 방법은 그냥 세포의 활동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생존 회로를 영구히 동원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서투인 같은 후성유전인자들은 노출된 끝분절을 DNA 끊김이라고 판단하고서 그 손상을 수선하려고 본래 있던 자리를 떠난다.
그런데 DNA의 끄트머리이기 때문에 이어붙일 가닥이 없다.
그 결과 늙은 효모에게서 끊긴 DNA 때문에 Sir2 효소가 교배형 유전자를 떠나면서 세포의 생식력이 상실되는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세포 복제가 중단되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의 노화세포에서 DNA 손상 반응이 촉발되고 후성유전체에 큰 변형이 일어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아이스 ICE 생쥐(유도 가능한 후성유전체 변화 생쥐)의 세포에 후성유전적 잡음을 일으키자 그렇지 않은 세포보다 더 일찍 노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이 개념이 들어맞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는 노화가 세포의 정체성을 잃게 만들고 활동을 중단시키는 후성유전적 잡음의 결과물이 아닐까 추측되는 대목이다.
DNA 손상 때 세포가 생존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진화한 이로운 이 반응에는 한 가지 어두운 이면이 있다.
영구히 공황 상태에 빠진 세포가 주변 세포들에게 위기 신호를 계속 보냄으로써 주변 세포들까지 공황 상태로 빠뜨린다는 것이다.
노화세포는 '좀비세포'라 불리곤 한다.
죽어서 사라져야 하는데 죽지 않고 버티기 때문이다.
배양 접시의 조직이나 동결하여 얇게 자른 조직 표본에 든 좀비세포는 파란색으로 염색하여 좀비세포를 뚜렷이 볼 수 있다.
더 오래된 세포일수록 더 파랗게 보인다.
예를 들어 백색지방조직은 20대에는 하얗게 보이다가 중년에는 엷은 파란색을 띠고 노년에는 짙은 남색을 띤다.
겁나는 사실이다.
몸에 이런 노화세포가 많다는 것은 노화가 더욱 세게 우리를 옥죄고 있다는 명확한 표시이기 때문이다.
노화세포는 적게 있어도 몸 전체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분열을 멈추긴 했지만 노화세포는 사이토카인 cytokine이란 단백질을 계속 분비한다.
이 단백질은 염증을 일으키고 대식세포(큰포식세포) phagocyte라는 면역세포를 끌여들여서 조직을 공격하게 만든다.
만성 염증은 몸의 건강을 악화시킨다.
다발경화증, 염증성창자병, 건선을 앓는 사람들은 사이토카인 단백질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또 염증은 심장병, 당뇨병, 치매를 악화시킨다.
염증이 노화 관련 질환의 진행에 너무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므로 과학자들은 그 과정을 아예 '염증성 노화 inflammaging'라 부르곤 한다.
그리고 사이토카인이 염증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세포들까지 좀비로 만든다.
마치 세포 수준에서 종말론적인 세상이 펼쳐지는 듯하다.
그런 세상이 펼쳐질 때 주변 세포가 종양으로 변해서 퍼지도록 자극하기까지 한다.
이미 우리는 생쥐 몸에서 노화세포를 파괴하면 생쥐가 상당히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콩팥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활동하며, 심장도 스트레스에 더 잘 견딘다.
세계에서 최고 병원으로 손꼽히는 미국 메이요 클리닉 병원 Mayo Clinic Hospital의 분자생물학자 대런 베이커 Darren Baker와 얀 판 되르센 Jan van Deursen의 연구에서 수명이 20~30퍼센트 늘어났다.
질병의 동물 모델에게서 노화세포를 죽이자 폐의 섬유증이 완화되고 녹내장과 뼈관절염의 진행이 느려지고 갖가지 종양의 크기가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났다.
노화가 진화한 이유를 이해하는 일은 단지 학술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노화세포를 막거나 더 죽일 방법을 고안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 노화는 우리가 원시 생존 회로를 물려받은 결과다.
이 생존 회로는 DNA가 끊겼음을 알아차렸을 때 세포 분열과 번식을 멈추도록 진화했다.
늙은 효모 세포처럼 DNA 끊김이 너무 자주 일어나거나 생존 회로가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사람 세포는 분열을 멈출 것이고, 공황 상태에 빠진 채 손상을 수선하려고 시도하고, 그러면서 후성유전체가 더 뒤엉키고, 사이토카인을 계속 분비한다.
이것이 바로 세포 노화의 최종 단계로서, 멋진 것과는 거리가 멀다.
좀비세포가 건강에 그렇게 나쁘다면 몸은 왜 그냥 죽여 없애지 않는 것일까?
노화세포가 수십 년 동안 버티면서 문제를 일으키도록 놔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미 1950년대에 진화생물학자 조지 C. 윌리엄스 George C. Williams는 그 문제로 고심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벅노화연구소 Buck Institute for Research on Aging의 주디스 캠피시 Judith Campisi에 따르면, 윌리엄스는 사람이 30~40대가 되었을 때 암을 막기 위해 진화한 꽤 영리한 책략이 바로 암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아무튼 노화세포가 분열하지 않는다는 것은 돌연변이를 지닌 세포가 불어나서 종양을 형성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노화가 암을 막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면 다른 많은 노화 관련 증상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결국에는 인접한 조직에 암을 유발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여기서 '맞버팀(대항 또는 길항) 다면발현 antagonistic pleiotropy[한 유전자가 여러 형질을 발현하는 경우 적어도 젊을 때 발현되는 한 형질은 생물의 생존에 유리한 반면 늙어서 발현되는 다른 형질은 생존에 불리하다는 가설]'이 등장한다.
젊을 때 우리에게 유용한 생존 기전(메커니즘) mechanism이 늙었을 때 나타날 문제들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진화를 통해 보존된다는 개념이다.
그렇다, 자연선택은 무정하다. 그러나 그 방식은 잘 작동한다.
대형 유인원인 '사람 과 hominid' 동물[사람,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의 1500만 년에 걸친 역사를 생각해 보자.
사람과 동물은 진화하는 동안 거의 내내 포식, 기아, 질병, 출산할 때 사망, 감염, 험한 날씨, 종 내 폭력 등의 요인 때문에 짓눌려 살았고, 그 결과 10~20년 넘게 사는 개체가 거의 드물었다.
'사람 속 Homo'[인류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Australopithecus에서부터 현생인류인 슬기사람(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에 이르는 사람들]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까지도 우리는 중년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새롭게 등장한 현상이었다.
우리 진화 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걸쳐서 사람 평균수명이 50세를 넘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암의 확산을 늦추는 기전이 나중에 궁극적으로 암을 비롯한 질환들을 일으킬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기를 수 있을 때까지 멀쩡하기만 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는 칼이빨호랑이(검치호랑이)라고 부르는 스밀로돈 smilodon이 물어 갔을 테니까.
물론 요즘에는 굶주린 포식자에게 물려 갈 일을 걱정해야 할 사람은 거의 없다.
굶주림과 영양실조는 여전히 아주 흔하지만 굶어죽는 사람은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우리는 유년기 질환을 물리치는 일을 점점 더 잘하고 있으며 거의 완전히 없앤 질병도 몇 가지 있다.
출산은 점점 더 안전해져 왔다(비록 개발도상국 등에서는 개선할 여지가 아직 많긴 하지만).
또 현대 위생시설은 감염병 사망률은 대폭 줄여 왔다.
현대 기술은 태풍이나 화산 분출 같은 격변이 임박할 때 우리에게 경고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비록 세계가 때로 사악하고 폭력적인 장소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긴 해도 세계의 살인율과 전쟁 발발 횟수는 수십 년째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오래 산다.
그리고 진화는 아직 그 증가한 수명에 맞추어 적응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우리는 방사성 폐기물이나 다름없는 노화세포에 시달리고 있다.
젊은 생쥐의 피부 밑에 노화세포들을 조금만 주사하면 머지않아 염증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생쥐 몸 전체에 조기 노화의 징후를 일으킬 좀비세포가 가득해질 것이다.
'노화세포제거제(세놀리틱) senolytic'라는 약물은 이 전선에서 노화에 맞서 싸우는 데 필요한 좀비 살해자가 될 것이다.
이 작은 분자 약물은 본래 일어났어야 할 사망 프로그램을 유도함으로써 노화세포를 콕 찝어서 죽이도록 고안되어 있다.
메이요 클리닉 병원의 제임스 커클랜드 James Kirkland가 해 온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단 2가지 노화세포제거제 분자만으로 생쥐의 노화세포를 제거해 수명을 36퍼센트까지 늘렸다.
케이퍼 caper, 케일 kale, 붉은 양파에 들어 있는 케르세틴 quercetin과 백혈병의 화학요법에 으레 쓰이는 약물인 다사티닙 dasatinib이다.
이 연구가 지닌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노화세포제거제가 듣는다면 일주일 동안 투여해 회춘한 뒤 10년 뒤에 다시 투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약물들은 뼈관절염에 걸린 관절, 시력을 잃어가는 눈, 섬유증이 생겼거나 화학요법으로 치료가 잘 안 되는 폐에 집어넣어서 그 부위들의 노화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앞글에서 소개한 먹기 좋은 건강 장수 알약의 하나인 라파마이신 rapamycin은 노화세포를 죽이지는 못하지만 염증 분자의 분비를 막기 때문에 노화조절제 senomorphic라고 부른다.
사람을 대상으로 노화세포제거제를 투여하는 첫 번짼 임상 시험은 2018년에 시작되었다.
노화세포가 쌓일 수 있는 질환인 뼈관절염과 녹내장을 치료하는 용도였다.
이런 약물들이 모두에게 처방할 수 있을 만큼 효과와 안전성을 갖추고 있는지 알려면 몇 년 더 걸리겠지만 정말로 듣는다면 엄청난 가능성을 지닌 셈이다.
※출처
1. 데이비드 A. 싱클레어, 매슈 D. 러플랜트 지음, '노화의 종말', 부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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