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서암 김유성 "낙산사도" 본문
조선 후기 화원 화가였던 서암西巖 김유성金有聲(1725~?)은 1763년(영조 39년) 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김유성의 그림은 국내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사계산수도>가 있으며, 그 외 화첩에서 떨어져나온 낱장 그림인 편화片畵 등 10여 점 정도밖에 없다.
반면 일본에 갔을 때 그린 큰 그림이 여러 장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그림은 일본 세이켄지[청견사淸見寺] 주지의 요청에 따라 1764년 그려준 <낙산사도>와 <금강산도>가 있으며, 이 그림들은 당시 한일 회화 교류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김유성의 그림은 정선의 진경산수 화풍과 함께 심사정의 영향도 많이 받았으며, 조선 후기 남종화에 세련미를 더해 주었다는 평가다.
<낙산사도>는 남종화풍의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전형적인 구도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먼 산의 경사면(법면法面) 표현은 이곽화풍의 피마준 기법이, 그리고 그림 왼쪽 가운데 큰 바위의 경사면은 일부 절파화풍의 기법이 응용되어 나타나고 있어 화가의 능숙한 솜씨가 한껏 드러난다.
그림 왼쪽의 바위 위 정자와 강을 따라 마을로 이어진 물가 작은 길과 산 아래 있는 몇 채의 기와집에 탑이 있어 사찰임을 알 수 있으며, 강 건너 그림 앞쪽에는 짙은 색 나무 아래 두 채의 수각水閣에는 두 사람씩 서로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표현으로 보아 이 그림은 평소 문인의 이상향인 소요유逍遙遊[자유롭게 노닐고 다님]를 즐기기 위한 와유臥遊[누워서 그림을 보면서 즐김]의 한 방편으로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서로 이웃한 조선과 일본이 서로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바램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림 오른쪽 위에 적힌 화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조핍제천용鳥逼諸天聳 (새에게 다가갔더니 모두 하늘로 치솟고)
강연삼면파江連三面波 (강이 잇닿은 삼면에서는 물결이 이네)
차문등임거借問登臨去 (산에 올라가서 물어나 볼까)
제시하처다題詩何處多 (지은 시가 어디에 많은지)
육십팔옹六十八翁 김용두다金龍杜多 68세 늙은이 김용두다(시를 지은 사람인 듯)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alsanja&logNo=220715552295(낙산사도)
3. 구글 관련 자료
2021. 11. 2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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