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21. 12/22~23 서산-예산 여행7: 예산 추사고택 본문
서산-예산 여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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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에 있는 추사고택秋史古宅 일원은 '김정희선생 유적金正喜先生 遺蹟'이란 이름으로 충남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김정희선생 유적에는 추사선생의 옛집과 묘역을 비롯하여 추사기념관이 있으며, 이밖에도 영조 임금의 둘째딸이자 추사의 증조할머니인 화순옹조和順翁主와 남편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의 합장무덤 등이 있다.
이곳 추사고택은 추사가 태어났던 곳이며, 어릴 때 큰아버지 양자로 한성부漢城府(한양漢陽)에 올라가서 계속 살았고, 유배를 끝내고 돌아와 여생을 지낸 곳은 경기 과천이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조선 후기(순조~철종)를 대표하는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실학자로서, 특히 우리나라 금석학金石學[금속과 돌에 새겨진 글을 대상으로 언어와 문자를 연구하는 학문]을 처음 시작한 개조開祖이며, 추사체란 글씨 모양(서체書體)를 만들어 내었다.
추사는 실학자 초정 박제가의 문인으로 연암 박제가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추사의 영향을 받은 금석학자는 추사에게서 세한도를 선물 받은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이 대표적이며, 서예가를 이르는 추사서파는 자하紫霞 신위申緯, 이재彛齋 권돈인權敦仁, 그리고 화가에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과 소치小痴 허련許鍊 등을 들 수 있다.
추사는 순조 때 암행어사, 헌종 때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과 이조판서, 병조참판, 판의금부사를 지내다가 안동 김씨가 집권하자 제주도 유배와 북청 유배되었다가 나이 68살 때야 풀려났다.
그 후 과천에서 살면서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추사고택 전경
추사고택으로 향한다.
오른쪽에 있는 비는 추사선생학예술비.
추사선생학예술비 앞면과 뒷면.
큰 화강암이 2단의 비석을 받치고 있으며, 앞면에는 추사체 글과 세한도가 음각되어 있다.
아래쪽 기단에 '추사선생학예술비 秋史先生學藝術碑'란 비의 이름이, 그리고 그 위에 글과 세한도가 있다.
글은 '화법유 장강만리 서세여 고송일지 畵法有長江萬里 書勢如孤松一枝 그림 솜씨에는 장강 일만리가 흐르며, 글씨 기세는 외로운 소나무 가지 하나와 같다'.
비석 뒷면은 추사선생을 소개하는 글.
추사고택 전경(사진 출처-예산군 문화관광 http://www.yesan.go.kr/tour/sub01_01_01_05_01.do)
추사고택 앞.
추사고택은 영조 둘째딸 남편이자 추사의 증조할아버지 월성위 김한신이 지은 집으로 추사가 태어나서 어릴 때 자란 집이다.
건물 전체는 동서로 길게 지었으며, 문 양쪽에 문간채가 있는 솟을대문이고, 안쪽인 서쪽에 안채가 있고, 안채보다 낮은 바깥쪽 동쪽에 사랑채, 그리고 안채 뒤에 추사의 초상화가 있는 사당인 영당靈堂(영실靈室)이 있는 이른바 대갓집이다.
추사고택의 문은 양쪽에 문간채가 있는 솟을대문.
솟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앞에 있고 왼쪽 뒤가 안채다.
뒤의 안채보다 낮은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머물면서 손님을 맞이하던 생활공간이며, ㄱ자형으로 남향이다.
남쪽 마당에서 본 사랑채.
사랑채 온돌방은 남쪽(왼쪽)에 한 칸짜리 1개, 동쪽(오른쪽)에 두 칸짜리 1개씩 있다.
앞면에 툇마루가 있어 방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사랑채 기둥마다 추사체 주련이 달려 있다.
대청 쪽으로 난 문들은 모두 들어열개 문으로서 위로 열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사랑채에는 추사가 모은 장서가 무려 수만 권에 달했다고 하며, 불행히도 1910년 무렵 화재로 모두 불타버렸다.
사랑채 앞마당의 돌기둥(석주石柱)에는 '석년石年'이라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추사가 직접 제작한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이다.
사랑채 방문 위 추사체 현판들 '일금육경一琴六經(거문고 1개와 경전 6권)' '농상실農祥室(농사가 잘 되는 상서로운 집)' '우학산인서실友鶴山人書室(우학산인이 글씨 쓰는 방)' '죽로지실竹爐之室(죽로차를 다려 마시는 방)'.
사랑채 벽에 걸린 예전 추사고택 사진들
사랑채보다 한단 높은 곳에 지은 여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는 사방이 막힌 ㅁ자 모양으로 6칸 대청에 안방, 건넌방, 부엌, 광 등이 있다.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안이 바로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판벽으로 막아놓은 구조이며, 대청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향이고, 안방과 그 부속공간을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안채 부엌은 난방용으로만 쓰이고 요리용 부엌은 따로 두었다는 점인데, 그 이유는 추사 이전에 이 안채에 살았었던 추사의 증조할머니 화순옹주가 왕실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붕 옆면이 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지형의 높낮이가 생긴 곳에서는 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처리하였다.
안채 들어가는 문
안채 마당으로 들어와서 바라본 6칸 규모의 대청마루와 양쪽의 방
대청마루 왼쪽 난방용 부엌과 문
안방문 위에 걸린 세한도 그림
안방 안
안채 부엌문 맞은쪽 옆문
문을 나가서 안채 뒤쪽 영당으로 향한다.
영당은 추사 아들 김상무가 만들었으며, '추사영실秋史影室(추사의 진영眞影 즉 초상화을 모신 방)' 편액 글씨는 추사의 평생 벗이었던 권돈인이 썼다.
대례복을 입은 추사 초상화는 제자 김한철이 그렸고, 초상화 위 찬문을 권돈인이 쓰면서 추사를 추모하는 여덟 수의 시를 지어 김상무에게 주었다고 한다.
편액 원본은 간송미술관에, 그리고 초상화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영당 옆문을 통해 나오면 안채 뒤다.
안채 왼쪽 담 너머는 넓디넓은 잔디밭과 뒷동산이다.
안채 옆문을 통해 잔디밭 쪽으로 나오면 가문 대대로 사용해 온 우물이 있다.
이 우물과 관련된 추사 출생에 대한 재밌는 얘기가 전하는데, 내용은 어머니 유씨가 임신 24개월만에 추사를 낳았는데, 낳기 얼마전 부터 우물물이 갑자기 마르고 뒷동산인 용산龍山(74m)의 나무들이 시들었다가 추사가 태어나자 우물물이 다시 샘솟고 나무들이 생기를 되찾았다는 것!
우물 왼쪽(남쪽) 건물은 김정희선생 유적을 관리하는 관사다.
관사 앞에서 바라본 우물, 추사고택, 그리고 잔디밭과 뒷동산 용산(74m).
잔디밭의 모과나무 한 그루
잔디밭에서 바라본 추사체험관.
추사체험관 앞에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고, 체험관 안에서는 탁본, 난초 그리기, 추사체 쓰기 등을 즐길 수 있으며, 기념품 매점도 있다.
2022. 2. 14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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