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복헌 김응환 "만물초" "칠보대" 본문
김응환金應煥(1742~1789)의 자는 영수永受, 호는 복헌復軒이며, 대표적인 작품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금강산화첩金剛山畵帖≫이다.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이었던 김응환의 집안 화가들을 보통 '개성 김씨 집안 화가군'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김응환을 비롯하여 조카 김득신과 김양신, 사위 이명기와 장한종 등이 포함된다.
김응환의 ≪금강산화첩金剛山畵帖≫은 단원 김홍도가 그린 금강산 그림들과는 아주 다른 독특한 화첩이다.
아마 이 화첩은 단원, 표암 강세황 등과 함께 금강산에 가서 실사實寫[실경을 그림]했을 때의 초본인 것으로 보이는 아주 특색 있는 그림들이다.
한때 단원이 복헌의 제자라는 설도 있었지만, 단원은 복헌의 제자가 아닌 나이가 세 살 적은 동료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김응환도 그림으로서 이름난 화가로서 실력을 알아본 정조가 금강산 사생을 위해 화원을 파견할 때 단원과 함께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김응환이 그려 정조에게 바친 <금강산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지금 알 도리가 없다.
단원과 복헌과 함께 이틀간 내금강을 유람했던 표암 강세황은 두 화가가 그린 초본 백여 편을 보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두 사람은 각자 그 장점을 살려서 한 명[복헌 김응환]은 '씩씩하고 굳세면서도 울창하고 빼어난 풍치'를 다하였고, 다른 한 명[단원 김홍도]은 '부드럽고 고우면서도 섬세하고 교묘한 모양'을 다했으니, 둘 다 우리나라에 전에 있지 않았던 신필神筆이라 할 만하다."
김응환이 그린 금강산의 두드러진 특색은 아래 두 그림 만물초萬物草와 칠보대七寶臺에서 보듯이 멧부리[산등성이나 산봉우리의 가장 높은 꼭대기]가 쭉쭉 올려치게 그려진 것으로, 유난히 눈에 띄는 인상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바위나 계곡 등을 화면에 꽉 채워 그렸으며, 자연 정물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고 갈필로 질감을 표현하며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독창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통 세상만물이 다 모인 곳이란 뜻을 가진 금강산 외금강의 만물상萬物相을, 김응환은 '천지가 만들어질 때 초草(기초起草: 초안草案)를 잡아둔 표본'과 같다'며 '만물초萬物草'라 이름 붙였다.
<만물초萬物草> 그림이 실려 있는 또 다른 김응환의 화첩인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의 기문記文[그림을 설명하는 글]은 다음과 같다.
신계神溪에서 서북쪽으로 5리를 가서 온정溫井을 지나 다시 산길을 따라 15리를 더 가서 육화대六花臺를 지나고, 다시 10리를 가면 이른바 입암立巖이란 곳에 오르게 된다.
바위가 가지런하게 솟은 것이 다섯 개인데 모두 다 10장 쯤의 높이가 되며 다섯 개의 바이 사이에 대臺를 만들어 놓았다.
대에 앉으면 좌우로 봉우리들이 낱낱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 첩첩 산봉우리가 하늘을 떠받치려고 갑자기 뛰어오르는 듯한 모습이니 이것을 구만물초舊萬物草라고 한다.
다시 동북쪽으로 3리를 돌아서 100길 높이의 돌계단을 오르면 봉우리가 트이면서 문호門戶[드나드는 문]를 이루는 것이 있으니 이름하여 사항령獅項嶺이라 한다.
고갯마루에 기대어 내려다보면 갑옷과 칼날이 눈앞에 가득하고 깎인 칼날이 산더미로 쌓였는데 이것을 일러 신만물초新萬物草라고 한다.
구만물초에서 보이는 부분은 등 쪽이고 신만물초에서 보이는 부분은 얼굴 쪽이니 다른 봉우리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구만물초는 쳐다보기에 똑바르고 신만물초는 굽어보기에 비스듬하다.
봉우리의 색상이나 형태가 중향성衆香城과 매우 흡사하지만 더 정교하고 세밀하다.
대개 만물초草라고 이름한 것은 세간에서 말하는 조물주가 인간과 사물을 빚을 때에 초안을 잡아본 흔적이기 때문인데, 혹은 만물초肖라고도 하니 온갖 만물의 형상을 본떴다는 말이 된다.
신新·구舊라고 나누어 이름한 것은 사람들이 길을 가면서 볼 수 있는 모습에 선후가 있기 때문이다.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기록한 진만물眞萬物은 신만물초의 왼쪽으로 천불동千佛洞과 백정봉百鼎峯과 서로 가깝다고 하는데, 혹자는 보았다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길이 끊어져 찾을 수가 없다.
<칠보대七寶臺> 그림은 <만물초>와 함께 정조의 명을 받아 김홍도와 함께 금강산 기행을 하며 그린 ≪금강산화첩≫에 실려 있다.
칠보대는 금강산의 대표적인 전망대 중 하나로 위 화면에서 가장 멀리 보이는 우뚝 솟은 7개의 기암대를 말한다.
화면 맨 앞 산등성이에 올라 앉아 칠보대를 가리키며 감상하고 있는 세 선비는 아마도 이 그림을 그린 김응환과 동행자 김홍도, 강세황인 듯하다.
≪금강산화첩≫은 기행도의 성격을 띄기 때문에 산을 보는 이들이 그림 속에서도 등장한다.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532748#home
3. https://v.vivasam.com/themeplace/themeStartViewer.do?artId=27500220110&themeId=375(만물초)
4. http://koreascience.or.kr/article/JAKO201911364475042.pdf(만물초)
5. https://v.vivasam.com/themeplace/themeStartViewer.do?artId=27500220108&themeId=375(칠보대)
6. 구글 관련 자료
2022. 4. 10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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