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22. 6/15 하남 베트남전 참전 기념탑과 현충탑 본문
하남 검단산 산책을 나섰다.
등산은 엄청 많이 해 본 검단산이지만 트레킹 하러 나선 건 처음인 것 같다.
하남검단산역 3번 출구로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산곡천 산곡2교를 건너 검단산로를 따라 하남시 버스환승공영차고지 북쪽 창우동 먹거리촌으로 향한다.
산곡2교 보행로 화분에 핀 자주꽃 사피니아 surfinia와 노란꽃 솔잎금계국(문빔 moon beam)
검단산로 길 동쪽 언덕에 울창한 밤나무들은 밤꽃이 활짝 피어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이상야릇한 밤꽃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창우동 먹거리촌에서 이름난 이병태함흥냉면에서 회냉면과 만두로 점심.
50년 경력의 이병태 쉐프는 오장동 함흥냉면의 총주방장 출신이며, 이 하남점은 은평구청점에 이은 2호 이병태함흥냉면이다.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이곳 회냉면은 회도 많이 들었고 맛도 좋아 많이들 찾는다.
회냉면과 만두로 배를 채운 다음 검단산을 향해 걷기 시작.
검단산 주차장 매표소로 들어서면 바로 등산로 입구 왼쪽에 베트남전 참전 기념탑(아래 사진에서 태극기가 걸려 있는 곳)이 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 길이 검단산 등산로이고, 오른쪽 길은 현충탑 가는 길이다.
당시 베트남 Vietnam은 한반도처럼 북쪽은 공산주의 월맹越盟(베트민 Viet Minh)과 남쪽은 자본주의 월남越南(베트남 Viet Nam)으로 분단된 상태로서, 1955년부터 월남과 월맹 사이의 전쟁 즉 베트남 전쟁 Vietnam War[1946~1954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프랑스와 베트남과의 전쟁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The First Indochina War라고 했기 때문에, 이 베트남 전쟁을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도 한다]이 시작되어 1975년 월맹의 승리로 끝나 통일되었고 현 국호인 베트남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 때인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대한민국 박정희 정부는 월남을 돕기 위해 5만 명의 한국군을 파견했으며, 당시 한국에서는 이 전쟁을 월남전이라 불렀다.
그래서 여기에 서 있는 기념탑 이름에도 베트남전이 아닌 월남전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하지만 전쟁의 공식 이름이 베트남 전쟁이므로 '베트남전 참전 기념탑'이 더 적합한 이름으로 보인다.
베트남전에서 공식 한국군 사상자는 전사 5,099명, 부상 10,962명, 실종 4명.
하남 베트남전 참전 기념탑
기념탑 오른쪽에 있는 설명 표석.
비가 계속 조금씩 내려 오른쪽 길을 따라 1킬로미터 거리의 하남 현충탑까지만 갔다오는 것으로 결정.
베트남전 참전 기념탑에서 20분 정도 걸어 올라 현충탑 도착.
이 현충탑은 검단산 등산할 때 멀리서 보기만 했을 뿐 찾아오기는 처음이다.
2001년 하남시에서 건립한 전체 높이 20미터의 하남 현충탑은 검단산을 표현한 삼각형 구도의 조형물 위에 9미터의 대형 청동 군인상을 세웠다.
삼각형 구도 조형물 양쪽에는 자유와 평화를 나타내는 청동조형물을 배치
현충탑 양쪽 끝에 배치한 청동조형물은 호국영령들의 넋을 달래는 진혼곡을 연주하며 기리는 모습이다.
충혼탑에 새겨진 글
충혼탑 좌우 광장 뜰에 있는 조형물들
현충탑 앞에서 내려다본 하남시 아파트단지 모습과 그 뒤 능선은 북한산과 도봉산이 아닐까?
하남 현충탑 입구에 우뚝 서 있는 피나무 세 그루
현충탑 진입로인 검단산로250번길을 따라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내려가면서 바라본 하남시 아파트단지들.
길 왼쪽 밭의 밤나무에 핀 밤꽃과 살구나무에 매달린 살구
길 오른쪽에는 빨간 접시꽃과 덩굴장미 빨간 꽃이 피었다.
접시꽃
덩굴장미
2022. 6. 17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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