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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혜원 신윤복 "미인도"와 작가 미상 "미인도"

새샘 2022. 6. 24. 15:21

신윤복, 미인도, 비단에 담채, 113.9x45.6cm, 간송미술관(사진 출처-출처자료2)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1813 이후)은 자가 입부笠父이며 고령高靈 신씨다.

신혜원하면 속화, 풍속도로 유명하며 그것도 그냥 풍속도가 아닌 여색도로서 유명하다.

하지만 혜원도 남아 있는 그림이 많지는 않다.

 

신윤복의 그림을 대표하는 것은 간송미술관에 있는 ≪혜원전신첩≫이며, 문화재청이 이 화첩을 국보 제135호로 지정하면서 ≪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 申潤福 筆 風俗圖 畵帖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 화첩에는 주로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한 남녀 간의 애정과 낭만, 양반사회의 풍류를 그린 연작 풍속화 30점이 들어 있으며, 각 그림의 크기는 세로 28.2cm, 가로 35.2cm이다.

대부분의 작품에 짤막한 글과 함께 낙관이 있지만 연대를 밝히지 않아 그의 화풍의 변천과정은 알 수 없다.

이 화첩은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것을 1930년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이 구입해 새로 틀을 짜고 오세창이 발문을 쓴 것으로 미술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18세기 말 당시 사회상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생활사와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밖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작은 편화片畵[화첩에서 떨어져 나온 낱장 그림]가 있고,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이 가지고 있던 화첩에도 대여섯 폭의 혜원 그림이 있었는데 모두 흩어져버렸다.

또 하나 해방 직후에 나온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가 가졌던 화첩에 혜원 그림이 두 폭이 들어 있었으며, 이 화첩은 지금 간송미술관에 있다.

 

혜원 하면 간송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간송미술관은 혜원의 대표작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하나가 바로 화첩이 아닌 축으로 된 보물 제1973호 <미인도美人圖>다.

 

<미인도>서울 풍류생황을 주도하던 어떤 아리따운 여인의 전신全身 초상화다.

당시 사회제도상 여염집 규수는 외간 남자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으니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필시 풍류세계에 몸담고 있었던 기생이었을 것이다.

 

가체加髢[예전에, 부인들이 머리를 꾸미기 위하여 자신의 머리 외에 다른 머리를 얹거나 덧붙이던 일]를 사용한 듯 탐스런 얹은머리에, 젖가슴이 드러날 만큼 기장이 극도로 짧아지고, 소매통이 팔뚝에 붙을 만큼 좁아진 저고리를 입고, 속에 무지개 치미를 받쳐 입어 열두 폭 큰 치마가 풍만하게 부풀어오른 차림새는 여체의 관능미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자태이다.

또한 쪽빛 큰 치마 밑으로 살짝 드러낸 하얀 버선발과 왼쪽 겨드랑이 근처에서 흘러내린 두 가닥 주홍색 허리끈을 일부러 고를 매지 않고 풀어헤친 진자주 옷고름과 함께 대장부를 뇌쇄시키기에 충분한 표현이다.

 

저고리 깃과 겨드랑이는 옷고름과 같은 진자주 빛으로 회장回裝[가장자리를 다른 색깔로 가늘게 돌아가며 대어 꾸밈]을 대고, 끝동은 치마와 같은 쪽빛으로 회장을 대어 삼회장三回裝[여자 한복 저고리의 깃, 소맷부리, 겨드랑이에 대는 세 가지 회장]으로 멋을 부린 것도 도회의 세련된 옷차림이라 하겠다.

두 손으로 묵직한 마노瑪瑙[단석丹石: 석영石英(차돌), 단백석蛋白石, 옥수玉髓의 혼합물] 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은 분명 고혹적인 자태이다.

여린 듯 앳된 둥근 얼굴에 열망을 가득 담은 채 물오른 앵두처럼 터질 듯 붉게 부푼 입술이 말할 듯 아니하며 그윽한 눈빛을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다.

 

혜원은 이 그림에 이런 제화시題畵詩를 곁들이면서 '혜원'이란 관서款署[작가 이름, 그린 장소, 그린 날짜 등의 내용을 적은 기록] 아래 2개의 인장 '신가권인申可權印('신가권'이란 이름도 썼다)' 과 '시중時中(신윤복의 자)'을 찍었다.

 

"반박흉중만화춘 盤薄胸中萬化春 (화가의 마음속에 만 가지 봄기운 일어나니)

  필단능언물전신 筆端能言物傳神 (붓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내누나)

  혜원蕙園"

 

<미인도> 그림은 부드럽고 섬세한 필체로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은은하고 격조 있는 색감으로 묘사했다.

자주색 회장 머리 때, 주홍색 허리끈, 분홍색 노리개 등 부분적으로 가해진 채색은 정적인 여인의 자세와 대비되어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마치 초상화처럼 여인의 전신상을 그린 그림은 신윤복 이전에는 남아 있는 예가 거의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19세기 미인도 제작에 있어 기준이 되는 전형典型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작가 미상, 미인도, 종이에 담채, 117.0x49.0cm, 개인(사진 출처-출처자료5)

 

신윤복의 <미인도>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그림은 해남 윤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그린 이를 알지 못하는 <미인도>이다.

기녀로 보이는 여인이 옷과 얼굴 단장을 한 뒤 마지막으로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화려한 얼굴 화장과 빨간색 속저고리 옷고름, 저고리 밑으로 하얗게 삐져 나온 겨드랑이 아래 살이 눈길을 끈다.

이 미인보다는 신윤복의 미인이 좀 더 어린태가 난다.

 

해남 윤씨 집안의 이 <미인도>는 공재 윤두서가 심심풀이로 그렸다는 얘기와 윤두서의 손자 윤용이 그렸다는 말들도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므로 현재 작가 미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신윤복 필 미인도(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s_kdcd=&s_ctcd=11&ccbaKdcd=12&ccbaAsno=19730000&ccbaCtcd=11&ccbaCpno=1121119730000&ccbaLcto=16&culPageNo=6&header=region&pageNo=1_1_3_0&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RegionList.do&assetnamel=)

3.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1350000,11&pageNo=1_1_1_0)

4. 간송미술문화재단, 미인도(https://kansong.org/collection/miindo/

5. 중앙일보 인터넷판 2010.07.31, "고산 '미인도' 21년 만에 공개'(https://www.joongang.co.kr/article/4351809#home)

 

2022. 6. 2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