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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8: 풍납토성

새샘 2022. 7. 26. 21:28

<2000년 이후 발굴조사 목록 - 풍납토성>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풍납토성風納土城 발굴은 2000년 이후 계속 추진되어 왔다.

특히 중요 유적으로 확인된 미래마을 재건축 아파트 부지에 대한 발굴은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지속적으로 발굴되었으며, 경당지구에 대한 발굴도 2008년에 한 차례 있었다.

그밖에 2002년과 2003년에는 삼표산업 사옥 신축부지에 대한 시굴조사와 발굴조사가 이었다.

 

삼표산업주식회사의 신축 사옥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2002년과 2003년에 실시되었다.

사실 이 지역은 2001년에 이미 다른 발굴기관이 간단한 시굴조사를 하였지만, 당시 백제시대 문화층과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건물 철거와 터파기 공사 때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입회하여 현장을 살펴본 결과 세발그릇(삼족기三足器) 파편과 같은 백제 유물이 수습됨에 따라 이번 조사가 실시된 것이다.

 

이번 조사지역은 풍납토성의 서남벽 잔존구간에 인접 외곽지역이다.

발굴단은 이번 조사를 통해 지하에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는 성벽 기초를 확인하고, 성벽 바깥에 있었을 해자垓字의 확인 및 성벽과 해자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였다.

 

먼저, 2002년 시굴조사에서는 조사지역의 남서쪽 토층에서 토성과 관련된 해자로 추정되는 층위가 확인되어 현장 보존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실시된 2003년 발굴조사에서 백제토기 조각 등이 수습되기는 했으나 하천 범람으로 인한 퇴적층과 강바닥으로 추정되는 개흙층 및 자갈층이 확인되었을 뿐 특별한 유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표 아래 7.5미터, 해발 11.5미터에서부터 강돌이 포함된 회흑색 개흙층이 확인되어 백제시대 이래 강물은 지금보다 훨씬 성벽 쪽으로 가깝게 흘렀던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이는 강기슭에 성벽을 축조하여 자연 해자의 기능을 하게 한 백제 도성 입지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발굴단은 보았다.

 

 

 

풍납토성 미래마을 조사지역과 한강(사진 출처-출처자료1)

2000년부터 시작된 미래마을 재건축 아파트 부지에 대한 발굴은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집중적으로 실시되었다.

먼저, 2000년에 이어 2003년에 2차 시굴조사가 이어졌다.

2003년의 조사 목적은 2001년 소규모 주택 시굴조사 때 풍납동 197번지와 인접한 서남쪽 일대에서 유실된 서쪽 성벽의 아래 부분이 확인된 바 있어 그것이 이번 조사지역 서쪽으로 연결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발굴 결과 일부 조사층에서 서쪽 성벽과 관련된 판축층이 확인되었다.

 

이후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조사지역 중 '가' 지구의 서남쪽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2007년에는 '나' 지구에 대한 일부 조사도 있었다.

긴 조사기간만큼 확인된 유구와 유물들도 상당하였다.

먼저, 한성백제 주거지와 도로, 석축 수로, 성토부 등이 확인되었으며, 한성백제시대 최대 규모의 대형 움집 건물 터, 5,000점 이상의 기와가 출토된 대형 폐기용 구덩이가 확인되면서 이 지역에 전반적으로 규모가 큰 공공시설물이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발굴단은 판단하였다.

 

풍납토성 미래마을 부지에서 노출된 남북으로 뚫린 도로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이번 조사에서 큰 성과는 도로 유구의 확인이었다.

특히 남북으로 지나는 도로와 동서로 지나는 도로가 합쳐지는 교차점을 확인한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도로의 교차구간은 초보적인 조방제條坊制(동서와 남북으로 큰 도로를 배치하고 바둑판의 눈금처럼 작은 구획을 나누던 도시 정비 제도) 성격의 공간 분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왕성 내 중요 공간을 분할하거나 중요 시설을 감싸던 핵심도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단은 이번에 조사된 유구와 유물을 통해 풍납토성의 월등한 위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조사지역 중 '나' 지구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다.

2008년에는 '다' 지구에 대한 일부 조사도 있었다.

'나' 지구는 '가' 지구의 바로 북쪽이다.

이 지역 조사에서 가장 큰 성과는 '가' 지구에서 확인된 도로 유구의 연장선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즉 도로 유구 조사를 통해 추가적으로 길도랑(측구側溝: 차도와 인도의 경계선을 따라 만든 얕은 도랑)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고, 내부 절개조사를 통해 도로 노면 아래 부분 구조도 살펴볼 수 있었다.

 

2009년에는 조사지역 중 '다'와 '라' 지구, 2010년에는 '라'와 '마' 지구, 2011년에는 '마' 지구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다' 지구에서는 긴 네모 형태의 구덩이들이 대거 확인되었으며, 이 구덩이들은 '라' 지구 서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구덩이들은 도로 유구와 함께 확인됨으로써 물품의 보관과 유통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발굴단은 기대했다.

 

'다' 지구 북쪽 일부와 '라'와 '마' 지구의 가장 높은 지역에서는 모두 5기의 지상건물 터가 확인되었다.

한성백제시대에서 생활면이 지상으로 올라온 건물 형태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발굴단은 건물 축조 방식도 웅진시대나 사비시대와는 다른 양상이라고 파악하였다.

즉 이런 건축 양식은 백제 초기의 건축 축조기법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백제 건축의 시작을 잘 보여준다고 발굴단은 생각했다.

 

미래마을 부지는 현재 풍납백제문화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사진 출처-https://www.seouland.com/arti/culture/culture_general/3920.html)

풍납토성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받는 미래마을 부지에 대한 조사는 2011년을 끝으로 완료되었다.

미래마을 재건축 아파트 부지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역사공원인 풍납백제문화공원으로 조성되어 현재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경당지구 196호 유구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1999년부터 2000년 사이 실시했던 경당지구에 발굴조사는 2008년에 이르러 재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첫 발굴 때 여러 가지 이유로 불충분하게 마무리되어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당시 발굴기관인 한신대 박물관은 서울시와 서울역사박물관의 협조로 다시 발굴을 실시하였다.

발굴 대상은 주요 유구인 101호, 44호, 206호, 196호였고, 추가로 유구 217~252호 등이 발굴 조사되었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는 196호 유구에 대한 내용만이 보고서로 발간되어 나머지 조사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196호 유구는 첫 발굴 당시 유구의 동쪽 부분만 조사하고 끝났기 때문에 전체 규모와 구조를 파악할 수 없었다.

조사 당시 이미 심하게 파괴되어 거의 바닥면만 남아 있었으며, 남동쪽 부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남아 있는 부분만으로 추정해볼 때, 길이 10.8미터, 폭 5.8미터, 잔존 깊이 0.3미터 이상의 긴 네모 평면 형태인 구덩이다.

 

경당지구 196호 유구에서 출토된 동전무늬도기와 표면의 동전무늬(사진 출처-출처자료1)

발굴단은 유구 안쪽에 기둥 구멍이나 부뚜막과 같은 부대시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상적인 주거지일 가능성은 없다고 보았다.

중국제로 보이는 시유도기施釉陶器(유약을 바른 도기) 28점, 동전무늬도기(전문도기錢文陶器) 5점, 백제토기 74점 등 많은 용기 종류가 빽빽하게 있는 것으로 고려하면 일종의 창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였다.

발굴단은 중국 도기에 대한 성격 분석을 통해 왕실 직속의 식품 창고로 추측했다.

동시에 제사 관련 유구인 44호 유구에서 치러지는 제의에 필요한 제수용품 보관 창고일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러한 풍납토성에 대한 학술발굴 이외에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2001년 풍납토성 안팎 지역 보존을 위해 소규모 건축행위와 관련된 기본방침과 세부기준을 마련하였다.

이는 2000년 풍납토성 안 외환은행 직원합숙소 부지와 2001년 미래마을 재건축 아파트 부지에 대한 발굴 이후 마련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01년 9월부터 소규모 주택 신축부지에 대한 본격 조사를 시작하였고, 2007년 5월까지 모두 136개소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 내용을 일일이 소개하기는 힘들고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7년 발간한 발굴보고서인 ≪풍납토성≫ VIII에 상세한 내용이 나와 있다.

이런 소규모 지역에 대한 발굴을 통해 풍납토성 전역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앞으로 풍납토성 보존 및 체계적 조사를 위한 기본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풍납토성의 역사적 가치는 이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여러 문제들이 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풍납토성에 대한 적극적인 발굴을 통해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사의 출발점을 재정립하고, 아울러 지역 주민들의 현실적 소망도 이루어주는 현명한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2. 7. 2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