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원 본문
아메리카 America 신대륙 원주민(이른바 '인디언 American Indians 또는 Indians')의 기원은 신대륙이 서구 사람들에게 처음 발견된 이래 400여년을 끌어온 논쟁이다.
초창기 신대륙의 풍물을 기록한 예수회 신부 호세 데 아코스타 José de Acosta(1539?~1600)가 1590년 출간한 ≪신대륙 자연문화사 Historia naturaly moral de las Indians≫에서 이들이 아시아 어딘가에서 난파된 사람들이라고 말한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은 아시아 대륙에서 건너왔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실제로 마야 문명 Maya Civilization에서 확인된 여러 유물의 특징은 동북아시아의 선사시대와 많은 유사점이 보인다.
고고학자들은 신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알래스카 일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현재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들이 1만 5000년을 전후해 베링해를 건너 신대륙에 정착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한편 구석기시대가 한참 지난 후인 마야나 잉카 Inka 문명에서도 동북아시아와의 관련성이 꽤 보인다.
마야 문명에서 출토된 조각상 양식이나 무늬, 토기 등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유사한 유물들이 꽤 많다.
이를 이유로 중국에서는 신대륙의 발견자가 중국인이라는 주장이 상당히 강하게 제기되었다.
반면 미국에 정착한 백인 이주민들은 당연히 이 문제에 대해서 완전히 엇갈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신대륙 원주민의 기원을 두고 엇갈린 이야기의 속사정을 살펴보자.
○마운드 빌더 논쟁
1620년 메이플라워호 Mayflower의 기착을 기점으로 백인들의 신대륙 이주가 본격화되었다.
물론 메이플라워호가 처음은 아니었다.
1587년 무렵 로어노크 섬 Roanoke Island에 정착했으나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최초의 영국 이주민부터 필라델피아 Philadelphia 근처에 자리잡았던 스웨던 Sweden 이주민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북미 대륙에 정착하고자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목숨을 건 이들의 이주가 성공한 데에는 현지 원주민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주가 정착되면서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을 속이고 잔인하게 학살하는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그리고 미국의 새로운 주인이 된 이들은 자신들의 야만적인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미개하고 열등한 사람들로 간주했다.
그런데 초기 정착민들이 주로 거주했던 미국 동북부 지역 곳곳에서 백인들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주는 유적들이 속속 발견되었다.
마치 뱀처럼 긴 모양을 한 무덤과 거대한 고분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에는 경주 황남대총皇南大塚의 1.5배 정도인 엄청난 규모의 고분도 있었다.
백인 이주민들로서는 미개하고 열등한 원주민들이 문명의 흔적인 거대한 고분을 만들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이 무덤을 만든 사람들은 현재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아니라 지금은 사라져버린 백인들이라는 설을 강조했다.
그 유력한 후보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전설의 아틀란티스 Atlantis 대륙의 후예, 히브리인 Hebrews, 스키타이인 Scythians, 바이킹 Vikings등이었다.
'마운드 빌더 Mound Builder(무덤을 만든 사람)'라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종족까지 만들어낸 이 황당한 논쟁은 정작 미국에서 200여년 동안이나 진지하게 이어졌다.
유력 후보 중 하나인 히브리인의 경우 백인들은 모르몬경 Book of Mormon을 근거로 서기전 6세기 무렵에 이스라엘 Israle의 한 지파인 히브리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서 1,000년 동안 살며 미국의 문명을 개척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미국 3대 대통령을 역임한 토마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마저 자기 농장에 있던 옛 고분을 직접 발굴해 마운드 빌더 주장을 뒷받침했다.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북미 대륙에 남겨진 거대한 고분은 바로 그들이 경멸하던 원주민의 조상이 만들었다는 당연한 사실이 인정되었다.
미국처럼 실용적이며 과학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어처구니없는 미신에 집착했을까 어이가 없다.
이런 유사과학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준의 논의가 나온 데에는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 땅을 차지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즉 신대륙은 원래 백인 계통의 우수한 문명인들이 살던 땅이었는데, 그것을 미개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빼앗겼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신대륙 정복은 남의 땅을 탈취한 것이 아니라 원래 백인들의 땅을 되찾아온 것이라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더 나아가 신대륙은 하느님께서 백인계 이주민들에게 약속하신 땅이라는 그럴듯한 이야기까지 만들 수 있다.
최근 멕시코 Mexico 이민자들을 장벽을 쌓아서라고 막겠다는 미국 정부와 이 주장을 옹호하는 백인 지지층을 보면 이런 인식은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누가 신대륙을 발견했는가
신대륙 발견자를 자처하는 또다른 나라는 중국이다.
청나라 말기부터 신대륙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서복徐福(또는 서불徐市)의 기착지가 신대륙이라는 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복은 진시황에게 불로장생약을 구하겠다고 약속한 뒤 진시황의 마련해준 배 60척에 동남동녀童男童女(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 3000명과 장인匠人(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5000명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떠났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고 사라졌다.
진시황은 죽을 때까지 오매불망 서복을 기다렸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영생을 꿈꾸는 인간의 얄팍한 심리를 이용한 중국판 '봉이 김선달'쯤 될 법한 사람이다.
이제까지 서복이 도망친 곳은 한반도 또는 일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2014년 7월 방한한 시진핑 중국 주석은 서울대 초청강연에서 중국과 한국의 우호를 다진 첫 번째 인물로 '신선을 찾아 제주도로 온 서복'을 언급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중국 주도의 글로벌 경제 벨트 구축 구상)과 함께 해외로 세력을 키우면서 서복의 행선지도 제주도, 남해, 일본을 넘어 신대륙설까지 등장했다.
서복은 사실 불로장생약을 미끼로 장난을 친 사기꾼이 아니라 명나라 정화鄭和 원정대처럼 다른 대륙을 탐험하는 원정대였다는 식의 견강부회牽強附會(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도 커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산해경山海經≫에 기록된 바다 건너 동쪽 끝 해 뜨는 나라인 부상扶桑이 신대륙이란 주장까지 나왔다.
사실 서복이나 부상에 대한 이야기는 단편적인 기록 몇자에 근거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 이후 중국에서 상商나라의 발굴을 시작하면서 실제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 시작은 1928년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상나라의 청동기였다.
미국 고고학자들은 미국 북서부 원주민의 예술품과 상나라의 청동기가 너무나 비슷하다는 점에 놀랐다.
저명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Claude Lévi-Strauss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이동 경로가 없기 때문에 인류의 문화 발달 과정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대룩에서 서기전 1200년 무렵에 갑자기 등장했다 사라진 올맥 Olmec 문명이나 암각화를 상나라와 연결시키는 등 '상나라 미국 이주설'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이 이론은 정화 원정대가 아프리카뿐 아니라 전세계를 탐험했다는 연구와 함께 거대 중국을 지향하는 중국인들에게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 신대륙과 일본과의 관련성도 일찍이 1960년대에 제기된 바 있다.
1960년대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Smithsonian Museum의 베티 메거스 Betty Meggers와 클리퍼드 에번스 Clifford Evans 부부 고고학자는 에콰도르 Ecuador의 발디비아 Valdivia 문화가 일본 조몬토기(우리 말로는 새끼줄무늬토기 또는 승문縄文토기)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사실 이들이 말하는 조몬토기는 한반도에서 주로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와 번개무늬토기에 더 가깝다.
이 주장 역시 당시에는 미국 고고학계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환태평양環太平洋(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의 문화교류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며 시베리아 Siberia의 신석기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냉전이 사라지고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진 덕분이다.
러시아 Russia의 경우 아메리카 원주민은 시베리아에서 건너갔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이다.
그 덕분에 혹독한 냉전시대에도 미국과 소련이 사이좋게 알래스카 Alaska와 시베리아 공동조사를 할 수 있었다.
그 이면에는 크림전쟁 Crimean War의 여파로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아버린 러시아의 배 아픈 속내가 깔려 있기도 하다.
이렇게 신대륙을 둘러싼 수많은 가설이 오고가는 와중에 드물게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된 경우도 있다.
북유럽에서 미 대륙으로 넘어온 바이킹의 후예로, 실제로 캐나다 Canada 뉴펀들랜드 Newfoundland에 바이킹이 정착했던 증거가 나오고 있다.
이 유적은 그동안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빈랜드 Vínland'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바이킹의 경우 캐나다의 섬에 잠시 거주했다가 철수했기 때문에 그들이 신대륙의 고대문화에 끼친 영향을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나라들이 자신들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관련 있음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20세기 초중반 세계를 휩쓸던 극단적 전파론이 있다.
그 영향으로 전체 사회구조, 시간과 공간의 차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부 유물의 양식이나 조각품의 유사성에만 주목한 다양한 가설들이 난무했다.
미국의 고고학과 인류학은 20세기 이래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며 세계 곳곳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도 미국에서 공부한 고고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신대륙의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논의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터무니없는 가설과 기원론이 제시되고 토론되었다.
왜 유독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원에 관해서만은 단편적인 몇 가지 근거만으로 유대인, 아틀란티스, 한국, 중국, 일본 같은 현대 국가의 기원지 논쟁이 끊이지 않을까.
그 이면에는 미국이란 나라의 성립 과정 문제가 있다.
미국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앵글로색슨 Anglo-Saxon 계열의 백인들이 이곳에 정착한 지 400년 남짓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미국 사회는 그 이전부터 이 지역에서 살아온 원주민 대신에 다양한 이민자들로 채워졌다.
다시 말해 신대륙의 고대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자신들의 역사와 완전히 분리된, 자신들과 무관한 역사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멀리서 흘러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이곳이 조상들이 자신들에게 약속한 땅이란 신념만큼 확실한 역사적 동기는 없을 것이다.
'약속된 땅'이라는 그릇된 선입견은 확증편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아메리카 원주민도 사실은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공이 아니라 백인들처럼 어디선가에서 흘러왔다는 논리를 교묘하게 감추어 백인들이 무자비하게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멸절시킨 양심의 가책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바램도 숨어 있는 것이다.
○고고학이 전하는 진실
고고학과 유전자 연구는 남부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1만 5000년을 전후해서 베링해를 넘어 점진적으로 미 대륙으로 퍼져나갔다고 일관되게 증명하는데, 이는 바로 시베리아 기원설이다.
게다가 신대륙으로 넘어간 1만 5000년 전후의 사람들은 이미 구석기시대에 제사, 토기, 예술 등 문명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양 대륙에서 후기구석기시대의 문화적 배경에서 발원한 비슷한 유물들이 나오는 이유다.
하버드대학에서 중국고고학을 전공한 타이완 출신의 장광즈(장광직張光直) 교수는 두 대륙간의 공통점을 모두 샤먼 shaman을 주축으로 하는 제사 중심의 사회라는 차원에서 접근했다.
세계 문명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근동近東 Near East(유럽과 가까운 서아시아 지역)과 인더스 Indus의 문명이 전쟁, 행정, 교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반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신대륙 일대는 제사와 그것을 주관하는 신관, 즉 샤먼이 문명의 주축이 되었다.
구석기시대 이래 종교적 전통이 잘 남아 있는 아시아와 신대륙에서 예술품과 종교에 유사점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를 '아시아-아메리카 샤먼 문화권'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러시아와 미국의 교류가 자유로워지고 정보 교환이 활발해지면서 두 대륙 간의 관계를 증명하는 자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제 미 대륙의 암각화에는 함께 섞어놓으면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시베리아의 암각화와 비슷한 것들이 아주 많다.
또한 마야 문명의 옥기나 조각도 중국이나 바이칼 지역과 비슷한 것들이 아주 많다.
최근 러시아의 학자들은 신석기시대 극동과 캄차카 Kamchatka 지역의 조각상들이 마야와 북미의 조각상들과 비슷하다는 연구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근거가 부족하다.
구석기시대 이후 시기와 비슷한 유물들도 돌출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대륙 간 해상교류는 여전히 초보적이고, 광활한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단편적으로 비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비슷한 유물들이 있다고 해도 시기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다.
다행히 최근에 DNA 분석과 함께 두 대륙 간의 구체적인 문화교류 루트가 밝혀지면서 빙하기 이후에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교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최근까지도 환태평양의 원주민들은 사할린 Sakhalin에서 캄차카반도 Kamchatka Peninsula를 거쳐 알류산열도 Aleutian Islands와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해상 교역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연해주 沿海州와 캄차카반도를 따라 신대륙으로 이어지는 환태평양 문화교류는 두 대륙 사이의 문화교류에 해답을 제공할 여지가 많다.
○연구는 이제 시작이다
아시아의 신대륙의 문화교류 관계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된 초보 단계다.
한동안 미국 고고학계에서는 원주민들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극도의 저항감을 보였다.
미국 주요 도시나 대학의 박물관들은 유럽과 근동의 유물들은 미술관에 전시한 반면, '인디언'이라 부르던 신대륙 원주민의 유물은 자연사박물관에 전시했다.
신대륙의 선사시대 연구는 자기들이 몰아낸 원주민의 역사이기 때문에 백인의 역사와 분리하여 역사학이 아닌 인류학에 소속시킨 것이다.
게다가 신대륙 원주민의 고향인 시베리아와 중국은 냉전 시기 그들과 대립했던 공산주의권의 나라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구가 어려웠다.
다행히도 21세기에 들어서 각 지역의 정보가 풍부해지고 지역 간 장벽이 사라지면서 원거리 교류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지고 있다.
DNA 분석으로 지역 간 교류의 흔적 또한 꽤 구체적으로 추적되고 있다.
대륙간의 문화교류를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유라시아에서 만리장성 북쪽의 흉노 일파가 동유럽까지 가고, 고구려의 기마술이 유라시아 각지로 확산된 것을 떠올려보자.
신대륙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문화를 교류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다만 교류의 구체적인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논증이 필요하다.
해상을 기반으로 한 대륙 간 문화교류의 연구는 이제 막 시작이다.
신대륙은 면적만 한반도의 200배에 달하기 때문에 신대륙의 고대문화 연구는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 국제적인 규모의 연구다.
그러나 신대륙 관련한 주장을 내세우는 연구자들 중 제대로 신대륙의 고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직은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의욕만 앞섰는지 무리하게 몇 가지 언어적 유사성을 주장하는 등 그 신빙성에 의심이 가게 하는 경우도 많다.
전 세계적인 고대문화의 네트워크를 밝힐 수 있는 단초를 어슬프게 엮는 것은 연구에 장애가 된다.
궁극적으로 신대륙이라는 고대문화를 연구함에 있어 '미지未知의 땅'을 '무지無知의 땅'이 되지 않게 하려면 선입견 없는 신중한 연구가 필요하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테라 인코그니타, (주)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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