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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3부 중세 - 7장 로마의 후예들: 비잔티움, 이슬람, 서유럽 6: 7장 결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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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3부 중세 - 7장 로마의 후예들: 비잔티움, 이슬람, 서유럽 6: 7장 결론

새샘 2023. 7. 25. 18:29

814년의 비잔티움, 이슬람, 서유럽의 세력 분포(사진 출처-출처자료1)

 

카롤링거 왕조 Carolingian dynasty 몰락의 비참한 광경은 750년에서 1000년 사이 서유럽에서 이렇다 할 발전이 없었음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인상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비잔티움 Byzantium이나 무슬림 Muslim 세계와 비교할 때 서유럽이 지적·문화적으로 낙후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1000년 무렵이 800년 무렵보다 한층 더 심각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서유럽의 어떤 지배자도 비잔티움 황제나 코르도바 Cordoba의 우마이야 칼리프 Umayyad Caliph의 권력에 필적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도 서유럽은 완제품과 사치품을 수입하고 모피·가죽·노예를 수출하는 등 비잔티움과 이슬람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서유럽 사회는 착실하게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붕괴된 카롤링거 세계의 변두리에서는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으며, 원거리 교역 역시 성장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상인은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에서 활발하게 움직였고, 무슬림 상인은 남부 이탈리아 항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앵글로색슨 Anglo-Saxon 상인은 이탈리아 Italia(영어: Italy), 저지대 지방, 라인란트 Rhineland 등지를 정기적으로 찾았다.

라인란트의 유대인 상인은 무슬림 이집트의 유대인 공동체와 적극적인 교역을 펼쳤고, 바이킹 Viking 상인은 발트해 Baltic Sea에서 러시아 Russia를 거쳐 흑해 Black Sea에 이르는 교역로를 다시 열었고, 노브고로트 Novgorod에서 더블린 Dublin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도시들을 건설하느라 분주했다.

 

서유럽의 경계 역시 확장되고 있었다.

1000년 무렵 서유럽의 경계는 발트해에서 지중해 Mediterranean Sea까지, 피레네 산맥 Pyrenees에서 폴란드 Poland까지 확대되었다.

더욱이 이 광대한 영토 안에 있는 모든 지배자는 그리스도교도이거나 곧 그리스도교도가 될 사람들이었다.

라틴 그리스도교회는 아직은 매우 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교황의 보호 아래 개혁적인 베네딕투스 수도원 Benedictine Abbey들이 새롭게 연합해 한층 더 통합된 중앙집권적 교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이에 대한 것은 제9장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정치적 전망은 그대자 밝지 않았다.

그러나 10세기 서유럽의 혼돈 속에서 바야흐로 영방領邦국가國家(공국公國 또는 왕국王國)Territorial state(왕보다 낮은 지위인 제후가 다스리는 국가로서 현대의 연방국가 체제와 비슷하며, 962년 건국된 신성로마제국을 말함)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중세 초기의 유럽은 비잔티움이나 이슬람 세계만큼 전쟁 준비가 잘 갖추어진 사회는 아니었다.

분명 이것은 유리하기도 하고 불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11세기 이후 서유럽 사회는 군사화했고, 영방국가는 유럽·비잔티움·무슬림 세계 사이에 발생한 세력균형의 변화에서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박상익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상): 문명의 기원에서 종교개혁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2. 구글 관련 자료
 
2023. 7. 2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