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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6: 그리스 의학을 로마 의학으로 계승한 아스클레피아데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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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6: 그리스 의학을 로마 의학으로 계승한 아스클레피아데스

새샘 2023. 7. 28. 23:02

사진 출처-출처자료1

히프크라테스 Hippocrates(서기전 466~377) 시대 이후에도 알렉산드리아 Alexandria로 이어져 꾸준히 발달하던 그리스 의학은 로마가 그리스를 지배하면서 자연스럽게 로마 공화국으로 전해졌다.

로마 귀족들은 의술을 천한 일로 생각했기 때문에 로마에서는 그리스를 포함한 외국 출신 의사들이 환자의 치료를 전담했다.

그런데 로마 사람들이 식민지였던 그리스 문화에 감명받아 로마의 정신세계가 오히려 그리스 사상에 압도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반발한 로마 정치가들은 의도적으로 그리스 문화를 폄하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의학도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은 물론이다.

로마의 지배계급은 그리스 의사들이 오히려 로마인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리스 의학을 위기에서 구해낸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비티니아 출신의 아스클레피아데스 Asclepidades of Bithynia(서기전 124~서기전 40)이다.

 

말솜씨가 뛰어났던 아스클레피아데스는 처음에는 로마에서 수사학자修辭學者(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효과적·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을 닦는 사람)가 되려했다.

당시 로마에서는 법적 분쟁이 생기면 스스로를 변호해야 했다.

그런데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지 못하면 재판에 져서 재산상 큰 피해를 볼 뿐 아니라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

따라서 말을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수사학자들이 매우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했던 시장이라, 아스클레피아데스는 수사학자로 자리를 못 잡고 어려움을 겪다 직업을 의사로 바꾸었다.

당시에는 의사 자격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난 이제부터 의사할 거야" 하면 할 수 있었다.

물론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과 도움이 있었다.

 

의술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는 어떤 전략을 사용했을까?

아스클레피아데스는 한때 수사학자 지망생으로서 단련했던 말솜씨와 해박한 지식을 무기로 삼았다.

그는 로마 귀족들이 모이는 곳을 자주 드나들며 뛰어난 언변과 지식으로 로마 유명인사들은 사로잡았고, 그들을 치료하며 자신의 의술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도록 유도했다.

또한 아스클레피아데스는 기존 의학 이론들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이론을 부각시켰다.

그는 구식 이론으로는 더는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며 히포크라테스만 신봉하는 교조학파에 반대했다.

또한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발히 연구하던 해부학에도 반대했다.

잔인하게 몸을 갈라 몸의 구조를 알아내는 것이 환자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의학자 에라시스트라토스 Erasistratus(서기전 304?~서기전 250?)의 국소병리학 이론을 적극 받아들였다.

국소병리학이란 질병의 원인을 찾으려고 환자의 온몸을 헤매는 방식이 아닌, 환자가 불편함을 호소하는 부위만 국소적으로 빠르게 찾으려 했던 방식을 말한다.

아스클레피아데스는 에라시스트라토스의 국소병리학 이론과 데모크리토스 Democritus(서기전 460?~서기전 370?)의 원자설을 합쳐 자신만의 이론을 완성했다.

인체 장기의 작은 구멍 속을 지나는 원자들의 흐름에 따라 긴장 상태, 이완 상태, 혼합 상태를 재빨리 구분해 간단하게 환자를 치료하는 이론이었다.

그렇다.

아스클레피아데슨느 대표적인 방법학파였다.

 

뛰어난 화술과 사교 능력, 기존 이론들에 대한 공격, 자신만의 쉽고 직관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한 아스클레피아데스 의술은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그는 치료에도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방법을 사용했으며,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자연치유력에 강하게 반대했다.

자연치유력을 이용한 치료란 환자가 죽음을 기다리게 하는 소극적인 방법일 뿐이라고 비난하고, 환자를 고치는 것은 의사이며 기다린다고 질병이 낫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병마와 싸우며 지쳤을 환자들이 얼마나 그의 말에 감동받았을까?

아스클레피아데스는 식이요법, 마사지, 관장, 음악 치료 같은 온견한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할 때에는 공격적인 시술도 마다하지 않았다.

기도가 막혀 숨을 못 쉬는 환자의 아래쪽 기관에 숨구멍을 뚫는 기관 절개술을 시술한 기록도 있다.

 

그가 로마에서 큰 인기를 끈 또 하나의 비결은 환자의 욕구를 가능하면 금지하지 않은 것에 있었다.

남들은 금하는 포도주가 오히려 우선적인 식이요법일 정도였다.

그는 동료 의사들의 조심성 없고 동정심 부족한 모습을 비난했으며, 성별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환자를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필수라고 믿었다.

그의 진료 모토는 '빨리, 안전하게, 다정히게 (시토 투토 유쿤데 Cito tuto jucnnde)(영어: Quickly, safely, happily)'였다.

의사 동료들에게 한없이 엄격하고 환자에게 더없이 친절했던 아스클레피아데스가 의사로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3. 7. 2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