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동주 이용희 "한국 근대회화 백년전에 즈음하여" - 5. 화가 촌평1: 소치 허련, 애춘 신명연, 북산 김수철 본문
이제부터 이번 '한국 근대회화 백년전'에 전시된 그림을 그린 화가들에 대한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소치小癡 허련許鍊(1808~1892)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소치는 완당 김정희의 총애를 받았고 오랫동안 완당이 좋아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때의 기준작은 헌종憲宗(재위 1834~1849)에게 바쳤던 화첩—지금도 광주 지역에 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서울대박물관의 선면산수일 것입니다.
여기 전시된 것은 노필老筆(노련한 글씨)이 많은데 필치가 거칠어져 섬세한 맛이 줄어갑니다.
하여간 소치가 얼마나 완당의 덕을 보았느냐 하는 것은 그의 자서전에 자세히 나와있는데 그 대신 소치는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소치는 완당에게서 청나라 왕잠王岑(1778년 무렵 활동)의 화첩을 받아 공부했습니다.
아직도 소치의 그림 중 고담枯淡하고(글이나 그림 따위의 표현이 꾸밈이 없고 담담한) 담아淡雅한(맑고 아담한) 맛이 있는 것은 인기가 있으며, 중묵中墨(중간 정도의 먹색)을 써서 굵직굵직하게 선획을 친 노년 그림은 맛이 덜합니다.
헌종에게 바친 화첩이라는 것은 헌종이 돌아가신 뒤에 어쩌다가 민간에 나온 것을 소치가 도로 샀다는 것이죠.
지금도 어디엔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소치의 글씨는 추사체고, 또 문인화의 뜻을 따라 한시漢詩를 하고 화제를 부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여기 나온 소치 허련의 열폭 병풍 <매병도梅屛圖>는 대작입니다만 이런 구도의 본이 있습니다.
바로 오원吾園장승업張承業(1843~1897)에게 이런 구도가 있는데 다만 오원의 경우는 화기畵技(그림 그리는 기술)가 뛰어나서 눈에 띄었죠.
애춘靄春 신명연申命衍(1808~1886)은 묵죽墨竹(수묵으로 그린 대나무 그림)으로 유명한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의 둘째 아들이다.
애춘의 형인 소하小霞 신명준申命準(1803~1842)은 아버지를 따라 주로 문기가 있는 전통 정형산수를 치는데 반해 애춘에게는 위 그림 <연꽃>이나 <양귀비>와 같은 요염한 화훼가 많습니다.
그런데 애춘의 아버지 자하 신위는 화객畫客(그림을 그리는 사람) 감상가로 재미있는 분입니다.
완당과는 아주 대조적이라고 할까요.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 선생에게 자주 들은 얘긴인데 완당은 굉장히 까다로운 분으로서 문기 없는 여늬 속장俗匠의 그림은 보지도 않았다는데 비해, 자하는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1813 이후)의 춘의도春意圖(춘화도春畫圖: 남녀 간의 성교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를 즐기고,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 고송유수관古松流水館 이인문李寅文(1745~1824 이후)의 그림도 좋아하고 단원의 유고에 발문跋文(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大綱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도 썼습니다.
시도 잘해서 중국에서 출판도 됐는데 퓽류객다운 면모가 있습니다.
자하의 그림은 보통 남종산수 아니면 대그림이지만, 한편으로 요염한 <사녀도仕女圖>(중국풍 궁중 복식의 여인을 그린 그림)가 남아 있어서 위당 정인보(1892~) 선생이 화제를 써 넣은 것이 내 친구 손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맏아들 소하 신명준은 문인화를 잇고, 둘째 애춘 신명준은 <사녀도> 계통의 궁정취미의 화훼(화초花草: 관상용 식물)를 이은 셈이겠죠.
청나라 궁정화원 그림에는 이런 사실적인 화훼가 유행했는데 그것을 본딴 것이죠.
아마추어들은 이런 울긋불긋하고 예쁜 화훼를 좋아합니다.
남나비(일호一濠 남계우南啓宇)(1811~1888)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점차 눈이 높아지면 달라집니다.
옛날식으로 말씀드리면 이런 그림은 이른바 안방그림입니다.
이 전시장에 나와 있는 애춘의 작은 산수 <강남무진의도江南無盡意圖>는 아주 옛사람인 송나라 조간趙幹(?~?)을 따랐다는 것은 말도 안되고, 청나라 화원의 강남 사라경에 이런 것이 흔하니 아마 그런 것을 본으로 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이 문제입니다.
북산은 신비의 사나이입니다.
그 생애, 경력, 배경을 알 길이 없어요.
본관이 분성盆城(경남 김해의 옛 지명)이라니 김해 김씨라는 말인데, 여러 사람들이 탐색을 해봤지만 아직까지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20세쯤 연상이면서 승지 벼슬을 지낸 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1764~1840 이후)의 그림이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북산과의 관계를 따지는 사람이 있지만 역시 애매해서 무어라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알아보고 따져보려는 이유는 북산의 그림이 당시로는 돌출되면서 시대를 넘는 개성이 보이는 탓입니다.
말하자면 전통성이 존중받던 시대에는 별것이 아니었는데 개성이 새로 가치가 중요기준이 되는 마당에서는 <근대회화백년전> 중에 제일 먼저 꼽게 된느 개성적 화가가 바로 김수철입니다.
'북산의 산수'라고 할까 '변형산수變形山水'라고 할까 하는 그림의 기준작으로 여러 개가 있고, 전시에 나온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는 풍경적이고, <무릉춘색도武陵春色圖>는 오히려 전통적인 면이 강하면서 북산의 특색도 나와 있습니다만 솔이率易의 맛(간단한 구도와 간략담백한 표현 기법)이 덜합니다.
이 전시회에 전시되지 않았으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계산적적도溪山寂寂圖>란 산수도 우수한 작품입니다.
개성미에서 보면 북산의 산수는 국제적 수준의 그림입니다.
하기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북산을 좋아해서 부지런히 사는 통에 우리 조선인들은 북산 그림에서 일본 냄새가 난다고 잘 사지 않으려는 면이 있었습니다.
북산의 화훼 역시 일품입니다.
같은 솔이의 정신과 감각이 그림에 관통하고 있습니다.
산수는 철저하게 준법을, 수법樹法을 아끼고 검푸른 색상으로 음영을, 그리고 태점과 세모꼴의 토파土坡(흙으로 쌓아 올린 둑), 암석을 쓰되 인상이 완결을 회피하는 것 같은 여운을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북산의 그림은 고도로 의도적입니다.
북산의 산수와 화훼에는 유탄柳炭(버드나무를 태워 만든 숯으로 그림 윤곽을 그리는 데 쓴다) 자국이 남은 것이 왕왕 보입니다.
부산 피난 시절에 궁해서 내놓은 중폭의 <홍매도>에는 눈에 띄게 유탄 자국이 있었는데 주미 한국대사관으로 갔으니까 혹시 양유찬 대사의 유장품에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또 위창 선생의 구장이던 소폭의 밤송이, 막 터져서 밤알이 보이는 사실적인 그림이 있었든데 이것도 구도가 의도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컨대 북산이 다듬은 '솔이의 법(솔이지법率易之法)'은 가장 의도적인 것이죠.
여기에 전시된 편폭篇幅(한 폭)짜리 <꽃>도 좋은 작품이다.
북산이 살고 있던 완당 시대에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 정말 놀랄만합니다.
독특합니다.
반면에 개성미가 아닌 전통미를 기준하면 일취逸趣(뛰어나고 색다른 흥취)일 따름이겠죠.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일전집 10'(연암서가, 2018)
2. 구글 관련 자료
2023. 10. 18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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