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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 업어치고 메어치는 가운데 하나가 되다

새샘 2024. 12. 10. 23:16

격투기는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발달해온 가장 원초적이고도 오래된 스포츠다.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을 해소함과 동시에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도록 단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씨름으로 대표되는 우리 무술의 역사를 통해 고대부터 이어져 온 격투기의 역사를 살펴보다.

 

 

○무용총 벽화 <각저도>에서 만나는 고구려 씨름의 흔적

 

오늘날 레슬링 wrestling은 두 명의 선수가 맨손으로 맞붙어 상대의 두 어깨를 1초 동안 바닥에 닿게 하여 승부를 겨루는 격투기의 한 종류로 정의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레슬링을 별개의 격투 종목으로 지칭한다기보다 별다른 장비 없이 인간의 육체적인 힘만으로 승부를 겨루는 인류 태초의 격투기 전반을 레슬링으로 통칭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유라시아 초원 일대에서는 격투기가 널리 성행했다.

구석기시대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라시아 일대의 암각화에서는 주먹으로 겨루기를 하는 전사들의 모습이 흔히 보인다.

레슬링 하는 인류의 모습은 전 세계 곳곳에 비슷한 형태로 남아 있다.

가령 성경에서 야곱(영어 Jacob 또는 James)은 천사와 씨름을 해서 '이스라엘 Israel'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호메로스 Homeros(영어 Homer)의 서사시 <일리아드 Iliad>에는 아킬레스 Achilles의 장례를 지내면서 사람들이 씨름 경기를 벌이는 장면이 묘사된다.

정확히 어디에서 기원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맨몸으로 겨루기'는 인류 태초의 놀이였다.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 '각저도'(출처-출처자료1)

 

한국의 씨름도 레슬링의 일종이다.

2018년, 남북한이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공동으로 등재할 때 공식적으로 채택한 영문 명칭이 'Korean wrestling(한국 레슬링)'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묘사된 씨름 장면을 통해 추정하건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씨름 기술이 발달했다.

요즘의 씨름 방법처럼 서로의 허리춤을 잡고 있는 모습(각저角觝/角抵), 일본의 스모 すもう(상박相撲)나 몽골 Mongolia의 씨름처럼 서로 떨어져서 겨루는 모습(수박手搏) 등이 고루 관찰된다.

 

고구려시대에 씨름은 국제적으로 치러지기도 했다.

중국 지린(길림吉林)성 지안(집안集安)시에 있는 고구려시대 무덤인 무용총舞踊塚의 <각저도角觝圖>에는 고구려인과 서역에서 온 호인胡人(오랑캐 즉 이민족)들이 결투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국제 타이틀 매치 title match에는 심지어 심판도 있었다.

경기가 치러지는 장소도 주목할 만하다.

경기 중인 사람들의 왼쪽에는 신령하고 상서로운 기운을 드러내는 나무 한 그루(위 <각저도>의 위 그림)가 우뚝 서 있다.

 

 

레슬링 하는 모습이 새겨진 고대 그리스의 주화(출처-출처자료1)

 

무용총의 <각저도>에 묘사된 고구려의 씨름은 흉노와 같은 유목 민족의 풍습과 관련이 있다.

서기전 2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흉노의 허리띠에는 씨름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각저도>에 그려진 것과 비슷한 형태의 나무 밑에서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유목 민족들은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신목神木 근처에서 하늘에 올리는 제사와 각종 의식을 치렀다.

이 의식의 하이라이트 highlight는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벌이는 씨름 경기였다.

다양한 출신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국제 시합'을 겨루는 동안 각국의 다양한 씨름 기술이 전해졌다.

흉노의 허리띠에는 상대방이 한쪽 무릎을 잡고 들어 올리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 주화에 새겨진 레슬링 모습과 닮았다.

심지어 이 기술은 오늘날 한국 씨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기술이다.

이는 수천 년 전부터 동서양이 서로 교류했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씨름하는 장면이 새겨진 흉노의 허리띠는 중국 한나라의 수도인 장안长安/長安에 왔다가 객사하는 바람에 중국 본토에 묻힌 흉노 사신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이다.

유목 민족에세 허리띠는 자신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액세서리 accessory였다.
당시 흉노의 사신은 젊은 시절 씨름 대회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허리띠를 둘러매고 중국으로 왔을 것이다.

사람들은 객지에서 죽은 그를 안장하며 그의 시신 위에 유품인 허리띠를 둘러주었을 것이다.

 

지금도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는 씨름이 말타기, 활쏘기와 더불어 인기가 높은 스포츠 종목으로 손꼽힌다.

언제가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했던 유목 전사들은 말에서 내려 잠시 쉴 때면 샅바를 잡고 뒹굴며 여흥을 즐기는 동시에 체력도 증진하고 전사로서의 역량도 키웠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남겨진 씨름 그림은 유목 전사들의 기술을 전수받아 강력한 군사력을 키워나갔던 고구려의 모습이 담겨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씨름, 엔터테인먼트로 변화하다

 

중국 전국시대 호인들이 씨름상(출처-출처자료1)

 

유목 전사들의 놀이였던 씨름이 귀족들의 오락거리(엔터테인먼트 entertainment)로 바뀐 시기는 중국 한나라 때다.

북방의 흉노를 꺾은 중국은 유목 전사들의 스포츠를 궁중의 오락거리로 만들었다.

중국 황실은 주변국 사신들이 방문하면 보란 듯이 씨름을 공연했다.

한반도에도 전해진 '수박희' 또는 '각저희'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료에는 136년에 부여 왕이 한나라를 방문하여 씨름을 함께 봤다는 내용이 있다(≪후한서≫ <동이열전>).

한나라 황제는 부여 왕 앞에서 유목 민족 출신인 선수들이 씨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국력을 과시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진 김치 원조 논쟁처럼 한중일 삼국 간에도 격투기의 원조가 누구냐를 두고 날카로운 경쟁이 벌어지곤 한다.

중국은 한나라 궁중에서 벌인 수박희를 근거로, 한국과 일본은 각각 태권도와 가라테를 두고 서로가 동양 격투기의 원조국가라고 다툰다.

하지만 맨몸으로 승부를 겨루는 형태의 격투기는 누가 원조랄 것도 없다.

전 세계 각지에서 인류의 시작과 함께 모두가 즐기던 원초적인 스포츠였으며, 특히 북방 유목 민족 사이에서 널리 발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중일 삼국이 누가 동양 격투기의 원조인지 논쟁하는 일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맨몸으로 겨루는 격투기는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전쟁을 방지하는 기능도 한다.

여기에서 잠시 시선을 서양으로 옮겨보자.

같은 시기 그리스 Greece에서 시작한 격투기는 로마 Roma(영어 Rome)에도 널리 퍼져 유행하게 된다.

전차 몰기, 권투(복싱 boxing), 검투, 판크라티온pancration(고대 올림픽 Olympic에서 맨손으로 하던 격투기의 일종으로 레슬링과 복싱이 혼합된 경기) 등이 그것이다.

고대 서양의 격투 경기는 목숨을 걸고 벌이는 잔인한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진 격투 경기는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오락이었다.

놀이로 승화된 격투 경기를 통해 당시 동아시아인들은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을 해소했다.

 

 

○맨몸 격투기에 숨은 인류의 지혜

 

맨몸으로 하는 격투기가 인명 사상을 줄인다는 사실은 최근의 역사적 사례로도 확인된다.

1960년대 중국과 소련 양국은 국경지역 영유권을 두고 우수리 강 Ussuri River의 다만스키 섬[중국에서는 전바오 섬(진보도珍宝岛/珍寶島)]에서 큰 분쟁을 겪었다.

이때 양국은 화력 동원은 자제하면서 주먹만 사용한 싸움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덩치 좋은 군인들을 내세웠다가 나중에 육박전이 격해지자 다른 부대에서 권투나 무술 경력이 있는 선수를 데려와 투입했을 정도다.

하지만 끝내 육박전으로 해결이 되지 않자 양국은 화력을 사용하긴 한다.

그 결과, 양국 도합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수준에서 분쟁이 마무리된다.

어떠한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백번 옳지만, 애초부터 화력을 사용했더라면 피해 수준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선사시대 이래로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해왔다.

한 연구에 따르면서 선사시대 사회의 90퍼센트에서 폭력 분쟁이 있었으며 적어도 2년에 한 번꼴로 실제 분쟁을 겪었다고 한다.

폭력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 내면에 내재된 본능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폭력성을 아무 때난 드러냈다면 인간은 이미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맨몸으로 하는 격투기는 선사시대 이래로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적절한 방식으로 표출하면서 재미있는 의식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무용총의 <각저도>에 그려진 고구려인과 서역에서 온 호인의 결투 장면은 새롭게 다가온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타인에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이 두려움이 커지면 적개심이 되기도 한다.

고구려인들이 즐겼던 씨름은 이방인에 댓한 적개심을 격투 경기를 통해 해소하는 방편이었으리라.

또한, 경기가 열리는 장을 카타르시스 catharsis(정淨化)를 느끼는 축제의 장으로 만듦으로써 모두가 하나로 화합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세상 모든 것의 기원, 흐름출판, 2023.
2. 구글 관련 자료

 

2024. 12. 1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