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천연두와 천연두접종 그리고 우두접종 본문

글과 그림

천연두와 천연두접종 그리고 우두접종

새샘 2024. 12. 13. 22:07

천연두
 

천연두바이러스의 투과전자현미경(TEM) 사진(출처-https://agroavances.com/noticias-detalle.php?idNot=138)

 

천연두天然痘 smallpox는 역사가 긴 병이다.
과거에는 천연두를 두창痘瘡 또는 마마媽媽라 불렀고, 외국에서는 뾰루지를 뜻하는 '바리올라 variola' 또는 '스몰폭스 smallpox'라 불렀다.
천연두에 걸린 환자들은 처음에 발열과 몸살 증상을 호소하다 서서히 몸에 나타나는 발진을 발견하게 된다.
발진은 점점 튀어올라 혹처럼 변하고 상황이 악화되면 높은 확률로 환자가 사망한다.
죽을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면 피부의 작은 혹이 고름 주머니로 변했다가 딱지가 된다.
이쯤 되면 일단 큰 위기는 넘긴 셈인데, 대신 얼굴에 흉한 곰보 자국이 남는다.
서기전 1145년 사망한 이집트 Egypt 파라오 람세스 5세 Pharaoh Ramses V의 미이라 얼굴에도 천연두 흉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천연두라는 병은 고대부터 인간과 함께 한 질병이었다.
 
스페인 탐험가 에르난 코르테스 Hernán Cortés는 1519년 600명의 군인과 함께 남아메리카 아스텍 제국 Aztec Empire을 침략했다.
처음에 그를 신으로 착각한 아즈텍인들의 오해 때문에 코르테스의 침략 전쟁은 수월해 보였으나, 그의 야욕을 눈치챈 아즈텍인들의 반격으로 그는 곧바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때 코르테스를 구한 것이 천연두였다.
몇 개월에 걸쳐 원주민만 골라 공격한 천연두 때문에 아즈텍인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고, 총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는 바람에 승리가 코르테스에게 돌아갔다.
1531년 또 다른 스페인 탐험가 프란시스코 피사로 Francisco Pizarro가 얼마 안 되는 군사로 잉카 제국을 Inca Empire을 침략했을 때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1518년부터 1531년 사이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3분의 1이 천연두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서양인들은 갖고 있던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을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을까?
그것은 천연두 같은 질병의 유래가 대부분 가축이기 때문이다.
천연두바이러스 smallpox virus는 원래 소에 존재했던 우두牛痘바이러스 cowpox virus가 인간에게 전염되면서 변이한 것이었다.
소를 키웠던 유럽 대륙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소와 접촉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것을 극복하면서 면역력을 얻었다.
하지만 빙하기 이후 대부분의 가축이 멸종당했던 아메리카 대륙 사람들은 칠면조나 라마 llama 외에 다른 가축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을 키울 수 없었다.
 
 

천연두접종

 
천연두는 무섭고 끔찍한 전염병이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낳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피부에도 흉측한 곰보 자국을 남겼다.
긴 역사를 통해 인류는 천연두에 대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천연두에 한 번 걸린 사람은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천연두를 가볍게 앓고 넘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섰다.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 끝에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린 환자의 분비물을 상온에 장시간 말려 보관하면 독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만든 약해진 천연두 분비물을 피부 상처에 주입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인간의 천연두 접종법이었기 때문에 '천연두접종(마마접종, 인두법人痘法) variolation'이라 불렀다.
 
 

영국 리치필드 대성당에 세운 메리 몬테구 부인 기념관(출처-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Lady_Mary_Wortley_Montagu)

 
외교관 남편을 따라 튀르키예 Türkiye(영어 Turkey)로 온 메리 몬태규 부인 Lady Mary Wortley Montagu(1689~1762)은 매우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데 이어 그녀도 천연두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겨우 살아남았으나 얼굴에 수많은 천연두의 흔적이 남았다.
그래도 몬태규 부인은 여전히 지혜로운 여성이었고, 그녀는 천연두로부터 자식들을 보호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그녀는 천연두접종을 활발하게 시행하던 터키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은 성공적인 천연두접종을 받을 수 있었다.
 
영국으로 돌아온 몬태규 부인은 천연두접종을 고국에 전파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위험하다고 여긴 의사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던 차에 영국에 천연두가 발생하자 마음이 급해진 몬태규 보인은 딸에게도 천연두접종을 시행해 딸 또한 문제없이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갖게 되었다.

천연두접종의 효과를 확신한 그녀는 1721년 영국 왕실에 인체 실험을 제안했다.

영국 왕실은 사면을 원하는 죄수들을 대상으로 천연두접종 임상시험을 실시했고,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실험에 자발적으로 참가한 6명의 죄수가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얻고 약속대로 감옥에서 풀려났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성공을 거두자 왕실은 고아원 유아들을 대상으로 두 번째 임상시험을 실시해 마찬가지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왕실은 1722년부터 천연두접종을 시행해 곧 영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당시 사용한 방법은 튀르키예의 민간요법대로 천연두 고름을 묻힌 실을 균이 약해지도록 말려놓았다가 접종받는 사람의 피부를 수술용 칼로 상처를 낸 뒤 그 부위에 말린 실을 밀어넣고 붕대로 감는 식이었다.
하지만 천연두접종의 문제가 곧 드러났다.
천연두 분비물을 오랫동안 말렸어도 독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천연두접종을 한 뒤 천연두를 심하게 앓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우두접종

 

소년 핍스의 팔에 첫 번째 우두접종을 하는 제너(영국 작가 어니스트 보드 작품)(출처-https://www.krict.re.kr/bbs/BBSMSTR_000000000732/view.do;jsessionid=A78E7480B556626CE20FD9E51ADC0A6B?nttId=B000000100056Rn2mE2&mno=sub06_03_03_03)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1749~1823)는 어린 시절 천연두접종을 하고 거의 죽을 뻔한 기억이 있었다.
그 기억은 그를 평생 따라다녔고, 제너는 천연두접종에 대한 공포감,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당시 천연두접종 후 사망률은 대략 1/50이었다.
상당히 높은 사망률이었지만 천연두의 사망률은 그보다 훨씬 더 높아 사람들은 두려움에 뗠면서도 어쩔 수 없이 천연두접종을 받아야 했다.

 
1796년 어느 날, 제너는 근처 농장에서 암소의 젖 부위에 천연두와 비슷한 유행병이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병의 소의 천연두인 '우두牛痘 cowpox'로 불렸는데, 몇몇 사람들 사이에 우두에 걸리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제너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병원에서 천연두접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두에 걸렸던 사람은 천연두접종 후 아무런 염증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몇십 년 전에 우두에 걸렸던 사람도 그랬다.
"소문처럼 우두를 앓으면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는 것일까?"
제너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해보기로 했다.

1796년 5월 14일, 제너는 자신을 돕고 있던 한 노동자의 8살짜리 아들 제임스 핍스 James Phipps에게 최초의 우두접종을 시도했다.

제너는 소년의 팔을 잡고 피부 몇 군데를 살짝 절개한 다음 우두에 걸린 여성의 피부 딱지 부스러기를 집어넣고 붕대로 감았다.
몇 주가 지난 뒤 제너는 소년에게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소년의 팔에 주입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의료 윤리를 엄청나게 위반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소년은 무사했다.
 
우두접종의 효과를 확인한 제너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편지로 써서 왕립협회에 보냈다.
하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제너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포함한 23명에게 우두를 추가로 접종해 우두접종이 천연두를 예방한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1798년 제너는 ≪우두의 원인과 작용에 관한 연구≫라는 78쪽의 얇은 책에 자신의 주장을 담아냈다.

 
상당 기간 우두접종과 천연두접종이 동시에 사용되었으나 영국 정부는 1840년부터 위험 부담이 큰 천연두접종을 금지하고 우두접종만을 사용하기로 했다.
제너의 백신 연구는 이론적인 배경 없이 경험적인 시도를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굉장이 운히 좋은 경우였다.
천연두바이러스에 비해 크게 해롭지 않으면서 예방 효과를 주는 우두바이러스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천연두 환자는 점점 줄어 인류의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1978년 어느 날, 영국 버밍엄대학교 University of Birmingham 영상 전문가 재닛 파커 Janet Parker는 심한 두통을 느꼈다.
집에서 쉬어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았고, 고열이 나면서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게다가 온몸이 고름 딱지로 범벅이 되었다.
천연두였다!
그녀는 환기구를 통해 들어온 천연두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아래층에는 헨리 베드슨 Henry Bedson이라는 학자가 연구용을 남겨둔 천연두바이러스를 이용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가 며칠 전 급하게 실험하다가 천연두바이러스 표본이 든 병을 깨뜨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행히 없었다.
하지만 그의 실수로 위층에 살던 재닛 파커가 2주를 못 버티고 사망했다.
천연두 감염으로 인한 마지막 사망자였다.
그렇지만 천연두로 인한 마지막 사망자는 따로 있었다.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헨리 베드슨의 시체가 나중에 발견되었다.

1980년 5월 8일, WHO는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박멸되었음을 선포했다.

전무후무한 전염병 박멸 사례였다.
천연두가 인간에게만 전염되는 바이러스였기 때문에 이런 의학적 성공이 가능했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4. 12. 1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