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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오봉도

새샘 2025. 1. 19. 20:26

"산처럼 위엄이 높고, 해와 달처럼 세상을 비추소서'

 

일월오봉도 삽병, 19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전체 190x150cm, 그림 149.0x126.7cm, 국립고궁박물관(출처-출처자료1)

 

조선시대를 우리는 양반 사회로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문화를 주도한 계층은 양반이었다.

그러나 사회구조로 보면 양반 위로는 왕실이, 아래로는 서민이 있었고, 왕실과 서민은 양반문화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미감의 문화를 나타냈다.

단적인 예로 건축에서 궁궐, 양반 가옥, 민가의 차이 같은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문화는 양반문화와 함께 왕실문화, 서민문화를 아울러야 전모를 이해할 수 있다.

왕실문화는 궁중미술에, 서민문화는 민화와 민예품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왕실문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시대 문화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선시대에도 왕실문화에는 어떤 식으로든 양반문화와는 구별되는 권위가 구현되어 있었다.

건축, 공예, 회화 등에서 형식, 소재, 크기, 색깔 등에 차별이 있었고 가장 좋은 재료와 높은 기술이 동원됐다.

따라서 궁궐 건축, 왕릉, 궁중 장식화, 궁중 기록화, 궁중 목가구, 궁중 공예품, 궁중 의상 등은 조선왕조 문화 역량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회화의 경우 궁중 장식화는 일반 감상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높은 예술 세계를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이다.

현행 1만 원권 지폐에 세종대왕 초상의 배경으로 들어 있는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왕의 상징이었다.

임금의 내실도 장식하고, 의궤에서 옥외행사 때 왕의 자리를 상징하는 표시로 쓰였다.

심지어는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의 제작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점검할 때도 가리개로 만든 일월오봉도 삽병揷屛에 어진을 정중히 모셔놓고 검토하였다.

삽병이란 그림이나 서예, 조각품을 나무틀에 끼워서 세운 것을 말하는데,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실내 장식용 가구에 속한다.

따라서 일월오봉도 삽병은 상단의 도르래에 임금의 초상을 걸어놓고 감상할 수 있도록 배경 그림과 틀을 겸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복궁 근정전을 비롯한 각 궁궐 정전의 어좌 뒤에는 일월오봉도 병풍이 지금도 설치되어 있다.

 

 

일월오봉도, 8곡 병풍, 19세기 말, 비단에 채색, 162.6x337.3cm, 리움미술관(출처-출처자료1)

 

일월오봉도에는 해와 달, 산봉우리 다섯 개, 넘실거리는 파도, 폭포 한 쌍 그리고 소나무 한 쌍이 좌우 대칭으로 그려져 있다.

화면을 압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늠름한 오봉五峰과 아름다운 소나무이다.

한 나라의 이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군주가 군림하는 곳이 저런 곳이고 국정이 저렇게 안정되어 있다면 든든하지 않겠는가.

화면의 구성이 아주 정중하여 임금의 권위를 남김없이 뒷받침해주는데, 채색도 담담한 수묵담채가 아니라 광물성 재료의 진채眞彩(농채濃彩: 진하고 강하게 쓰는 채색)를 사용하여 화사한 분위기가 감돈다.

여기에서는 나라의 태평성대가 느껴진다.

 

"하늘이 당신을 보호하고 안정시키사

매우 굳건히 하셨네

높은 산과도 같고 큰 땅덩이 같으며

강물이 흐르듯

달이 점점 차오르듯

해가 떠오르듯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

소나무의 무성함과 같이

당신의 후계에 끊임이 없으리"

 

일월오봉도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왕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문화권인 중국, 일본, 베트남에는 현재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일월오봉도는 조선왕조의 독창적 창안이라 할 수 있다.

성리학을 이데올로기 Ideologie(관념형태: 사회 집단에 있어서 사상, 행동, 생활 방법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관념이나 신조의 체계)로 조선을 건국하고 유교의 경전인 ≪주례周禮≫에 기초하여 경복궁을 세웠듯이 ≪시경詩經≫에 입각하여 이와 같이 아름답고 장엄한 일월오봉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월오봉도는 궁중의 장식화로 끊임없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국초부터 제작된 오래된 일월오봉도는 전하지 않고 왕조의 마지막에 장식되었던 19세기의 것만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여 현재는 약 20폭 정도만이 전하고 있다.

 

현대미술에서는 예술가의 개성이 절대적 평가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근대 이전에는 꼭 화가의 개성이 드러나야 명화인 것은 아니다.

집체적集體的 창작품(여러 사람들의 힘, 지혜, 동작, 개념 따위를 하나로 뭉쳐서 만든 작품)의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월오봉도는 조선왕조가 창안하여 당대 으뜸가는 도화서 화원들이 최대의 회화적 역량을 발현한 명화 중의 명화이며, 국보 중의 국보라 할 수 있다.

이런 왕실문화를 우리는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 온 면이 없지 않다.

이제는 조선시대 문화에 대하여 왕실문화, 양반문화, 서민문화 모두를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

 

※출처
1. 유홍준 지음, '명작 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주)눌와, 2013
2. 국가유산청, 문화재 기고 '임금 초상 걸었던 일월오봉도 삽병', 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fmDQicHKGh1WjQdAUUa7ZbHx64RVmxCkSUcMT4AGlCS4hRDXMdr6qkLZ4chqDOAK.new-was_servlet_engine1?nttId=60619&bbsId=BBSMSTR_1214&pageUnit=10&searchCnd=&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mn=NS_01_24&searchSit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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