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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5부 근대 초 유럽 - 17장 계몽주의 5: 급진적 계몽주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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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5부 근대 초 유럽 - 17장 계몽주의 5: 급진적 계몽주의

새샘 2025. 6. 6. 15:10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주요 저작들
    볼테르 ≪철학 서간≫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디드로 ≪백과전서≫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에밀≫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애덤 스미스 ≪국부론
    레이날 ≪두 인도에서의 유럽인의 식민지 및 통상의 철학적·정치적 역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의 권리에 대한 옹호
             1734년
             1748
       1751~1772

             1762년

             1762

             1764

             1776
             1770년
             1792년

 

 

계몽주의는 얼마나 혁명적이었는가?

계몽주의적 사고는 18세기 문화와 정치의 중심 교의敎義(교육의 근본 취지)를 약화시켰다.

계몽주의적 사고는 소규모 지식인 집단을 훨씬 넘어서는 광범위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계몽 사상가들은 단일한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는 가장 급진적인 사람들조차 자신의 사고가 함축하고 있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장 자크 루소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그러한 급진 사상가의 훌륭한 본보기였다.

 

 

○루소의 세계

 

장 자크 루소(출처-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E%A5%EC%9E%90%ED%81%AC%20%EB%A3%A8%EC%86%8C)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1712~1778)는 다른 계몽 철학자들과 논쟁을 일삼았고 그들의 수많은 가설을 반박했던 '국외자局外者'였다.

그는 계몽 철학자들과 더불어 지적·정치적 자유의 추구를 공유했으며 세습적인 특권을 공격했고 인간의 선함과 정의로운 사회 창조의 가능성을 믿었다.

하지만 그는 계몽주의적 사고에 다른 기풍을 소개했다.

이 기풍은 특히 도덕성과 당시에는 '감각' 또는 '감정의 숭배'라고 부른 것이었다.

그는 동시대의 계몽 철학자들보다 상당히 급진적이었으며, 인민 주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확실히 최고의 유토피아 Utopia(이상향理想鄕) 작가였다.

그가 유토피아 작가였다는 사실은 당대에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끌게 만들었고, 그 작품이 출간된 이래로 많은 상이한 해석이 나오게 만들었다.

18세기 말 그는 계몽 철학자 가운데서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자주 인용되었으며, 계몽주의를 더 많은 청중에게 다가가게 만든 사상가였다.

 

루소의 획기적이면서도 난해한 정치학 논저인 ≪사회계약론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영어 The Social Contract & Discourses)≫(1762)은 지금은 유명해진 다음과 같은 역설로 시작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

인간은 어떻게 이 사슬들을 거리낌 없이 만들어냈는가?

이러한 질문을 하려면 17세기와 18세기 사고의 기본적인 질문들을 명확하게 해야만 했다.

정부는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정부의 권능을 정당한 것인가?

루소는 계속해서 의문을 품었다.

만약 그것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면 정부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 수 있었는가?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했다(여성, 남성, 그리고 자연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사유재산에 뿌리를 둔 사회적 불평등은 '사회계약'이나 정부 구조를 상당히 부패시켰다.

불평등한 상황에서 정부와 법은 부자와 특권층만을 대표했다.

그것들은 억압과 노예화의 도구가 되었다.

루소는 정당한 정부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한 가지 결합의 형태를 발견하는 것이다.······즉, 그 속에서 각자 모두와 자신을 연합시키면서 홀로도 따를 수 있고 전처럼 자유롭게 남아 있을 수 있는 결합의 형태 말이다."

자유란 제약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평등한 시민이 스스로 만든 법을 지키는 것을 뜻했다.

루소는 어떠한 사회적 평준화도 거의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가 말한 '평등'이란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살 수 있을 만큼 부유하거나 자기 자신을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하지도 않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루소는 정당한 권한은 인민으로부터만 나온다고 믿었다.

그의 논거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주권은 (몽테스키외가 제창한 것처럼) 정부의 상이한 부문 사이에 나누어져서는 안 되고 주권은 절대로 왕이 찬탈할 수도 없는 것이다.

17세기에 영국의 존 로크 John Locke(1632~1704)는 폭정을 일삼는 왕에 대항해 반항하는 것이 인민의 권리임을 강조했다.

루소는 첫째, 국왕은 애초부터 결코 주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인민 스스로가 입법자, 행정관, 판사로서 다 함께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국가를 변모시킨다는 것이다.

루소는 개별 시민이 '정치체 body politic'를 형성했을 때 그것은 단지 부분들의 합 이상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쇄신된 한층 더 막강한 국가에 대한 매력적인 이미지를 제공했다.

그 국가에서 시민은 강압적인 법보다 상호 책무로 결속되고 특권으로 분열되고 약화되기보다 평등으로 하나가 된다.

셋째, 국가 공동체는 루소가 '일반 의지'라고 부른 것으로 결합된다.

이 용어는 어렵기로 유명하다.

루소는 이 용어를 특정 개인의 요구를 초월하는 공동의 이익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했다.

일반 의지는 평등을 선호할 것이며 따라서 평등을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윈칙적으로 평등은 최소한 전체를 대표하게 될 시민의 공통적 이해관계를 보장해준다.

 

루소가 일반 의지를 강조하면서 사적인 이해관계와 균형을 맞추는 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정치이론가들은 그를 권위주의적이고 위압적이며 도덕주의적인 인물로 생각하기도 했다.

다른 정치이론가들은 일반 의지를 루소가 가진 유토피아 사상의 한 가지 표현으로 해석한다.

18세기에 ≪사회계약론≫은 루소의 저작 가운데서 가장 적게 이해되었다.

하지만 ≪사회계약론≫은 영향력 있는 급진적인 논거를 제공했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프랑스 혁명 기간 중에 광범위하게 인용되었던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이미지와 문구를 담고 있었다.

 

루소는 교육과 도덕적 덕성에 관한 저술로 더 유명했다.

널리 읽혔던 그의 소설 ≪에밀 Émile, ou De l'éducation(영어 Emile, or On Education)≫(1762)은 기존의 학교가 아닌 자연의 학교에서 덕성과 도덕적 자율을 배우는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루소는 다른 계몽 철학자들이 이성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첫 번째 충격이 항상 옳다"고 주장했다.

어린이는 인생에서 너무 일찍 논리적으로 생각하도록 강요되어서는 안 되었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도록 가르쳐주는" 책들이 사춘기가 될 때까지 배움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따라서 에밀의 가정교사는 자연과 자연의 단순한 가르침을 가르치고 에밀의 양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립심을 계발시키면서 숲을 거닐게 했다.

"가장 절대적인 자유 속에서 양육된다면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예종隷從(노예처럼 예속하여 복종함)이다."

 

그러한 교육은 남성에게 도덕적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를 훌륭한 시민으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루소는 여성은 매우 다른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모든 교육은 남성과 관련되어야만 한다. 여성의 교육은 남성을 즐겁게 하고, 남성에게 유용한 것이고, 남성이 어릴 때는 그를 양육하고 나이가 들면 그를 돌보며, 남성에게 조언을 하고, 그를 위로하며, 남성의 삶을 즐겁고 기분 좋게 만드는 것과 관련되어야 하며, 이것은 태초부터 여성의 의무였다."

여성은 어머니와 아내로서 사회적으로 쓸모 있게 되어야 했다.

루소는 ≪에밀≫에서 에밀의 신붓감인 소피를 위해 꼭 그러한 교육만 설계했다.

루소는 때때로 여성이 다음과 같이 '천성적으로' 그러한 역할을 찾는 것으로 확신한 듯 보였다.

"여성의 타고난 자연 상태는 의존이며, 소녀는 자신이 말을 잘 듣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때에는 소녀가 훈육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타고난' 악습을 근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본성에 대한 루소의 이러한 모순된 관점은 계몽사상의 중심적 개념인 '자연'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계몽 사상가들은 자연을 사회의 결점을 측정하기 위한 것과는 상반된 척도로 이용했다.

'자연적'인 것은 더 좋고 더 단순하며 타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면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은 물리적 세계에 적용시킬 수 있었다.

자연은 원시 사회에 적용시킬 수도 있었다.

자연은 종종 유용한 발명이기도 했다.

 

루소의 소설들은 이례적으로 특히 여성에게 잘 팔렸다.

≪에밀≫의 출간 직후에 출판된 ≪줄리 Julie—'신新 엘로이즈(la nouvelle Héloïse)(영어 The New Heloise'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는 30년 동안 70판을 거듭했다.

≪줄리≫는 한 남성과 사랑에 빠졌으나 다른 남성과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른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소설의 구성상 많은 고생과 뜻밖의 사건들이 있은 이후에 그녀는 마지막에 가서 차가운 호수에 빠진 어린 자녀들을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줄리의 죽음은 가정적이면서도 모성애적인 덕성의 완벽한 사례였다.

루소의 동료 계몽 철학자 중 한 사람은 이 이야기를 "아주 우스꽝스러운 역겨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중에게 호소력을 지녔던 것은 사랑 이야기, 비극, 그리고 인간이란 머리만큼이나 가슴의 지배를 받으며 이성보다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루소의 확신이었다.

루소의 소설들은 중간계급과 귀족 사회에서 '상시빌리테 sensibilité(영어 sensitivity)(느낌)'에 대한 광범위한 예찬의 대상이 되었다.

상시빌리테에 대한 예찬이란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강조하고 감정이야말로 인간성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루소의 작품이 지닌 이러한 측면은 주제 면에서 상당 부분 계몽주의의 이성 숭배와 모순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19세기 낭만주의의 관심사와 한층 더 밀접하게 관련된다.

 

루소의 사상은 성性 gender에 관한 계몽주의의 관점에 어떻게 들어맞는가?

앞서 본 대로 계몽 사상가들은 교육을 인간 진보를 위한 해결책으로 간주했다.

많은 사람들은 여성이 특히 어머니, 가정교사, 교사 등으로서 자녀의 양육과 가르침을 담당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교육이 취약함에 대해 개탄했다.

하지만 소녀는 어떤 종류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여기에서 계몽 사상가들은 자연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했으며 자연이나 성별의 특성을 논하면서 철학·역사·문학·의학 따위의 분야에서 많은 논문과 책을 펴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가?

그러한 차이는 태생적인 것인가 아니면 관습과 전통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 Alexander von Humboldt(1769~1859)와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1713~1784)는 성별의 본질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들은 논문에서 아메리카 대륙, 남태평양, 중국 따위의 원주민 가족 구조에 대한 과학적 탐사 보고서를 제시했다.

또한 애덤 스미스 Adam Smith(1723~1790)는 문명사를 서술하면서 역사의 여러 상이한 단계에서의 가족과 성의 역할에 관해 논평했다.

몽테스키외 Montesquieu(1689~1755)의 ≪법의 정신≫은 정부의 상이한 단계가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분석을 포함했다.

루소가 그랬던 것처럼 이 주제에 대해 숙고하는 것은 계몽주의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일부 계몽 사상가들은 루소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많은 계몽 사상가 중에서 디드로, 볼테르, 그리고 독일 사상가 테오도르 폰 히펠 Theodor Gottlieb von Hippel(1741~1796)은 여성에 대한 법적 제약을 유감으로 생각했다.
여성의 교육에 대한 루소의 처방은 특히 날카로운 비판을 받았다.

영국인 작가이자 역사가인 캐서린 매콜리 Catharine Macaulay(1731~1791)는 그의 논점을 반박했다.

마르키 드 콩도르세 Marquis de Condorcet(1743~1794)는 프랑스 혁명 전야에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의 약속은 여성이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완성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콩도르세는 사실상 여성에게 정치적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세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출처-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B%A9%94%EB%A6%AC_%EC%9A%B8%EC%8A%A4%ED%84%B4%ED%81%AC%EB%9E%98%ED%94%84%ED%8A%B8)

 

루소에게 가장 신랄한 비판을 가한 사람은 영국인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1759~1797)였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프랑스 혁명 동안인 1792년에 그녀의 가장 유명한 저서 ≪여성의 권리에 대한 옹호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출간했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은 계몽주의적 논쟁에 고정되었고, 이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루소의 정치관을 공유했고 그의 저작과 영향력을 칭송했다.
루소와 아메리카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던 미국의 토머스 페인 Thomas Paine(1737~1809)처럼 울스턴크래프트도 공화주의자였다.

그녀는 군주정은 "문명의 진보를 망치고 이해를 왜곡시키는 해롭기 짝이 없는 제위帝位"라고 언급했다.
그녀는 심지어 루소보다 더 맹렬하게 불평등과 신분, 출생 또는 부에 따른 인위적인 구분에 반대하는 말을 쏟아냈다.

그녀는 평등이야말로 덕성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믿으면서, 고전적인 계몽주의적 언어로 사회가 '인간 본성의 완벽함과 행복의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여느 계몽 사상가보다 더 맹렬하게 여성은 남성과 똑같이 논리적 사고와 자치를 위한 타고난 능력을 지녔고, '덕성'은 남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을 뜻해야 하며, 남녀 관계는 평등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그녀의 동시대인 중 거의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했다.

그녀는 군주정과 불평등에 대한 급진적 계몽주의의 비판을 가정에 적용했다.

혼인법상의 법적 불평등, 그중에서도 기혼 여성의 재산권을 박탈하는 법은 남편에게 아내에 대한 '독재적인' 권력을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왕이 백성의 복종을 욕구하는 것처럼 문화도 여성의 나약함을 강제한다고 주장했다.

"문명화된 여성은······그릇된 우아함에 너무도 나약해져서 도덕을 중시하면서 만약 여성이 자연에 더 가까운 상태에 남아 있었더라면 가졌을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중간계급의 소녀는 남편감을 구하기 위해 예절, 우아함, 매력적으로 되는 일 따위를 배운다.

즉, 그들은 의존적인 피조물이 되도록 훈련받는 것이다.

"희망컨대 만약 여성을 자신의 '매혹적인' 우아함에 우쭐해하거나 마치 홀로 설 수 없는 영원한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합리적인 피조물로 대한다면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진정한 위엄과 인간의 행복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지적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나는 여성이 정신과 신체 모두에서 힘을 기르도록 노력하라고 권하고 싶다."

여성의 나약함을 조장하는 문화는 어린애 같고 약삭빠르며 가시 돋치고 상처받기 쉬운 여성을 만들어냈다.

이에 울스턴크래프트는 18세기의 공통적인 주제를 되풀이해서 주장했다.

1782년에 출간된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 Pierre Choderlos de Laclos(1741~1803)가 쓴 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영어 Dangerous Liaisons)≫(영화 '위험한 관계'의 원작 소설)에서의 교활한 귀족 여성들은 울스턴크래프트와 동일한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여성에게 수줍음, 순결함, 얌전함 따위를 가르치는 것을 포함한 루소의 여성 교육을 위한 특별한 처방에 대해 울스턴크래프트는 "그는 여성의 이성을 자신의 사슬을 뚝 끊어버리기보다는 광을 내는 데 사용하기를 원했다"고 응수했다.

울스턴크래프트에게 여성의 교육은 자유와 자립을 창출하는 것이라야 했다.

 

하지만 울스턴크래프트는 시대적 한계를 지닌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녀의 공통적인 인간성을 주장했지만 남녀는 서로 다른 본분을 갖고 있으며 여성이 지닌 가장 중요한 책임은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타고난 노동 분업이 존재하며 그것이 사회적 조화를 보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사회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강압이 없고 공통적인 중력의 법칙이 널리 보급된다면, 남녀 모두 각자의 적합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녀는 여느 사람들처럼 교육과 재산이 관심사인 중간계급 여성에 관해 글을 썼는데, 여성이 정치적 권리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단순히 암시만 준 것으로 인해 급진주의자로 간주되었다.

 

계몽주의는 전반적으로 성性 gender에 대해 노예제와 견줄 만한 잡다한 유산을 남겼다.

계몽주의 작가들은 자연권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켰고 이를 대중화했지만, 자연이 서로 상이한 그리고 아마도 매우 불평등한 사회적 역할을 지시해야 한다고 제창함으로써 타고난 차이를 더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켰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장 자크 루소는 전제정과 노예제에 대한 급진적인 반대, 타락한 사회에 대한 도덕주의자의 관점, 덕성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공유했다.

성에 대한 그들 두 급진주의적 계몽주의자의 차이는 자연과 자연의 명령에 대한 계몽주의적 불일치의 특징이기도 했고, 계몽주의적 사고의 논리가 이끌 수 있었던 서로 다른 방향에 대한 훌륭한 사례였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손세호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하): 근대 유럽에서 지구화에 이르기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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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