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한반도 선사시대 미술사의 여명과 한민족의 뿌리 10-신석기시대 반구대 암각화 본문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조형 활동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울주蔚州 대곡리大谷里 반구대盤龜臺 암각화岩刻花에서 본격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1971년 울산 시민의 먹는물을 위해 만든 사연댐 지역에서 문화재를 조사하던 중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팀이 대곡리에서 발견한 암각화는 우리나라 선사미술 연구의 획기적인 성과였다.

반구대 암각화는 높이 4미터, 폭 8미터의 암벽에 고래와 사슴을 비롯한 총 231점이 새겨진 바위그림이다.
내용은 고래, 사슴, 멧돼지, 거북이 따위의 육지 및 바다 동물 그림 146점, 사냥꾼, 어부, 무당 따위의 인간 모습 11점, 배, 화살 따위의 사냥도구 13점, 그리고 주제를 확인하지 못한 그림 61점으로 모두 231점이 확인되었다.
그림 하나의 크기는 50센티미터에서 10센티미터 안팎이다.
단기간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두고 계속 덧붙여진 것으로 어떤 경우는 그림 위에 덮어 새긴 것도 있다.
조각의 기법은 표현물 전체를 고르게 긁어내거나 쪼아서 나타낸 면새김과 표현 대상이나 주변 생태를 선으로 묘사한 선새김 두 가지를 사용하였다.
발견 당시 미술사가와 고고학자들은 선사인들에게 고래는 직접 사냥의 대상이 아니라 풍부한 식량의 상징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청동기시대에 풍요을 기원하는 제의가 행해진 유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최근 지리학자, 지질학자, 식품영양학자들은 울산만의 지형이 신석기시대에는 지금과 사뭇 달라 당시는 고래 사냥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음에 주목하면서, 반구대 암각화는 물고기를 잡는 어로와 뭍짐승을 사냥하는 수렵을 생활 수단으로 삼았던 신석기인들의 유적이라는 학설을 제시하고 있다.
울산만은 예나 지금이나 고래들이 회유回遊하는(두루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거나 노는) 곳으로 포경 산업이 발달해 있다.
그런데 신석기시대에는 바닷물이 내륙 안쪽으로 훨씬 더 들어와 반구대 가까운 입암리 부근에는 내만內灣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를 지질학에서는 고울산만古蔚山灣이라고 하며, 먹이를 쫓아서 또는 얕은 해안을 좋아하여 이곳으로 들어온 고래를 신석기인이 그물, 어책魚柵(고기잡이 울짱), 작살, 화살, 배몰이를 이용하여 더 얕은 쪽으로 유도하여 '좌초'시킴으로써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암각화에 나오는 망보는 사람, 여러 명을 태운 배, 활, 그물, 어책, 작살을 맞은 고래 따위는 고래 사냥 장면들을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동해안의 신석기시대 조개더미 중 함경도 청진과 부산 동삼동 유적에서는 먹고 버린 고래뼈가 수습된 바 있다.
이처럼 고울산만에서 고래 사냥이 지질학적으로 가능했던 기간은 서기전 4000년에서 서기전 3000년 무렵까지이고 서기전 1000년 무렵이면 해안선이 바다쪽으로 밀려나 더 이상 고래 사냥은 불가능해졌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전체 구성을 보면, 화면 오른쪽에는 고래 그림이 다양하게 나오고 왼쪽으로 갈수록 그 양이 적어진 반면에 멧돼지와 같은 뭍짐승 그림이 대부분을 이룬다.
이는 이들의 주된 사냥 대상이 어로에서 점점 수렵으로 바뀌어간 것을 반영하여 새김 기법도 면새김에서 점차 선새김으로 위주로 바뀌었다.
사냥 대상인 고래 그림을 보면 어미 배에 바짝 붙어 다니는 새끼 고래를 묘사한 것도 있고(종래에는 이 그림을 새끼를 밴 고래로 보았다), 고래의 꼬리를 옆으로 휘게 그려 생동감을 나타내었다.
화살이나 노弩(쇠뇌: 여러 개의 화살을 연달아 쏘게 되어 있는 활)에 맞은 고래를 그린 것도 있다.
이는 라스코 Lascaux 동굴벽화에서 들소 몸에 창이 꽂히는 모습을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 뜻이다.
원시인류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비슷한 행위는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는 믿음이다.
그들은 그림 속의 사냥감을 죽임으로써 실제 사냥에서 풍성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동물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지만 인간은 아주 소략하고 동작을 설명하는 정도만 보여준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사냥감이었고 인간 자신의 동작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약했다.
성性은 생산의 근원이라는 샤머니즘적(무술적巫術的) shamanistic 인식이 있는 시기였기에 망보는 인물에는 발기한 남근이 강조되었고, 돼지의 교미하는 모습도 있다.
어로와 사냥을 생활의 주요 방편으로 삼았던 신석기인은 풍요롭고 성공적인 사냥을 위하여 이 신성한 곳에 장구한 세월에 걸쳐 그림을 되풀이하여 그렸던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를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으로 농경이 이루어진 시기다.
하지만 반구대 암각화의 내용은 모두 어로와 수렵에 관한 그림일 뿐 농경에 관한 그림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한편 반구대 암각화와 거의 동시에 발견된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울주蔚州 천전리川前里 암각화岩刻畵에도 일부 동물 그림이 새겨져 있지만 천전리 암각화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추상 무늬로 이는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출처
1. 유홍준 지음,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주)눌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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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4 새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