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15. 9/6 서울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본문

여행기-국내

2015. 9/6 서울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새샘 2017. 6. 17. 21:02

매헌기념관(매윤봉길의사기념관)은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를 기념하는 전시관이다. 매헌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일명 목발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국내에서 농민계몽, 농촌부흥운동, 독서회운동 등으로 농촌 부흥에 주력하다가 야학회를 조직하여 향리의 불우한 청소년을 을 가르쳤다. 1929년에 부흥원을 설립하여 농촌부흥운동을 본격화하였다. 자신이 개최한 촌극 '토끼와 여우' 공연이 성황리에 마치자 일제 당국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구애받지 않고 농촌진흥을 위해 '월진회'를 만들어 회장에 추대되었다.

 

1930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이어 다롄(대련)을 거쳐 칭다오(청도)로 건너가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모색하였다. 1931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가 상해영어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노동조합을 조직하였다. 그 후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을 찾아가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칠 각오임을 호소하였다.

 

매헌은 1932년 이봉창이 동경에서 일본왕을 폭살하려다 실패하자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4월 29일 중국 상해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이른바 천장절(일왕생일) 겸 상해사변 승전축하기념식 단상에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상해 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상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다 등을 죽이고,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 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주중일본공사 시게미쓰 등이 중상을 입었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잡하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으로 호송되어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가나자와에서 그해 12월 총살형으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면서 의사義士로 불리게 되었다.

 

매헌기념관은 서울 서초구 매헌로 시민의 숲에 위치하고 있는 3층 건물이며, 사단법인 매헌윤봉길의사기념회가 주관하여 국민의 성금으로 1988년 12월 1일 문을 열었다.

 

기념관 1층에는 유물전시실과 생애도실, 그리고 영상실이 있고, 2층에는 사무실과 매헌연구원, 3층에는 강당이 자리 잡고 있다.

 

2016년 부터 기념관 관리가 서울시에서 국가보훈처로 이관되면서 전시실 개선과 유물 보충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매헌기념관 전경

 

 

기념관 정면 출입문에 붙어 있는 '윤봉길새책도서관' 간판

 

 

1층 홀 정중앙에 위치한 '매헌윤봉길의사상'과 벽에 걸린 태극기

 

 

1층 전시관의 전시물 - 사진과 유물

 

매헌 초상화

 

매헌 출생지

 

매헌이 조직한 농촌진흥을 위한 모임 월진회기와 월진회 창립취지서

 

월진회 만들 당시의 매헌 사진과 월진회 소개

 

 

매헌 친필 유서 '장부출가생불환 丈夫出家生不還' - 1930년 3월 6일 매헌이 만주 망명길에 나서면서 남긴 유서로서 '대장부는 한번 집을 나가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

 

 

김구주석과 함께 한 매헌의 마지막 모습과 수류탄을 손에 쥔 매헌 모습, 그리고 거사 전 김구와 매헌이 서로 맞바꾼 시계

 

 

매헌이 투척하고 몸에 지닌 폭탄

 

 

형장에서의 매헌 모습

 

 

매헌 유해봉환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묘역에 있는 매헌윤봉길 의사 - 왼쪽에서부터 안중근 의사 가묘, 이봉창 의사 묘, 윤봉길 의사 묘, 백정기 의사 묘

 

2017. 6. 17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