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18. 5/21 정읍4 - 정읍 무성서원 본문

여행기-국내

2018. 5/21 정읍4 - 정읍 무성서원

새샘 2019. 6. 29. 16:57

정읍 탐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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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쌍화차거리-무성서원-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위치하는 정읍 무성서원武城書院

무성서원이란 이름으로 1968년 사적 제166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정읍 무성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정읍 무성서원은 신라 때 태인 현령을 지낸 최치원(857~908년 이후)과 조선 중종 때 태인 현감을 지낸 신잠(1491~1554)을 모시고 있으며, 교육과 제사 기능을 모두 가진 서원으로서 태산서원으로 불렀다.

 

원래 최치원과 신잠을 모신 사당祠堂 즉 사우祠宇는 각각 따로 있다가,

조선 숙종 때인 1696년 두 사당을 병합한 뒤 현 '무성'이란 사액을 받아 현재의 무성서원이 되었다.

그 후 무성서원은 다섯 분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이 추가되어

지금은 일곱 분 즉 7현賢을 모시고 있다.

 

무성서원은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아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무성서원 배치도

(출처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qkBb&articleno=1675&categoryId=34®dt=20141117082346

 

동진강을 따라 나 있는 708번 칠보산로를 따라 남으로 가다가 무성교 직전에서 우회전하여

무성서원 방향의 원촌1길로 들어서면 곧 용트림치듯이 휘감아 오른 형태의 아름드리 줄기가 멋진 

팽나무 고목을 만난다. 이 고목은 마을 지킴이 당산나무인 듯. 

 

원촌1길을 따라 남하하다가 무성서원 이정표가 있는 서원교에서 우회전하면 

이 곳 무성서원이 신성한 장소임을 알려주는 홍살문을 만난다.

홍살문 왼쪽 뒤 팔작지붕은 무성서원의 문루인 현가루.

 

홍살문을 들어서서 찍은 무성서원 파노라마 - 왼쪽의 큰 팔작지붕 건물은 무성서원을 드나드는 문루인

현가루, 오른쪽 맞배지붕 기와집은 유생들의 기숙사인 강수재, 가운데 작은 기와 건물은 비각

 -

 

무성서원의 문루인 현가루絃歌樓.

현가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 2층 누각으로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형태로 된 팔작기와집이다.

현가루란 한자 의미는 악기줄을 튕기면서 노래 부르는 누각이므로 즐겁게 공부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현가루와 연결된 담장 양쪽 앞에는 여러 개의 공적비가 줄지어 서 있고,

현가루 왼쪽 바로 옆에는 무성서원이 사적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서 있다.

현가루 왼쪽 담장 뒤 기와건물은 비각.

 

'사적 지정 제166호 史蹟 指定 第百六十六號' 표지석

 

사적지정 표지석 바로 옆 공적비

 

현가루를 지나서 무성서원 안으로 들어가면 비교적 넓은 마당과 함께 맞는

강당講堂 명륜당明倫堂에는 '무성서원武城書院'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앞면 5칸에 옆면 3칸의 팔작기와집인 강당은 무성서원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이다,

조선 성종 때인 1475년 지어진 향학당鄕學堂에서 시작하여,

광해군 때인 1615년 태산서원泰山書院을 거쳐, 순조 때인 1828년에 중창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서원 공간은 크게 학문을 닦고 배우는 강학講學영역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祭享영역으로 나뉘는데,

강학영역의 중심이 바로 강당이다.

강당 사이로 뒤쪽에 제향영역인 사우가 보인다.

 

강당 오른쪽 길을 통해 뒤에 있는 사우로 향한다.

길옆 꽃밭에 핀 하얀 으아리

 

무성서원의 사우祠宇 태산사 문루인 내삼문內三門.

이 문이 내삼문이니 무성서원 문루인 현가루는 외삼문外三門이 된다.

 

내삼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최치원을 비롯한 7현의 향사享祀를 지내는 사우 태산사泰山祠가 나온다.

사당 이름을 태산사로 한 것은 무성서원의 출발이 최치원 생전의 생사당生祠堂이 태산사였기 때문.

현재 건물은 헌종 때인 1844년 지은 것이다.

 

방문 당시 태산사 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가 보진 못했다.

 

사우 태산사에 모셔진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초상화.

이 초상화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채용신이 그렸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던 것을 2014년 정읍시가 장기대여 형식으로 돌려 받은 것이라고 한다.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140681&memberNo=9843545)

 

태산사 옆 담장가 은행나무

 

태산사 담장 밖으로 큰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느티나무와 감나무

 

태산사에서 내삼문을 통해 본 명륜당

 

태산사 내삼문 앞에서 본 명륜당과 현가루

 

명륜당 옆길로 나오면서 본 현가루 안쪽 모습.

현가루 왼쪽 키 작은 나무는 모과나무, 오른쪽 키 큰 나무는 은행나무, 그리고

현가루와 은행나무 사이의 가장 키가 작은 나무는 향나무이다.

 

모과나무

 

은행나무와 향나무

 

명륜당 오른쪽에 나 있는 조그만 협문을 통해 무성서원 담장 밖으로 나가본다.

 

무성서원 담장 밖의 유생들이 기숙사였던 강수재講修齋. 동쪽에 위치해서 동재東齋라고도 불렀다.

현 강수재 물은 고종 때인 1887년에 처음 지어진 후 몇 번의 수리를 거친 것이다.

 

2개의 비각 앞에서 바라본 강수재.

강수재 앞 비석은 1906년 병오년에 일어난 의병 공적비인 '병오창의기적비丙午倡義紀蹟碑'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최익현은 창의토적소倡義討賊疏를 올려 항일투쟁을 호소한 후,

이듬해 1906년 고석진임병찬과 함께 동지들을 규합하여 이곳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무성서원 담장 밖의 화단의 꽃이 핀 식물인 노란꽃 유채와 빨간꽃 솔체꽃

 

연분홍꽃 낮달맞이와 흰색과 자주색이 섞인 꽃 독일붓꽃, 그리고 오른쪽 담장위의 빨간꽃 덩굴장미

 

무성서원을 떠나면서 바라본 무성서원 전경

 

2019. 6. 2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