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우린 우연히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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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우연히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다!

새샘 2021. 2. 8. 11:56

<사진 출처-https://m.gettyimagesbank.com/view/%ED%99%98%EC%9E%90-%EC%9E%84%EC%8B%A0-%EB%AC%BC%EC%B2%B4%EB%AC%98%EC%82%AC-%ED%83%84%EC%83%9D-%EC%82%AC%EA%B1%B4-%EC%97%84%EB%A7%88-%EC%95%84%EA%B8%B0%EC%9A%B0%EC%9C%A0%EB%B3%91-%EC%9C%A0%EC%95%84%EC%9A%A9%ED%92%88-%EC%95%84%EA%B8%B0-%EC%9D%B8%EA%B0%84%EC%9D%98%EB%82%98%EC%9D%B4/jv11348623>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2020년 작 '기억'은 전생에 관한 소설이다.

 

다음은 주인공 르네가 퇴행최면退行催眠 hypnotic regression[최면을 통해 과거로 돌아감] 통해 자신의 전생 111명을 불러내어 자신 포함 112명의 르네가 총회를 여는 장면을 묘사한 글이다.

 

르네는 원형 경기장 모양의 무의식에 들어와서 111번부터 시작하여 모든 전생의 문을 열어 111명의 전생들을 무대 중앙으로 불러내어 총회를 연다.

 

르네 포함 112명이 한 사람씩 자기 소개를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할 줄 몰랐어. 이 카르마들은 계속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들을 소환할 생각을 내가 못 했던 것뿐이야.

정말 감격스런 순간이야."

 

세네갈의 그리오, 젊은 한국 여성, 옛날 중국 관리, 피그미족, 시베리아의 노파 샤먼, 수족 인디언, 아마존 밀림의 사냥꾼, 말을 타는 몽골인, 파푸아뉴기니 원주민, 발리 출신의 무용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베두인족, 로마 병사, 그리스 무역상, 바이킹 항해사, 에스키모 사냥꾼, 마야 여인, 터키의 수피 교도, 아르메니아 사제, 쿠르드족 여자 병사, 폴란드 출신 하시딤 교인, 중세 독일 왕, 앉은뱅이 핀란드인, 넝마에 얼굴이 가려 나라와 시대를 짐작하기 힘든 걸인 두 사람....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합쳐져 우리 각자가 되는 거예요."

 

르네는 이 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커다란 거울의 이미지를 불러낸다.

그가 거울에 충격을 가하자 여러 조각으로 금이 간다.

깨지지 않고 붙어 있는 거울 조각들 속에는 똑같은 이미지라도 조금씩 다르게 비친다.

 

"나는 우리의 영혼이 서로 다른 풍경과 서로 다른 상황을 모두 거쳐 온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믿어요.

새로운 감정들을 경험하기 위해서죠."

 

"나는 우리 각자가 삶의 마지막에서 만든 일종의 인생 대차 대조표에 근거해 다음 생을 결정했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때까지의 인생 결산에 따라 내생의 내용을 결정한다는 거죠.

여러분 중 왕으로 살았던 사람은 가난한 자의 생을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어요.

여자로 살았으면 다음에는 남자의 삶을, 자연에서 살았으면 대도시의 삶을 꿈꿨을 수 있죠.

노예롤 살았으면 다음 생은 주인으로 태어나 보고 싶고, 살인자로 살았으면 희생자의 생이 궁금해지는 법이고, 윤택한 삶을 산 사람은 고단한 삶에 호기심을 느낄 수도 있죠."

 

"내가 이런 결론을 내린 이유가 이해될 거예요.

나는 우리 각자가 다양한 생을 경험하고 싶어 여러 가지 환생 가능성을 시험해 봤다고 생각해요.

가령 우리 시대 사람들이 즐기는 마스터 마인드 게임과 똑같은 원리죠.

이건 상대가 가진 색구슬의 색깔과 배치를 맞추는 게임인데,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확인하면서 새로운 색 구슬 조합을 계속 시험하는 거예요.

정답을 찾을 때까지."

 

"이제 내가 그 결론에 도달한 이유를 아시게 됐을 거예요.

우리 각자는 다시 태어나기 전에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우리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지만, 어느 정도 전생이 원한 삶의 경로를 따라갈 수밖에 없죠.

내 앞에 살았던 피룬이 나를 르네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가족에 태어나게 한 것은, 내가 환생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 그의 소망이 반영된 거죠."

 

"반드시 그렇다는 법칙을 말한 건 아니에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

태어나기 전에 우리 모두는 전생을 살았던 전임자로부터 일종의 유산을 물려받았어요.

어떤 재능을 갖고 싶은지,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에 대한 그들의 소망이 바로 그거죠.

그래서 삶을 거듭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 돕는 하나의 가족이 돼요. 영혼의 가족인거죠.

이 영혼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서로의 재능을 발견하게 도와주고, 응원해 줘요.

그리고 각자의 삶의 마지막에 가서는 이런 질문에 맞닥뜨리게 왜요.

너는 너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

 

"이미 모든 재능를 다 가졌고, 우리보다 현명하고 행복해 보이는 게브가 왜 자신보다 못한 내생들을 거쳤을까요?"

 

"행복 속에 머무르다만 하다 보니 발전의 동력을 상실했어요.

불안감도 두려움도 소명도 없이 살다보니 의식마저 잠들어 버렸죠.

우리가 이룬 정신의 위업들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졌어요.

르네를 만나기 전까지는 우리 존재의 기록을 글로 남기겠다는 생각조차 못했죠.

아틀란티스 문명의 기억을 활자로 남겨 줄 역사가도 한 명 없는데, 우리가 지혜를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는 지금 내 눈앞의 이 얼굴, 이 몸을 가지고 그의 시대, 프랑스에서 태어난 르네 톨레다노가 내 영혼의 진화의 완성이란 걸 깨달았어요.

증언부언 같지만 그가 날 만나러 왔다는 사실이 바로 그 궁극적인 증거죠."

 

"여기 있는 우리 모두를 만나러 온 거죠."

 

"결국 르네의 생은 우리 중 가장 완성된 삶이에요.

르네만이 과거의 조각을 맞출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르네 자네가 우리 영혼의 마지막 대표자라는 사실을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알아 두게."

 

내가 지난 환생들 앞에서 이렇게 박수를 받을 날이 올 줄이야!

 

"그런데 르네 당신은 왜 우리를 지금 여기로 불러 모은 거요?"

 

"내가 기대하는 건 아이디어예요.

게브의 아틀란티스의 물증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게브와 아틀란티스 문명의 잊힌 기억을 복원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 잘 살펴봐요."

 

"당신이 쥔 패를 가지고 게임을 하라는 뜻이지.

지금까지 들은 내용으로 내가 이해한 바로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패를 손에 쥐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달라요. 에이스 넉 장을 다 손에 쥐고 있다고!

어느 때보다 게임이 쉬울 테이 걱정하지 말고 시작해요!"

 

"당신한테는 우리 모두의 역사적 진실을 회복시킬 의무가 있어요.

우리 모두는 당신이 가진 지식을 채워 주면서 당신을 도울 거예요."

 

"여러분 고마워요. 여러분 덕에 내 고민이 해결됐어요."

 

나는 우연히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다.

 

※출처: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기억 2'(열린책들, 2020)

 

2021. 2.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