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단원 김홍도 "기로세련계도" 본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나이 60세 때인 1804년에 그린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稧圖>[기耆는 예순 살, 노老는 일흔 살을, 세련계는 나라에서 베푸는 계稧(契) 잔치이므로, 나라에서 베푸는 경로 우대 잔치 그림]는 개성에 거주하는 노인 64명이 1804년 9월 개성 송악산 아래 옛 왕궁터로 유서 깊은 만월대滿月臺에서 가진 계 모임(계회契會)을 기념하는 그림이다.
송악산 아래 커다란 차일遮日[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치는 포장]을 치고 병풍을 두르고 자리를 깔았다.
각 상을 받은 흰 수염의 노인 64명은 꽃병과 술병이 올려진 중앙의 주칠朱漆[누런색이 조금 섞인 붉은색]한 상을 중심으로 빽빽이 네모지게 둘러앉았다.
상 위에 꽃병에는 붉은 색 꽃이 담긴 꽃병과 술동이가 놓여졌다.
두 명의 무동이 악기에 맞춰 춤을 추며 흥을 돋우는 가운데 일곱 명의 시동들이 참석자들한데 연신 술을 대접하기 바쁘다.
참석자들 뒤로는 연회를 준비한 사람들과 음식을 장만한 사람들, 그리고 견마牽馬꾼[사람이 말이나 당나귀를 끄는 마부]들로 북적거린다.
잔치마당에 구경꾼들이 빠질 수 없다.
동네사람들, 나무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잔치가 궁금한 사람들은 전부 모였다.
잔칫집이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각설이까지 등장했다.
구경꾼들은 비록 오늘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라서 잔칫상을 받을 수는 없지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언제 정보를 입수했는지 구경꾼들을 대상으로 술을 파는 주모도 보인다.
단원은 행사 주인공들인 개성 노인들은 똑같은 자세로 비슷하게 그린 반면, 차일 밖 구경꾼들이나 걸인 등의 모습은 다양한 몸짓과 자세로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이런 주변 인물들의 현장감 있는 묘사로 풍속화에서 이룩한 성과를 보여주는 단원 만년의 대표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어쩌다 한 번 있을까말까 할 정도로 큰 잔치 장면을 김홍도는 전통적인 계회도 묘사 방식을 선택했다.
그림 위쪽에는 계회도의 내력을 밝히는 홍의영의 발문을 쓰고 중간에는 계회도 장면을, 아래쪽에는 참석자를 적어 넣었다.
위쪽에 제목과 발문跋文[행사의 개요를 간략하게 적은 글], 중간에 그림, 아래쪽에 참석자를 적는 계축契軸[잔치를 베풀면서 시부(시와 산문)를 적어 선물로 주는 권축卷軸(글씨나 그림 따위를 표장表裝하여 말아 놓은 축)] 형식은 조선 전기부터 내려온 오래된 전통이다.
그러나 김홍도가 살았던 조선 후기에는 계축 대신 화첩에 계회도를 그리는 계첩契帖 형식이 유행했다.
김홍도가 당시 유행하던 계첩 대신 계축을 선택한 것은 만월대가 갖는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더구나 그림 속 주인공들이 나이든 사람들이 아닌가.
김홍도는 그림을 두 부분으로 나눴다.
배경이 된 송악산과 오늘의 주인공들이 모인 만월대의 계 모임 장면이다.
가을빛이 물든 송악산은 화면의 절반을 여백으로 남겨둘 만큼 시원하고 넉넉하게 그렸다.
사람들고 북적거리는 잔치마당에는 빈 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꽉 차게 그렸다.
두 장면이 교차하는 부분에는 안개를 풀어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안개로 인해 서로 다른 성격의 산수화와 풍속화가 한 화면에서 조화롭게 공존한다.
안개는 깊이감과 거리감도 느끼게 해준다.
뛰어난 구도감각이다.
송악산이 그려진 산수 부분과 계 모임 장면이 그려진 풍속 부분은 시점도 달리했다.
송악산은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고원법高遠法으로 그린 반면 만월대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렸다.
한 화면에 여러 시점을 혼재한 경우는 동양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김홍도는 그저 단순히 기록화로 남을 수 있는 모임 장면을 탁월한 작가적 능력을 발휘해 명작으로 만들었다.
하엽준荷葉皴[산이나 바위를 묘사할 때 연잎의 잎맥 줄기와 같이 그리는 기법]으로 윤곽선을 잡고 연한 색으로 물들은 송악산은 그 부분만 따로 떼어 독립시켜도 훌륭한 진경산수화가 될 수 있을 만큼 잘 그렸다.
잔치에 참여한 각 인물들이 특징을 실감나게 잡아낸 계 모임 장면은 풍속화가로서의 단원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하나의 작품이 진경산수화이자 풍속화이며 계회도이자 기록화가 된 특별한 경우다.
이 그림을 그렸던 김홍도의 나이 60세는 자신을 아끼던 군왕 정조와 스승 강세황이 세상을 떠난 뒤 한참 실의에 빠져있을 때다.
이런 상황에서 완성한 작품인데도 김홍도의 필력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썩어도 준치'란 속담이 있듯 거장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이 <기로세련계도>에는 고약한 생활고와 흉흉한 무력감 따위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장엄한 작가의지가 담겨 있다.
예술가로 생생하게 살고자 했던 숭고한 의지다.
<기로세련계도>의 다양한 인물에서 보이는 현장감과 달리 이 작품은 계 모임이 이미 끝난 후에 행사를 주관한 이들이 계 모임의 전모를 적은 서문을 가져와 김홍도에게 그림을, 홍의영에게는 기문記文[이 계 모임에 대한 기록]을 부탁하여 제작된 것이다.
즉 김홍도와 홍의영은 모두 직접 보는 듯한 성대한 계 모임의 정황을 적은 서문을 토대로 그림과 글을 창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김홍도의 그림 위쪽에 기문을 적은 홍의영은 이 그림의 풍속화적인 요소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홍의영은 기문에서 이 행사를 전형적인 왕실 후원의 노인 계 모임 그림인 <기로회도耆老會圖> 장면처럼 묘사하면서, 계 모임의 배경이 된 만월대를 '시든 풀 폐허가 된 터(쇠초황지衰草荒支)'로 표현해 김홍도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그렇다면 홍의영의 기문뿐 아니라 이 그림의 소재가 된 실제 행사 장면을 기록한 서문에도 차일 밖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에 두 번이나 등장하는 걸인의 모습까지 '대단한' 행사 장면에 포함되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그림의 '풍속화'적 표현은 김홍도가 선택한 시각적 재현 방식이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출처
1. 조정육, 김홍도 '기로세련계도', 법보신문 2014. 5. 28(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2133)
2. 조규희, 김홍도 필 <기로세련계도>와 '풍속화'적 표현의 의미, 미술사와 시각문화 제24호, 2019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525754)
3.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022. 2. 27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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