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28: 중구 지역2-장교동, 을지로, 남산동, 장충동, 충무로, 황학동, 태평로, 남대문로, 오장동, 광희동, 초동, 묵정동, 회현동, 방산동, 필동, 북창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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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28: 중구 지역2-장교동, 을지로, 남산동, 장충동, 충무로, 황학동, 태평로, 남대문로, 오장동, 광희동, 초동, 묵정동, 회현동, 방산동, 필동, 북창동

새샘 2023. 3. 27. 15:08

 

<2000년 이후 발굴조사 목록-중구 지역2: 장교동, 을지로2가, 남산동, 장충동, 충무로, 황학동, 태평로, 남대문로, 오장동, 광희동, 초동, 묵정동, 회현동, 방산동, 필동, 북창동 유적>

 

2011년에는 장교동 장교구역 제5지구 도시환경정비 구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지역은 남쪽에 혜민서惠民署(조선 시대의 삼의원의 하나로서, 가난한 백성을 무료로 치료하고 여자들에게 침술을 가르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터가 있던 곳으로 을지로2가 사거리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약 50m 떨어진 오른쪽에 위치한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건물 터 21동, 구덩이 유구 1기와 조선~근대의 담장 1기, 우물 2기 등이 확인되었다.

 

 

2014년에는 장교구역 제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지하상가 연결통로 공사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지역 남쪽에는 한성부漢城府(조선 수도 한성을 관할하는 관아, 지금의 서울특별시청에 해당) 남부관아南部官衙(한성부의 5개 구역―중부, 동부, 서부, 남부, 북부 가운데 남부 지역을 관할하던 관아로서 지금의 구청에 해당)가 있었고, 동쪽에는 혜민서가 있었다.

발굴 결과, 조선 전기 문화층에서는 건물 터 관련 유구들이 확인되었고, 가장 위층인 조선 후기층에서는 석렬 등이 조사되었다.

 

 

남산동2가 조사지역의 조선시대 배수로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3년에는 남산동2가 다가구주택 신축부지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다.

조사지역은 한양도성을 감싸고 있는 4대문과 인접한 곳으로, 수키와를 맞대어 토관 형식으로 만든 조선 후기 배수로 1기만이 확인되었다.

 

 

남산동1가에 있는 정화예술대학 실습동 신축공사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2014년에 실시되었다.

그러나 유구나 유물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2015년에는 장충동1가 근린생활시설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지역 동쪽 약 350m 지점에 광희문光熙門(수구문水口門 또는 시구문屍口門)이 있고, 북쪽 약 420m 지점에는 훈련원訓鍊院(조선 시대에, 군사의 시재試才, 무예의 연습, 병서의 강습 따위를 맡아보던 관아)과 부속기관인 하도감下都監의 옛터가 위치하고 있는데, 조선시대 건물 터 1동과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호안석축 1기가 확인되었다.

 

 

2012년에는 충무로2가 호텔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지역은 남산 자락의 끝 부분에 해당하여 남에서 북으로 완만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의 소로小路 시설 1기, 석축 1기, 주춧돌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조사된 유구 중 소로와 석축은 1912년에 작성된 지적도의 구획선과 일치하였다.

현재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 명동호텔이 들어서 있다.

 

 

2013년에는 충무로2가 근린생활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지역의 북쪽에는 명동성당과 샬트르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교구 성당, 북서쪽에는 제중원濟衆院(조선 시대에 광혜원廣惠院을 고쳐 건립한 최초의 근대식 국립 병원) 터와 장학원掌樂院(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되는 음악 및 무용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가 있다.

발굴 결과, 주선 배수로와 간선 배수로로 구성된 조선 말기~근대의 복합배수시설이 확인되었다.

 

 

그밖에 중구 지역에서는 황학동 2243번지 일대 주택재개발사업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2004년 10월 13일부터 12월 10일까지 실시되었다.

 

 

군기시 터 조사지역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2009년에는 서울시 신청사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지역은 본래 일제강점기에 경성부 청사로 건립되었다가 광복 이후 서울시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병기의 제조 등을 관장하던 관아인 군기시軍器寺 터로 추정된다.

2007년 10월에 지상 19층의 신청사가 착공될 예정이었지만 문화재청과 여론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2008년 8월 26일에 서울시가 당시 태평홀을 철거한 후 복원공사를 실시하자 문화재청이 반발하여 사적으로 가지정한여 해체공사가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재합의로 재공사가 결정되어 군기시 터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진 것이다.

 

군기시 터에서 출토된 화약무기들(왼쪽)과 불랑기자포(오른쪽)(사진 출처-출처자료1)

발굴조사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유구로는 호안석축 1기, 개골창(구거溝渠: 수채 물이 흐르는 작은 도랑) 1기, 건물 터 21동, 우물 1기, 담장 7기가 확인되었고, 근대 유구로는 호안석축 1기, 건물 터 7동, 우물 6기, 지정말뚝(지정말목地釘抹木: 바닥을 단단히 하려고 박는 통나무 토막)들이 조사되었다.

유물로는 보물 제861-2호로 지정된 불랑기자포佛狼機子砲(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시키는 조선시대  화포로서, 임진왜란 때 평양성 탈환에 널리 활용) 등 화약무기를 포함한 금속유물, 자기, 기와, 목기, 철기, 동전 등 총 587점이 출토되었다.

 

이번 발굴 결과는 그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군기시의 실체가 물질자료인 유구와 유물을 통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앞으로 군기시와 화약무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발굴단은 평가했다.

 

서울시청 지하의 군기시 유적전시관(사진 출처-출처자료1)

당시 출토된 유구와 유물은 서울시청 지하에 설치된 군기시 유적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2012년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남대문로4가의 관광숙박시설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지역 주변에는 숭례문과 한국은행 본관이 있고, 조사지역은 세종대로와 남대문로가 만나는 지역에 위치한다.

발굴 결과, 1937년에 준공된 김천대 빌딩의 지하층이 확인되었고, 조선~근대 건물 터 4동과 배수로, 우물, 담장 등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 시전 행랑과 근대 건축물 지하시설도 확인되었다.

지금의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호텔이다.

 

 

2013년에는 오장동 근린생활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지역은 남산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평지로서, 주변에는 재래시장과 단독주택 및 상가 등이 밀집 조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조선시대 건물 터 2동과 구덩이 유구 13기, 도랑(구溝) 1기가 조사되었다.

 

 

2013년에는 광희동2가 호텔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도 있었다.

조사지역은 동대문~광희문 구간의 한양도성에 해당하는 곳으로, 조선 후기~근대의 건물 터 1기와 석축 1기가 확인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케이와이헤리티지 호텔이 들어서 있다.

 

 

초동 조사지역의 조선시대 도로 석축(사진 출처-출처자료1)

초동의 숙박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 역시 2013년 이루어졌다.

조사지역은 청계천 남쪽에 인접한 지역이며, 북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일본 불교 종파인 정토진종淨土眞宗 서본원사西本願寺 경성별원京城別院(현 동국대 정각원正覺院), 남서쪽에는 영희전永禧殿(조선 시대에, 태조·세조·원종·숙종·영조·순조의 영정을 모셨던 전각) 자리하고 있고, 남산에서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구릉 끝에 위치하여 4대문 안의 청계천 일대 지역에 비해 퇴적층이 얇게 이루어진 지역이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유구로 판단되는 건물 터 4동과 도로, 그리고 근현대 건물 터 12동과 배수로 등이 확인되었다.

지금 나인트리 프리미어 호텔 명동이 들어서 있다.

 

 

묵정동 도시형생활주택 신축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3년 실시되었다.

조사지역 북쪽에는 충무초등학교가, 남쪽에는 동국대학교가 있으며, 북쪽에 퇴계로, 동쪽에 동호로가 인접하고 있다.

지형상 남산에서 북으로 연장되는 능선 말단부에 자리하여 비교적 완만한 평탄지를 형성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 터와 관련된 적심돌(적심석積心石돌 따위를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는 돌) 2기와 고막이(고맥이) 초석(지표면에 드러난 주춧돌 가장자리에 살을 덧붙인 초석)으로 보이는 잡석렬,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석렬이 확인되었다.

 

 

2014년에는 회현동1가 근린생활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지역은 한양도성의 남쪽 성벽에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져 있고, 남쪽에는 삼풍아파트, 동쪽에는 이일빌딩이 있다.

주변에는 노후된 소규모 건물들이 있으며, 아직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발굴 결과, 일제강점기 것으로 보이는 장댓돌(장대석長臺石: 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어 만든 돌) 석렬과 적심돌 6기, 그리고 기단 석렬, 그리고 조선시대 담장 기초로 판단되는 석렬도 확인되었다.

 

 

2014년에는 방산동의 근린생활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다.

조사지역 남쪽에는 남산, 북쪽에는 청계천이 흐르며, 남동쪽 약 200m 지점에는 조선시대 훈련원이 있던 자리였다.

지금의 방산동은 조사지역 북쪽으로 주교동 방산시장을 중심으로 포장지, 벽지 등의 지업사들이 밀집되어 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건물 터 5동, 석렬 유구 3기와 조선 후기~근대의 우물도 3기 확인되었다.

또한 근대 건물 터 2동과 붉은벽돌로 만들어진 아궁이, 배수로 등의 관련 유구도 조사되었다.

 

 

2014년에는 필동2가의 근린생활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지역은 서울 도심부를 동서 방향으로 연결하는 퇴계로 남쪽 일대로, 영화관과 음식점 등의 소규모 상가와 주거용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다.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에서 남쪽으로 약 60m 거리에 위치하며, 서쪽에는 대한극장이 인접해 있고, 남서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곳에는 남산골 한옥마을이 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건물터 3동과 석렬 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

 

 

북창동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청동대야(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3년에는 북창동의 호텔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조선~현대에 이르는 건물의 하부구조가 여러 번의 중복을 거치면서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담장 터가 확인되었고, 일제강점기 건물 터는 조사지역 전체에서 확인되었는데, 최소 5동 이상의 건물이 있었다.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는 북창동의 상업시설 신축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지역 남동쪽에는 한국은행 본관이, 남서쪽에는 숭례문이 자리하고 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2개의 문화층이 존재하며, 조선 전기 건물 터 2동과 담장, 배수로 및 조선 후기~근대 건물 터 4동과 담장, 배수로 등이 확인되었다.

건물 터 아래에서 조사지역 중앙부를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가로지르는 옛 물길이 확인되었는데, 이 물길은 예전 조사지역 서쪽으로 흘렀던 창동천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발굴단은 판단했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3. 3. 27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