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작가 미상 "독서당계회도" 본문
<율곡, 서애, 송강이 함께 공부하던 한때>
오늘날 그림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감상화, 장식화를 생각하지만 카메라가 없던 시절 그림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사진을 대신하는 시각적 기록이었다.
초상화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와 더불어 옛사람들은 모임을 가진 다음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우리가 야유회 가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 것과 같은 마음의 소산이다.
조선 전기에는 그런 기념화로 계회도契會圖가 성행했다.
계契/稧는 사대부들이 친목을 위해 시와 술을 즐기며 어울린 모임으로 수계修契라고도 한다.
역사적 유래로는 4세기 동진東晉의 왕희지가 소흥紹興/绍兴 난정蘭亭에서 41명의 명사들과 어울린 난정수계蘭亭修契, 8세기 당唐나라 백거이를 중심으로 한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 12세기 송宋나라 사마광을 중심으로 한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 등이 있다.
이들을 본보기로 하여 계모임을 만들곤 했다.
조선왕조 16세기로 들어서면 계가 크게 유행하고 이에 따른 계회도 제작이 성행하여 고유섭의 ≪조선화론집성≫에 조사된 계회도의 제시題詩(책이나 그림에 제목을 붙여 지은 시) 또는 그 시 와 제발題跋(책이나 그림의 첫머리에 그 유래나 펴내는 뜻, 감상, 비평 등을 적은 글인 제사題辭/題詞와, 책이나 그림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인 발문跋文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무려 130여 건이나 된다.
현재 전하는 조선 초기·중기의 계회도도 100점이 넘는다.
조선 전기의 계회는 주로 관료들의 친목 모임이었다.
현재 전하는 <미원薇垣계회도>(보물 제868호), <추관秋官계회도>(보물 제1616호> 등이 대표적인 예다.
미원은 사간원司諫院의 별칭이며, 추관은 형조刑曹의 별칭이다.
'이조낭관吏曹郎官 계회'는 요즘으로 치면 '행정안전부 과장 모임' 정도가 된다.
많은 계회도 가운데서 1570년(선조 3)에 제작된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를 여기에 소개하는 것은 이 계회도 속에 들어 있는 인문정신人文精神 humanitism(인간의 삶과 세상에 대한 태도)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독서당은 호당湖堂이라고도 하는데 독서당 제도는 세종 때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에서 비롯되었다.
세종은 집현전에 소속된 연소능문지사年少能文之士, 즉 나이는 어리지만 문장에 능한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맘껏 독서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일종의 안식년 또는 연구년 제도이다.
성종 대에 이르러서는 서거정이 아예 독서당을 따로 두자고 건의함에 따라, 1492년(성종 23) 마포 한강변에 있던 사찰을 개조하여 남호독서당南湖讀書堂을 열었다.
1517년(중종 12)에는 동호대교와 성수대교 사이의 한강 연안 일대인 두모포豆毛浦(두뭇개)에 독서당을 설치하고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라 했다.
동호독서당은 임진왜란 때 불탔고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등으로 사가독서제가 없어지면서 독서당의 기능도 크게 위축되었다.
이후 독서당은 형식상으로만 존재하다가 정조 때 규장각이 그 역할을 이어갔다.
이 독서당 제도는 인재 양성을 위한 대단히 훌륭한 제도여서 유명한 문신과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한때 대제학은 독서당을 거친 사람이라야 임명이 가능하게끔 제도화되어 있을 정도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1570년 작 <독서당계회도>를 보면 참석 명단에 송강松江정철鄭澈, 율곡栗谷 이이李珥,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 정유일鄭惟一, 구봉령具鳳齡, 이해수李海壽, 신응시辛應時, 홍성민洪聖閔 등 아홉 명이 들어 있다.
송강, 율곡, 서애, 월정 등이 젊은 시절에 여기서 함께 공부한 독서당 동기생이었음을 말해준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 그림의 문화사적 의의를 높이 새길 수 있다.
조선 전기 계회도는 대개 상중하 3단의 축軸으로 구성된다.
상단에는 계회의 명칭을 전서체로 가로로 길게 띠 모양으로 적고, 중단에는 계회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자리하며, 하단에는 참석자의 이름·생년·본관·관직명 등을 기록한 좌목座目(자리의 차례를 적은 목록)을 세로로 나란히 써 넣었다.
또 조선 전기 계회도 그림에는 정형화된 형식이 있었다.
전각에서 열린 경우는 전각 중심이 산수화로 그렸고, 야외에서 열린 경우는 현장 분위기를 가볍게 나타내곤 했다.
그런가 하면 현장을 사실적으로 사생하는 것이 아니라 강변에 여럿이 둘러앉아 시를 짓는 모습을 그린 경우가 많았다.
강에는 배가 떠 있고 강변의 바위 위에는 운치 있는 소나무 두어 그루가 있어, 당시 유행하던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산수화에서 일부분을 취한 것 같은 풍경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수는 좌목에 적힌 숫자와 같다.
그런데 이 <독서당계회도>는 한강 동호의 두모포에 있던 독서당 실경을 그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강에는 여러 척의 배가 떠 있고 화면 왼쪽으로 무게를 둔 산에는 소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으며 그 산자락 가운데에는 독서당 건물이 있다.
독서당 한쪽에는 문신들이 앉아 있으며 건물 뒤쪽으로는 고갯마루를 넘어가고 있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아직 실경의 박진감이 살아 있는 사생은 아니지만 주변의 경관에 충실하려는 뜻만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한편 1531년(중종 26)에 제작된 <독서당계회도>(일본 개인 소장) 또한 실경을 따르고 있어 이것이 혹 독서당 계회도의 독특한 전통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게도 된다.
이런 실경의 묘사가 훗날 진경산수로 이어지는 사생의 전통이었던 것 같다.
독서당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이 <독서당계회도>만이 그 옛날을 증언하고 있다.
※출처
1. 유홍준 지음, '명작 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주)눌와, 2013
2. 구글 관련 자료
2024. 2. 7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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