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4 - 대추나무 본문
유럽의 동남부에서부터 아시아 동남부에 걸쳐 자라는 대추나무는 그 종류만도 약 40종이 있으며, 주로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 많다.
학명은 지지푸스 쥬쥬바 Ziziphus jujuba, 영어는 common jujube(보통대추나무) 또는 Chinese date(중국대추나무), 중국어 한자는 대조大棗,
달콤하고 감칠맛이 나는 붉은 대추는 제사상에 꼭 올리며 약밥에도 넣는다.
목재도 붉은색을 띠고 단단하여 악귀를 쫓는 부적으로도 쓰인다.
대추나무 열매인 대추는 모양이 둥글고 색깔이 고우며, 재롱스러운 생김새라든가, 풋대추 때의 푸름과 익어갈 무렵 알맞게 얼룩진 붉음이라든가, 익었을 때 빛나는 홍적색이 대추나무를 나무랄 데 없이 자랑스러운 나무로 떠올리게끔 한다.
수백 수천 개의 대추 열매는 대롱대롱 붙어서 가을 하늘의 한구석을 동요처럼 만들어줌으로써 어른들에게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맛보게 해준다.
대추나무에 달린 열매를 보고 누구든지 싱긋 웃게 되는 것은 그것이 앳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빙례聘禮(물건을 권하고 선사하는데 관한 예절)를 보면, 집에 찾아온 손님을 대접할 때 그 집 부인은 오른손에 대추를 담은 대나무 그릇(죽보竹譜)를 들고, 왼손에는 밤을 담은 그릇을 든다는 기록이 있다.
대추를 오른손에 드는 것은 그 열매가 한층 더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대추 열매는 여성적인 미를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대추는 한약재로 쓰이며, 또 조동율서棗東栗西라 해서 제사 때 대추는 동쪽에, 밤은 서쪽에 차리는 원칙도 있는 걸 보면 우리 생활과 아주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대추나무 이름
대추나무의 한자 이름은 대조大棗이다.
대조가 있으면 소조小棗라는 대추나무도 있을 것 같지만, 이런 이름의 대추나무는 찾아볼 수가 없다.
'대추나무 조棗'자는 '가시 자朿'자를 아래위로 포개놓은 모양이다.
이것을 옆으로 놓으면 '가시나무 극棘'자가 된다.
'棘'자도 때에 따라서는 대추나무를 뜻하기도 한다.
중국 명대의 학자 이시진李時珍은 대추나무를 한자로 '棗'라 쓰고 산대추나무는 '棘'으로 나타낸다고 하면서, 대추나무는 키가 큰 나무이므로 '朿'자를 아래위로 놓아야 그 글자의 높이가 높아질 수 있고, 산대추나무는 키가 작게 크는 나무이므로 '朿'자를 옆으로 두어야만 글자의 높이가 낮아져 나무의 모양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朿'자는 나무 목木에 2개의 가시가 중간 부분에 달린 모양이다.
정말 비상한 착상으로 글자를 만들고 나무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대추나무에 관한 관찰이 비교적 세밀하다.
예를 들어, 열매의 아랫부분이 크고 위로 가늘어진 것이 병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호조壺棗'라 했고, 열매 크기가 계란만 한 것이 있는데 이것을 '세견조洗犬棗'라 했으며, 씨 없는 대추를 '무실조無實棗'라 했고, 쓴맛이 나는 대추를 '고조苦棗'라 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이름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대추나무는 가시의 발달이 약한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의 학술상 이름에 이네르미스 inermis란 말이 들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가시가 없다' 또는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가시의 발달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대추나무의 일본 이름은 나쓰메(하아夏芽)이다.
이는 대추나무의 눈(싹 '아芽')이 초여름이 되어야 트게 된다는 데서 온 명칭이다.
흥미로운 이름이다.
한편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의 눈을 밖으로 쫓아내 놓고 맨 나중에 천천히 나온다는 말이 있다.
또한 대추나무 가지는 늦봄까지 죽은 것처럼 보여 대추나무를 양반나무라고도 한다.
양반이 행동을 느릿느릿하게 꾸며서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일본 문헌인 ≪대화본초大和本草≫에는 대추가 굵다고 해서 이것을 대조大棗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고, 대조라는 것은 한국 대추나무의 이름(즉 고유명사)으로 쓰이고 있을 따름이며, 이것은 다른 대추와 달라서 잎과 열매가 크고 열매의 아랫부분이 끝부분보다 더 굵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추나무 이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어로 'common jujube'('일반적인 대추나무'라는 뜻)이다.
다음으로 유명한 이름은 '예수의 형관荊冠 Christ's thorn(가시가 난 나뭇가지로 만든 머리에 쓰는 관)'을 만드는데 썼던 나무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나는 키가 작은 대추나무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의 대추나무는 추운 고산 지방을 제외한 전국 각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붉은 열매, 홍조
중국에서는 서기전부터 대추나무를 재배해온 기록이 있다.
전국시대에 소진蘇秦이 연燕의 문후文侯에게 "북쪽에는 대추나무와 밤나무가 있어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즉 곡식의 창고(천부天府)와도 같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더라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전국책戰國策≫).
대추나무 열매는 비교적 일찍 익는다.
눈(아芽)은 늦게 트지만 열매는 빨리 딸 수 있다.
≪시경詩經≫에 보면 8월에는 대추를 따고 10월에는 벼를 거둔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력 9월이 되면 열매가 익는다.
열매가 특히 붉은 것을 홍조紅棗라 해서 하나의 품종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반면 산조酸棗라는 것이 있는데, 묏대추나무 또는 산대추나무라고 부른다.
이것은 가시가 발달해 있는데,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 이 가시에 몇 번인가는 찔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나무는 대추나무보다 추위에 견디는 힘이 더 강해 보이며, 열매는 둥글고 더 작은 편이다.
○한약재
산대추나무 열매의 속(배유胚乳 또는 인仁)은 약으로 쓰인다.
이것을 산조인酸棗仁이라 하는데, 껍질이 적갈색이고 둥글고 납작하다.
산조인은 신경을 안정시키고 잠을 잘 오게 하며, 히스테리나 노이로제 치료약으로 효과적이다.
어린아이가 밤에 잘 울 때, 위경련, 근육 통증, 신경의 흥분 등에 주로 이 약재를 쓴다.
대추 열매 중 붉게 익은 것을 따서 말리고 저장해서 약으로 쓰는데, 한약에는 대개 몇 알의 대추와 생강이 항상 따라다닌다.
대추 열매는 진정과 수렴收斂(가라앉힘), 자양강장滋養強壯[몸의 영양을 좋게 해(자양) 몸을 튼튼하게 만듬(강장)]의 효과가 있다.
감맥대조탕甘麥大棗湯이란 것이 있는데, 감초 5그람, 대추 6그람, 밀 20그람을 물 240밀리리터에 넣어 120밀리리터가 될 때까지 끓여서 만들며, 신경의 흥분을 가라앉게 하는 효과가 있어 신경쇠약이나 불면증, 급박증急迫症(조급증)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옛 책에서는 대추만을 쓰는 것은 위가 약한 사람에게 좋지 않으며, 파와 함께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충북 보은과 경북 예천에서 주로 나는 보은대추나무는 가시가 발달한 것은 산대추나무와 닮았지만, 열매가 둥글지 못하고 타원형인 것이 다르다.
또한 열매에 살이 많고 씨에 인仁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인은 단단한 대추씨를 깨뜨려보았을 때 그 속에 들어 있는 부드러운 조직으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산대추나무는 이것이 발달한 까닭에 산조인을 얻을 수 있다.
보은대추나무는 열매가 탐스럽고 살이 많아서 인기가 많다.
○대추나무 재배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과실수 재배가 숭상되고 권장되었다.
고려 명종 18년(1188)에 국가 정책으로 대추나무 식재가 권장되었다는 기록을 보면, 그 목적은 열매를 약이나 식용으로 쓰기 위한 것이었고, 또 목재가 치밀하여 인쇄용 널재목材木(판재板材: 널빤지로 된 재목)으로도 쓰였다.
따라서 집 부근 밭두렁 등에 많이 심었고, 아울러 방풍림과 방수림을 만들 때 대추나무를 곁들여 심었다고 한다.
다음은 ≪고려사高麗史≫ 지志 31에 전하는 내용이다.
"시절에 맞추어 농사를 장려하고 힘써 둑을 수축하여 저수하고 물을 대게 하고 불모지가 없도록 함으로써 백성들의 먹을거리를 풍족하게 만들라. 또한 뽕나무를 철에 따라 심으며, 옻나무, 닥나무, 밤나무, 잣나무, 배나무, 대추나무 등의 과실수에 이르기까지 각각 때를 맞춰 심어서 이롭게 하라(이시권농以時勸農 무수제언務修堤堰 저수유윤貯水流潤 무령황모無令荒耗 이급민식以給民食 역이상묘亦以桑苗 수절재식隨節栽植 지어칠저율백이조과목至於漆楮栗栢梨棗菓木 각당기시各當其時 재이흥리栽以興利)."
신라 말기에 궁예가 송악에 태봉泰封이란 나라를 세웠을 때(910년 무렵), 식화부植貨府를 두어 과실수의 식재를 담당하게 한 기록이 있으니, 그때 어떤 종류의 과실수를 심었는지 알 수는 없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의 정원을 관리하던 관리(상림원감上林苑監)가 세종 12년(1430)에 꽃 심을 것을 청하였을 때, 왕이 "나는 원래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뽕나무, 닥나무, 과실수는 좋아하고 이는 백성들의 생활에 극히 필요한 것이므로 이러한 것에 뜻을 두기 바란다"라고 한 기록이 있다.
세종 8년에는 각 도에 과실수를 심으라는 공문을 발송하고, 아울러 각 도에서 과실을 바치게 하는 법(진공법進貢法)을 제정하였다.
감, 모과, 석류, 배, 유자, 밀감, 대추, 개암, 잣, 호두, 밤 등 그해의 결실량을 참고하여 알맞은 양을 책정해 상림원에 바치도록 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주요 대추 산지로 경상도의 하양·대구·경산·창녕·함안, 충북의 제천·단양·음성, 충남의 온양 등을 꼽고 있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대추나무는 습한 땅을 싫어한다.
따라서 배수가 잘 되는 모래가 있는 땅에 심어야 한다.
이 나무는 '빗자루병'이라 해서 가지가 무수히 갈라져 못 쓰게 되는 병에 걸릴 수 있다.
대추나무는 정원수나 가정 과실수로, 그리고 좋은 경치를 위해서 심을 수 있다.
또한 아이들 훈계용으로 "너희들도 대추방망이(또는 대추씨)처럼 단단해 보아라. 왜 그렇게 헤벌쭉하냐?"하고 대추를 언급하는 말들이 있다.
그렇지만 다 큰 어른을 보고 '자네 인격이 대추방망이 같네"하면 대개 듣기 싫어한다.
같은 말도 쓰기 나름인 것 같다.
대추나무는 열매가 많이 달려야 가치를 발휘한다.
열매를 많이 맺게 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가법嫁法)'라는 것이 있다.
이는 흔히 정월 대보름날이나 단옷날에 이루어진다.
대추나무는 줄기가 아래쪽에 흔히 두 갈래로 갈라진다.
사람이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두 다리를 벌린 것과 같은 형상이다.
이러한 경우 굵고 긴 돌을 갈라진 줄기 사이에 끼워준다.
이것이 바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인데, 이렇게 하면 그 나무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시집보내기의 효과를 더 높이려면 나무줄기가 갈라진 것보다 더 굵고 큰 돌로 위에서 힘을 주면서 꽉 끼워야 한다.
돌을 헐겁게 끼워 쉽게 빠져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두 갈래로 갈라진 줄기가 돌을 꽉 물고 있어야 한다.
돌을 내려쳐서 그 사이에 끼울 때 나무줄기의 껍질이 약간 벗겨지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서 나무가 다소 파열상을 입는 것이 좋다.
나무줄기의 갈라짐이 너무 넓어 돌을 끼워도 계속 헐렁한 상태일 경우, 그 나무는 시집을 보내도 큰 효과가 없다.
이와 같은 행사가 특히 대보름과 단옷날에 행해진 것은 집에서 따분하게 지내던 젊은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노는 동안 이성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겠다는, 또는 놀이의 방향을 더 한층 진하게 몰고가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집보내기 행사는 과학적으로도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되어 현대 학술 서적에서도 이 방법을 적어놓고 있다.
나무줄기 껍질의 일부를 칼로 깎아내는 환상박피법環狀剝皮法, 철사줄로 줄기를 감아 조직을 압박하는 긴박법緊縛法, 나무뿌리의 일부를 끊어주는 단근법斷根法, 나무뿌리 부근에 소금을 뿌려 나무뿌리가 물을 잘 빨아올리지 못하게 하는 방법(물을 흡수할 때 질소가 함께 들어가게 되므로), 줄기에 칼자국을 넣어주는 절상법切傷法, 나뭇가지 끝에 줄을 매고 가지를 아래로 휘어지게 해 나뭇가지 조직이 긴축되어 수액의 이동이 잘 안 되게 하는 굴지법屈枝法 등이 모두 대추나무 시집보내기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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