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한반도 선사시대 미술사의 여명과 한민족의 뿌리 8-신석기시대 토기의 추상성 본문

빗살무늬토기의 무늬 구성은 아가리, 몸통, 바닥의 3단으로 이루어진다.
아가리 부분은 손톱으로 꾹꾹 누른 점선띠이고 몸체는 지그재그의 빗살무늬이며, 밑바닥은 빗금무늬이다.
빗살무늬가 주 무늬를 이루고 아래위로 종속 무늬가 배치된 이 명백한 3단 구성은 한국미술사의 신새벽을 알려준다.
기능상으로 보면 그릇 표면의 빗살무늬는 사람 손바닥의 지문 같은 구실을 하여 미끄러지지 않고 잡기 편하게 한다.
그러나 그런 기능만이 목적이었다면 꼭 빗살무늬가 아니어도 된다.
이 추상 무늬에는 어떤 상징성이 있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신석기 토기에는 어떤 형태로든 기하학적 추상 무늬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해 헝가리 Hungary 역사학자 아놀드 하우저 Arnold Hauser(1892~1978)는, 구석기인은 오직 자연에 대한 경험에 의지하면서 단순한 동물적 '본능'으로 사물에 대한 애정과 인내를 그렸지만 신석기인은 사물을 '의식'으로 파악하고 표시하려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부호화, 개념화, 상징화하려는 경향이 생겨 추상 무늬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했다.
빗살무늬의 상징성은 대체로 생선뼈무늬(어골문魚骨紋)로 이해된다.
본래 선사시대 미술에서 통째로 벗긴 동물 가죽이나 살을 발라낸 생선뼈는 정복을 뜻한다.
신석기인들의 식생활에 물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이 생선뼈무늬에는 주식의 풍요와 원활한 사냥을 기원하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빗살무늬토기는 서기전 4000년에서 서기전 1500년까지 장구한 세월 동안 형식상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빗살무늬라는 단순한 목록(레터토리 repertory)을 한정된 기법으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지속했다는 것은 이들의 삶에 거의 변화가 없었음을 뜻한다.
인간은 삶의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의식도 변하지 않고, 예술적 태도 또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러던 빗살무늬가 서기전 1500년 무렵부터 마침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토기 모양에 납작바닥이 나타났다.
이는 토기 제작의 비약적 발전을 뜻한다.
또 무늬에선 물결무늬, 타래무늬, 번개무늬 따위가 나타났다.
이는 자연에 대한 관찰이 발전했음과 동시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실제로 황해도 봉산 지탑리, 충북 청원 오창 지역 따위에서는 불에 탄 피, 좁쌀 따위가 발견되었다.
빗살무늬 자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아가리, 몸통, 바닥에 서로 다른 무늬를 새겼으나 먼저 바닥의 무늬부터 사라지고, 나중에는 몸통의 주 무늬가 사라지며, 마지막에는 아가리에 톱니무늬만 남게 된다.
점점 빗살무늬가 퇴화되면서 획일적이고 인습적이며 개념적인 무늬들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신석기 문화는 삶의 내용이 변화하고 있었다.
※출처
1. 유홍준 지음,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주)눌와, 2010)
2. 구글 관련 자료
2026. 7. 30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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