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7부 세계의 중심에 선 서양 - 23장 현대 산업과 대중 정치(1870~1914) 5: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의 불만: 세기 전환기의 국가 정치 3 - 영국: 온건에서 호전으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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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7부 세계의 중심에 선 서양 - 23장 현대 산업과 대중 정치(1870~1914) 5: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의 불만: 세기 전환기의 국가 정치 3 - 영국: 온건에서 호전으로

새샘 2026. 8. 8. 18:20

1914년 이전의 반세기 동안 영국인은 자신의 정부야말로 질서정연하고 원활하게 기능하는 체제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1867년 제2차 선거법의 통과로 성인 남성의 3분의 1이 이상에게 선거권이 확대되었다.

이와 더불어 양대 정당인 자유당自由黨 Liberal Party과 보수당保守黨 Concervative Party은 늘어난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의회는 노조의 합법성을 인정하고, 대도시 지역의 재개발을 시행하며, 모든 어린이에게 초등교육을 실시하고, 영국 국교도가 아닌 남성에게도 정예(엘리트 elite) 대학인 옥스퍼드 Oxford와 케임브리지 Cambridge에 입학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들로 새로운 유권자들의 관심에 부응했다.

1884년 선거권은 확대되어 성인 남성의 4분의 3 이상이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세기 전환기에 영국의 새로운 의회정치를 주도했던 (왼)보수당의 벤저민 디즈레일리(나무위키 https://namu.wiki/w/%EB%B2%A4%EC%A0%80%EB%AF%BC%20%EB%94%94%EC%A6%88%EB%A0%88%EC%9D%BC%EB%A6%AC) (오른)자유당의 윌리엄 글래드스턴(출처-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C%8C%EB%A6%AC%EC%97%84_%EC%9C%A0%EC%96%B4%ED%8A%B8_%EA%B8%80%EB%9E%98%EB%93%9C%EC%8A%A4%ED%84%B4)

 

두 명의 중심 인물, 즉 보수당의 벤저민 디즈레일리 Benjamin Disraeli(1804~1881)와 자유당의 윌리엄 글래드스턴 William Gladstone(1809~1898)이 새로운 의회정치를 주도했다.

개종한 유대인이자 인기상품(베스트셀러 best seller) 소설가인 디즈레일리는 두드러지게 실용주의적이었던 반면, 독실한 영국 국교도이자 도덕 개혁가인 글래드스턴은 정치를 '도덕을 확대한 것'이라고 보았다.

서로 반대되는 감성과 의회에서의 격렬한 충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매우 비슷한 전망을 공유한 것처럼 보이는 정당들을 이끌었다.

상층 중간계급과 지주계급 출신의 내각 각료들이 관장한 자유당과 보수당은 모두 확대되는 선거구민에게 호소력을 지닌 온건한 프로그램 program을 제시했다.

내각 각료들은 입법을 준비했지만 불신임 표결로 재임 중인 내각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하원의 궁극적 권한을 인정했다.

중도적 해결책을 약속한 비슷한 교육 및 전망을 지닌 인물들이 운영했기 때문에 영국의 정치 체제는 안정되고 '합리적'이었다.

 

영국의 노동계급 운동도 1901년 새로운 노조와 중간계급 사회주의자들이 독립적인 노동당을 창당하기 위해 연합한 세기 전환기에 이를 때까지도 놀라울 정도로 온건했다.

1906년에 집권한 자유당 내각은 좌파로부터의 압력으로 노조에 대한 다른 양보들과 더불어 질병, 사고, 노령, 실업 보험법 따위를 통과시켰다.

새로운 복지 프로그램들과 독일의 건함建艦(군함을 만듬)에 맞서 한층 더 강한 해군력을 위한 예산을 위해 재무장관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David Lloyd George(1863~1945)는 1909년에 부자가 더 높은 비율의 세금을 내도록 고안된 누진 소득세와 상속세가 포함된 폭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킨 예산을 제안했다.

이 법안은 상원과 악의에 찬 대결을 불러왔다.

상원은 결국 이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했을 뿐만 아니라 하원이 통과시킨 입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권한을 영구적으로 포기해야 했다.

이 논쟁에 따른 적대감은 점차 영국 정치를 호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대혼란을 향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1860년대 이래로 대중사회의 증대되는 요구 사항을 그토록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던 영국의 자유주의적 의회 체제는 1900년 이후에 급진적 행동에 찬성하는 집단들이 입법활동을 거부하면서 뒤틀리기 시작했다.

산업계의 호전론자들은 대규모 노동 저항을 전개했는데, 여기에는 석탄 및 철도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파업과 런던 London과 더블린 Dublin에서의 도시 전체적 운송 파업이 포함되었다.

여성 참정권론자들은 폭력적인 형태의 직접 행동을 채택했다.

그사이 아일앤드 Ireland에서는 급진 민족주의자들이 아일랜드 자치 또는 자치 정부의 세부 사항을 둘러싼 의회에서의 논쟁에 대한 가장 단순한 해결책으로 무장 혁명에 찬성했다.

 

아일랜드는 1800년에 영국 의회의 직접 통치 아래 놓였고 19세기 전체에 걸쳐 아일랜드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다양한 정치적·군사적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1880년대에 이르러 현대적 민족주의 정당이 입법 과정을 통해 상당한 정치적 승리를 거두기 시작했지만 (여성 참정권처럼) 개혁 지향적 집단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의제는 세기 전환기로 나아가면서 한층 더 급진적인 조직자들로 말미암아 점차 약화되었다.

이들 '신민족주의 new nationalism'의 옹호자들은 구민족주의 당 대표자들을 무능하고 정세에 어둡다고 경멸했다.

새로운 집단은 아일랜드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키고 신 페인 Sinn Féin(아일랜드 좌익 민족주의-공화주의 정당)과 아일랜드 공화주의 형제단 Irish Republican Brotherhood 같은 호전적인 정치 조직들이 했던 것처럼 급진 운동에 대한 조직적 기원을 제공했다.

1913년 자치를 부여하기 위한 자유당의 계획이 다시 논의되면서 (가톨릭 Catholic의 지배를 두려워하는 북아일랜드의 프로테스탄트교도 Protestant가 다수를 점하는 몇 개의 군들인 얼스터 Ulster 지방을 경악케 하면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수많은 사설 민병대 집단들에게 전투를 요청했다.

이미 국내의 위기들로 넘쳐나는 영국은 내란 직전의 상태에 이른 것처럼 보였고,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만 지체될 전망이었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손세호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하): 근대 유럽에서 지구화에 이르기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8.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