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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또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샤먼의 제의적 전통 2-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성격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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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또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샤먼의 제의적 전통 2-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성격

새샘 2026. 8. 9. 17:40

한반도 청동기시대 추수에 사용되던 다양한 반달칼(출처-출처자료1)

 

서기전 1000년 무렵, 한반도에서는 길고 지루한 신석기문화에 마침내 큰 변화가 일어났다.

빗살무늬토기가 사라지고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紋土器)가 자리 잡기 시작했고,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고인돌이라는 새로운 장묘 문화가 생겼다.
이 세 가지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표지 유물이다.

 

청동기인은 대개 넓은 들판이 내다보이는 낮은 언덕에 집자리를 마련하고 살았다.

이는 신석기인이 강가나 해안가에 살던 것과는 사뭇 다른 주거 양식이다.

생활방식도 수렵과 어로에서 농경으로 바뀌었다.

경기도 여주 흔암리, 부여 송국리 따위의 청동기시대 유적지 곳곳에서 불에 탄 벼가 발견되었고 추수에 사용되는 여러 형태의 반달칼이 곳곳에서 출토되고 있다.

농경과 목축에 의해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사회집단을 형성하며 서서히 군장사회로 발전해갔다.

그러나 아직 고대국가의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다.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는 대개 서기전 1000년 무렵부터 철기문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서기 전후까지 약 1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서기전 300년 무렵부터는 중국에서 철기문화가 서서히 들어오면서 청동기문화와 함께 공존하였기 때문에 고고학에서는 서기전 1000년부터 서기전 300년까지를 전기청동기시대, 서기전 300년부터 서기 전후까지를 후기청동기시대 또는 초기철기시대로 구분한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기록은 전하는 것이 없어 정확하게 역사적 사실과 연관시키지 못하고 있다.

다만 고고학적 발굴 유물에 비추어 볼 때 처음에는 서북쪽에서 일어난 예족穢族의 고조선古朝鮮이 주도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조선의 청동기문화가 각지로 퍼지면서 초기철기시대로 들어서면 동북쪽에서는 맥족貊族의 부여扶餘가 등장하고, 남쪽에서는 한족韓族의 진국辰國이 자리 잡았다.

 

서기전 300년 무렵이 되면 고조선은 철기로 무장한 중국 연燕나라와 갈등을 빚으면서 자연히 철기문화를 도입하게 되고 사회질서 자체에도 큰 변동을 가져온다.

결국 고조선은 서기전 187년 위만조선衛滿朝鮮에 의해 멸망하고, 위만조선은 서기전 108년 중국 한漢나라에 의해 멸망하며 고조선의 옛 땅에는 낙랑樂浪을 비롯한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된다.

남쪽의 한족韓族 사회도 변화를 일으켜 기존의 진국은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의 삼한으로 분화되었다.

이때 위만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은 지금의 익益山(금마金馬) 지역으로 남하하여 마한의 맹주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서기전 300년부터 서기 무렵까지 지속된 초기철기시대(후기청동기시대)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정세가 급격히 개편되는 과정에 있었고, 이 시기부터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의 고립된 문화에서 서서히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한 국가로 편입되어갔다.

 

※출처

1. 유홍준 지음,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주)눌와, 2010)

2. 구글 관련 자료

 

2026. 8. 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