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타고난 면역, 선천면역 9: 누군지는 모르지만 일단 적이다 본문

글과 그림

타고난 면역, 선천면역 9: 누군지는 모르지만 일단 적이다

새샘 2026. 8. 13. 14:07

선천면역세포는 병원체만의 독특한 유형(패턴)을 감지할 수 있다.(출처-출처자료1)

 

선천면역 innate immunity은 중성구(호중구) neutrophil, 큰포식세포(대식세포) macrophage, 가지세포(수지상세포) dendritic cell 그리고 자연살해세포 natural killer cell가 담당한다.

평소 인체 속을 돌아다니며 순찰을 하고 있던 선천면역세포들은 병원체 pathogen를 발견하면 곧바로 달려가 공격하기 시작한다.

중성구는 세균을 자신의 세포 안으로 넣어 녹이고, 큰포식세포나 가지세포는 세균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자연살해세포는 병원체에 구멍을 뚫어 죽인다.

 

선천면역세포들은 구체적으로 표적을 지정해 병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세포들,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것들을 광범위하게 모두 공격한다.

이런 공격 방식은 정밀하진 않지만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선천면역은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다.

한번 침입한 병원체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억력이 없는 선천면역이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체와 정상 인체 세포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선천면역세포들이 비록 각각의 병원체들을 구별할 수는 없지만 병원체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천면역세포는 톨유사수용체를 통해 병원체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유형을 인식한다.(출처-출처자료1)

 

선천면역세포들은 인체에는 없는 병원체만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유형을 알고 있다.

이것을 병원체 관련 분자 유형 pathogen-associated molecular patterns(PAMPs)이라고 한다.

그람음성세균 Gram negative bacteria의 세포벽에 있는 성분인 지질다당류 LPS가 바로 그중 하나로서, 선천면역세포인 큰포식세포의 톨유사수용체가 이것을 인식할 수 있다.

큰포식세포는 그것이 비록 어떤 세균인지는 모르지만 지질다당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일단 세균이 침입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비슷한 원리로 선천면역세포는 바이러스도 인식할 수 있다.

인체 안에서 RNA 바이러스가 복제되어 이중가닥 RNA가 생기면 선천면역세포는 이것이 어떤 바이러스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일단 침입자의 바이러스로 인식하게 된다.

이중가닥 RNA는 인체에선 발견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병원체들이 자신의 유형을 바꾸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행히 그런 일은 드물다.

어부의 눈을 피하기 위해 물고기가 아가미와 지느러미를 제거할 수 없는 것처럼 PAMPs는 병원체의 생존에 중요한 필수 구조물이기 때문에 병원체들이 함부로 변형하거나 제거할 수 없다.

덕분에 선천면역은 효과적으로 병원체를 잡아낼 수 있다.

인체 안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세균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세균의 정체를 파악할 필요 없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세포가 무조건 세균인 것이다.

 

의학자들은 선천면역세포의 병원체 유형을 인식하는 수용체를 초파리 연구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초파리는 '톨 수용체 Toll receptor'라는 것을 통해 자신을 곰팡이로부터 방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에게서도 톨 수용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수용체가 발견된 것이다.

이것이 '톨유사수용체 Toll-like receptors(TLRs)'였다.

톨유사수용체는 병원체의 공통 유형을 인식해 방어와 관련된 면역물질의 생성을 촉진한다.

 

T 림프구에 의해 본격적인 적응면역 adaptive immunity(후천면역 acquired immunity)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신호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당연히 외부에서 침입한 '비자기 항원 nonself antigen의 신호'다.

하지만 비자기 항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역반응이 시작된다면 우리는 식사할 때마다, 또는 숨 쉴 때마다 면역반응 때문에 고생하게 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면역계는 외부 항원이 '감염성이 있는 병원체'라는 두 번째 신호가 있어야만 면역반응이 일어나도록 되어 있다.

 

이런 두 번째 신호를 제공해주는 신호가 바로 선천면역세포들이다.

선천면역세포들은 자신의 톨유사수용체를 이용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감염성 병원체를 감지할 수 있으며, 큰포식세포나 가지세포 같은 항원제시세포 antigen-presenting cells(APCs)들은 병원체를 잡아먹은 뒤 병원체의 단백질을 가공해 자신의 몸에 표시한다.

이렇게 항원제시세포가 병원체임을 인증한 외부 항원을 T 림프구가 안심하고 공격해도 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면역반응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 면역계는 이처럼 놀랍고도 절묘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디프테리아 독소 diphtherial toxin로 만든 백신의 면역반응이 약했던 것은 항원제시세포들의 두 번째 신호 즉 병원체임을 인증하는 신호가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과학자들은 시행착오를 거쳐 알루미늄염이 두 번째 신호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것을 우연히 알아냈다.

찰스 제인웨이 Charles Alderson Janeway, Jr.(1943~2003)의 질문 '왜 면역보강제 immunoadjuvant 가 필요할까?'에서 비롯된 면역학자들의 연구는 이렇게 선천면역 이론을 새롭게 쓰는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율레스 호프만 Jules A. Hoffmann(1941~ )과 브루스 보이틀러 Bruce Beutler(1957~ )는 톨유사수용체의 작동 원리를 발견한 업적으로 2011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이후로도 톨유사수용체 연구는 계속되었다.

여러 종류의 톨유사수용체는 세균, 기생충, 바이러스를 각각 전담하는 것이 있으며, 자신의 역할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다양한 위치에 존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면역학자들은 톨유사수용체가 여러 개 발견되자 숫자를 붙여 구분했다.

제인웨이의 동료인 메지토프 Ruslan Medzhitov(1966~ )가 최초로 발견한 인간의 톨유사수용체는 TLR4였다.

톨유사수용체의 발견은 선천면역에 대한 기존 이론을 완전히 새롭게 했다.

그동안 선천면역은 병원체가 인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단순한 초기 방어막 정도로 인식해 연구되어왔지만, 알고 보니 선천면역은 병원체의 존재를 먼저 인식해 면역반응을 일으켜 적응면역을 자극하는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반니, 2023)

2. 구글 관련 자료

 

2026. 8. 1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