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7 (25)
새샘(淸泉)
2010년 6월 대전대학교 목요문화마당은 김창완 밴드의 'Take a Bus!' 콘서트로 열렸다.이날 레퍼터리 가운데 라이브 동영상.왜 난 고민이 없나풍부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니 그렇겠지만왜 난 고민이 없나나도 같이 괴로워하고 싶네비 내리는 어느 날 눈물짓는 사람시냇물이 흐를 때 노래 부르는 사람두 사람을 보면나는 콧노래를 따라 부르지만같이 눈물짓지 않네왜 난 고민이 없나풍부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니 그렇겠지만왜 난 고민이 없나나도 같이 괴로워하고 싶네 (연주)왜 난 고민이 없나풍부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니 그렇겠지만왜 난 고민이 없나나도 같이 괴로워하고 싶네비 내리는 어느 날 눈물짓는 사람시냇물이 흐를 때 노래 부르는 사람두 사람을 보면나는 콧노래를 따라 부르지만같이 눈물짓지 않네(연주)202..
청와대 위치 청와대 관람안내도: 정문-대정원-본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자리한 청와대靑瓦臺 Blue House 주변 지역이 역사서에 처음 기록된 것은 ≪태조실록≫으로서,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 고려의 도읍인 개경(개성) 외에 이궁離宮(행궁行宮: 임금이 나들이 때에 머물던 별궁)을 서경(평양)과 남경(서울)에 설치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한양으로의 도읍 이전을 논의하면서 1394년 고려 때 지은 이궁이 궁궐 자리로 좁으니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짓는 게 좋겠다고 하여 이듬해인 1395년 9월 경복궁이 완성되었다.조일전쟁(임진왜란) 이전까지 조선 왕들은 대부분 경복궁에서 거처하였고, 지금의 청와대 일대에서는 왕과 신하가 함께 모여 천지신명께 제사를 올리며 충성과 단결을 맹세하는..
한국과 북방지역의 교류를 왜 연구하게 되었는지, 실제로 그것이 중요한지 묻는 사람이 많다.그때마다 필자(강인욱)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대륙과 이어진 부분은 북쪽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한반도 사람들은 바다를 거쳐 일본과 교역하거나 인도와 같은 먼 나라의 문화를 접하기도 했지만, 해상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는 북방에 대한 의존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다 보니 주로 중국, 러시아, 몽골과 같은 나라와 왕래하는 일이 잦았다. 막연하게 북방 유라시아 Eurasia(유럽과 아시아를 아울러 이르는 이름)라고 말하지만, 넓이가 한반도의 수백 배에 달하는 거대한 지역을 그냥 하나로 묶어서 말한다는 것은 정말 애매하다.그래서 필자는 그 길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
산행로: 남부터미널역 5번 출구-우면삼거리-우면산 도시자연공원 무장애숲길-대성사-우면산 둘레길-계곡다리-정자 쉼터(점심)-쌍돌탑-성뒤골-방배동 전원마을-남태령역-(지하철)-사당역-사당역 14번 샤브리샤브샤브(6.5km, 2시간 40분) 산케들: 梅岩박재우, 최 훈, 淸泫, 牛岩, 百山, 晏然, 大谷, 元亨, 慧雲, 長山, 回山, 새샘(12명) 6월 마지막 산행이자 2분기 대곡 대장의 마지막 산행은 대모산·구룡산과 더불어 산케들이 강남대간이라 일컫는 우면산 둘레길이다. 남부터미널역에서 출발하는 우면산 둘레길 코스의 종점은 대개 사당역이었지만 오늘은 남태령역이므로 사당역에 비해 산행 시간이 30분 정도 줄어들 것이다. 전날 일기예보에서 폭우가 쏟아진다고 해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절로 창밖을 내다보게 된다...
몽골인 Mongolian과 마찬가지로 원래 유목민이었던 오스만튀르크인 Ottoman Türks은 거대 제국을 정복한 뒤에도 약탈에 의존한 경제생활을 영위했다.오스만인 Ottoman은 몽골인이 소아시아(아나톨리아 Anatolia 반도) 서북부에 도달했을 때 이미 그곳에 터를 잡고 있었고, 적어도 명목상은 무슬림 Muslim(이슬람교도)이었다.그러나 그 지역의 다른 무슬림 세력들이 몽골인에 의해 파멸된 것과는 달리, 오스만튀르크인은 몽골 제국의 수혜자였다.몽골 제국이 셀주크 술탄국 Seljuk Sultanate과 바그다드 Bagdad의 아바스 칼리프국 Abbasid Caliphate을 무너뜨림으로써, 튀르크 변경의 오스만 추장들을 괴롭히던 두 전통 세력을 몽골인이 제거해 준 셈이었다.이제 오스만인은 비잔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