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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혜원 신윤복 "야금모행도" "주사거배도" "유곽쟁웅도"

새샘 2017. 3. 4. 21:42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의 대표작《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은 모두 30 장면으로 구성된 풍속화첩이다. 이 화첩에는 당시 사람들의 향락적 유흥과 남녀 간의 춘정이 생생히 담겨 있다. 그중에서 조선후기 도시의 호사스러운 소비 생활과 유흥을 즐긴 왈짜와 기생들이 눈에 띈다. 왈짜란 역관과 같은 기술직 중인, 중앙 관서에서 행정 말단 업무를 담당한 경아전, 대전별감인 액예, 군(영장)교인 포, 승정원 사령, 나장인 관서하예, 장사치인 시정 상인 등을 총칭하는 단어이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상당한 경제력을 지녔기 때문에 새로운 유흥 문화의 핵심 세력으로 크게 성장했다. 왈짜패 중에서도 특히 별감과 군교는 기녀의 의식주를 마련하고, 유곽이 소란 없이 영업할 수 있도록 기방의 뒷배 역할을 하던 이른바 '기둥서방'이었다.


당시 왈짜패의 행태는 조정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골칫거리였는데, 이들의 기방 문화는《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그대로 표현되었다. 특히 <야금모행도>, <주사거배도>, <유곽쟁웅도>의 세 그림은 왈짜패들이 벌인 같은 날 사건을 차례로 나누어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 야금모행도夜禁冒行圖

<신윤복, 야금모행도, 18세기, 종이에 채색, 28.2×35.6㎝, 국보 제135호인 혜원전신첩에 실림, 간송미술관>


3개의 그림 중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의 그림인 <야금모행도>'통행금지 시간에 몰래 다니는 그림'이란 뜻이다. 맨 왼쪽의 붉은 철릭의 노란 초립을 쓴 사내가 바로 궁중의 열쇠를 보관하거나 임금의 심부름을 하면서 기방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는 무예청 별감이다.


그믐달이 뜬 이슥한 밤에 갓과 도포 차림의 선비와 초롱불을 밝힌 동자을 앞세워 어디론가 가고 있다. 장죽을 입에 문 기녀가 동행한 것으로 보아 그들의 목적지는 기방이 분명하다. 자주색 허리띠를 착용한 멋쟁이 고객은 아직 기방 출입인 익숙하지 않은 듯, 갓을 만지작거리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별감과 흥정을 벌이고 있다.


2. 주사거배도酒肆擧盃圖

<신윤복, 주사거배도, 18세기, 종이에 채색, 28.2×35.6㎝, 국보 제135호인 혜원전신첩에 실림, 간송미술관>


<야금모행도>에 이어 일어나는 사건인 <주사거배도>는 주막의 내부 풍경을 그린 '술집에서 술잔을 드는 그림'이다. 트레머리를 얹은 여인이 가마솥 2개가 걸린 부뚜막에서 국자로 막 중탕한 술을 잔에 담고 있다. <야금모행도>에 등장했던 별감은 젓가락을 들고 안주를 고르고 있다. 마당에는 별감과 함께 온 고객 외에도 몇 명이 더 서 있다. 이들은 벌써 여러 순의 술잔을 돌린 듯 낯빛이 발그스름하다. 화면 맨 오른쪽 인물은 갓이나 초립이 아닌 깔때기를 썼고 진한 청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까치등거리를 입었다. 어명을 받아 강력범을 문초하는 의금부 소속의 나장이다. 무예청 별감이나 의금부 나장의 벼슬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어명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권력이 대단해서 뒷돈도 많이 챙겼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 유곽 영업에 관여했다.


이들은 대청에 오르지 않고 진달래꽃이 만발한 마당을 서성인다. 마루 위에 정갈한 세간이 배치되었고 부뚜막 위에 술잔과 안주를 담은 접시가 놓였다. 소박하면서 자유로운 선술집의 풍경은 그림 오른쪽에 쓰인 "술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술 항아리 끌어안고 맑은 바람 대한다. 거배요호월擧盃邀皓月 포옹대청풍抱甕對凊風"이라는 제시에서 더욱 고조된다.


3. 유곽쟁웅도遊廓爭雄圖

<신윤복, 유곽쟁웅도, 18세기, 종이에 채색, 28.2×35.6㎝, 국보 제135호인 혜원전신첩에 실림, 간송미술관>


마지막 사건인 '술집에서 싸우는 그림'이 바로 <유곽쟁웅도>. 길바닥에서 만취한 사내들이 몸싸움을 벌였다. 싸움의 주역들은 갓도 벗어던지고 옷까지 풀어헤친 채 한바탕 주먹다짐을 했다. 별감은 가운데서 싸움을 말린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동행인이 두동강 난 갓을 챙기며 난감해하는데, 유곽 앞에 서 있는 기녀는 자주 경험하는 행태인 양, 장죽을 물고 팔짱을 낀 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싸움을 구경한다.


위 세 작품은 조선후기 유곽 문화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광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 이 글은 송희경 지음, '아름다운 우리 그림 산책 (2013, 태학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2017. 3. 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