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오주석의 화재 변상벽 "모계영자도" 해설 본문
그림을 감상할 때는 대상을 사랑하는 눈이 중요!
<변상벽, 모계영자도, 비단에 수묵담채, 94.4×44.3㎝, 국립중앙박물관>
화재和梓 변상벽卞相璧의 닭 그림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인데, 참 사랑스러운 그림이다. 괴석이 있고, 찔레꽃이 있고, 벌 나비가 날아드는데, 암탉이 병아리들을 돌보고 있다. 보라! 암탉의 어진 눈빛이 또로록 구르는가 했더니, 부리 끝에 꿀벌 한 마리를 물고 있다. 그런데 이 햇병아리 솜털이 어쩌면 이렇게 보송송할까? 도 암탉 깃은 이렇듯 매끈매끈하다. 사람도 그렇지만, 엄마 몸이 새끼보다 열 배나 커도, 눈동자 크기만은 서로 엇비슷하다. 그 정다운 눈동자들이 동그마니 원을 그린다. 정말 사랑스러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모자영계도의 닭과 병아리 세부>
예전에 강연할 때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햇병아리들이 하나같이 예쁜데 이 모이를 누구 입에 넣어줘야 할까? 참 걱정입니다."
그랬더니, 중간 휴식 시간에 한 분이 어정쩡하니 다가와서는 어지간히 망설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선생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 사실은, 제가 양계장을 오래 했거든요."
그래요! 갑자기 뒷골에 쭈뼛하는 느낌이 들어, 정색을 하면서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랬더니, "선생님, 그 벌 어떤 병아리한테 줄지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래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했더니
"이 암탉이라는 게 모정이 아주 살뜰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곡식 낟알을 하나 주워도 그냥 먹으라고 휙 내던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병아리 가는 목에 걸리지 않게끔 주둥이로 하나하나 잘게 부숴서 먹기 좋게 일일이 흩어 준답니다." 해요.
그러니까 좀 잔인한(?) 얘기지만, 꿀벌은 이제 곧 완전 분해가 돼서 잔 모이가 될 거란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그림을 다시 눈여겨보았더니, 정말이지 병아리 중에 부리 벌린 놈은 하나도 없다. 입을 꼭 다문 채 엄마가 나누어줄 때까지 눈만 또리방거리고 있는 것이다. 세밀한 표현에 참 기가 막힌다! 공부 더 한 사람이 그림을 더 잘 보는 것이 아니다. 대상을 사랑하고 생태를 알고 찬찬히 눈여겨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세상에 원, 외국 박물관에서도 여기저기서 닭 그림을 많이 보겠지만 이렇게 정답고 살가운 그림은 다시없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선한 작품을 그리고, 또 그것이 좋아서 벽에 걸어 두고 흐뭇해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 얼마나 순박하고 착한 것이었는지 절로 느껴진다.
그런데 그림 주제는 여기 암탉과 그 암탉을 에워싸고 동그마니 모인 병아리들이 되지만, 이것만으론 그림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주제에 따른 부주제를 벌려 놓았다. 아래 쪽에 지각생 병아리도 그려 넣고―한데 지각생치고는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왼쪽에 실지렁이 물고 밀고당기며 줄다리기하는 병아리도 그리고, 깨진 백자 접시 위엔 물 마시는 병아리며―얘는 눈이 유난히 커 아주 천진해 보인다―벌써 물 마시고 하늘바라기하는 병아리가 있다.
얘(세부 사진의 가운데 맨 왼쪽 병아리)는 또 뭔가? 눈이 까부룩, 뒤집혔다. 멀뚱하니 선 채로..... 봄볕에 낮잠이 든 병아리다! 또 다른 두 마리는 그저 엄마 품속만 파고든다. 그야말로 모정이 살뜰하게 표현된 그림인데, 이 그림을 사랑방에 걸었을까? 이런 그림은 선비 방에 있었을 턱이 없고, 아마도 부인네 안방에 걸렸던 그림일 게다. 그러니까 짐작컨대 친정에 근친 왔던 딸이 돌아갈 때 챙겨 줘서, 시집에 가서도 이렇게 새끼들 잘 보듬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라, 그런 뜻으로 그려 준 그림이라 짐작된다.
사실 이 그림은 닭 가족 전체를 그린 것인데, 수탉은 어디 있을까? 수탉까지 그렸다면 암탉과 병아리가 상대적으로 완전히 짜부라져 보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장닭이 워낙 잘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토종닭은 꼬리 깃이 아주 길다. 가슴이 떡 벌어진 게 기세가 대단하다. 고구려 고분벽화 닭 그림부터 모두 그렇다. 그러니까 암탉과 병아리가 위축되지 않게끔 수탉은 생략하고, 그 대신 이렇게 불쑥불쑥 남성적으로 솟구친 괴석을 그려 넣은 듯하다. 참 슬기로운 화가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화재 변상벽(1730~1775?)은 영조 때 화원 화가로서 특히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려 변계卞鷄, 변고양이 또는 변괴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019. 8. 19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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